[기자수첩] AI 시대, '김 부장'으로 살아남기
현대경제신문 유은주 기자 | "남은 10년은 어떻게 버틸 것인가, 나의 경험은 어디까지 쓸모가 있을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에 다니는 김 부장은 연일 불안하다. 아파트 대출과 자녀 교육, 앞으로 은퇴 계획까지 계산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뉴스에는 또 한 번 대기업 명예퇴직과 구조조정, 그리고 AI 자동화 소식이 연일 쏟아진다.
이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속 가상 현실이 아니다. 일상생활 속 지하철이나 구내식당, 편의점에서 매일 마주하는 수많은 '김 부장'의 실제 이야기다.
김 부장은 과거에 경영 컨설팅을 받으며 '평생직장'의 희망도 키웠다. 이제는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어떻게 버틸 것인가'란 질문만이 남은 상황이다.
김 부장이 속한 회사는 AI를 활용한 업무 구조 전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문서 처리와 자료 요약, 데이터 분석 등 반복 업무가 AI로 빠르게 대체 됐다. 비용과 효율을 통한 계산된 선택이다.
동료 중 절반은 '리스킬링'이란 이름의 재교육 과정에 들어갔고, 남은 절반은 결심 끝에 조용히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김부장 역시 갑자기 닥친 재교육과 새로운 협업 방식, 낯선 AI 시스템에 당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일개 개인일 뿐인 김 부장은 이 상황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기업은 효율성과 비용을 문제로 김 부장들을 무조건 사지로만 몰아내야 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어려운 점은 이같은 일들이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글로벌 많은 빅테크들도 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그렇기에 무수한 구조조정은 필연적이란 목소리도 많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가 결국 '기술'과 '사람'이라는 두 축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기술의 진보만이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으며 이 기술을 관할하고 현장을 돌보는 건 여전히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산업 생태계 재설계에 책임감을 가져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AI와 인간이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산업 구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기존 AI와 관련한 단기 재교육에 머무르지 않고, 생애 전 주기적 인재 육성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디지털 전환은 촉진하되, 인력 충원과 직무 전환을 함께 고려하는 정책과 지원 없이는 산업 경쟁력 약화도 우려된다.
빠른 변화는 분명 혼란을 초래하겠지만, 조율과 준비만이 그 변화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기술 발전이 사람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정책과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수많은 '김 부장'들은 갈림길에 서 있다. 낯선 기술과의 동행이 두렵지만, 좌절 속에서도 소통과 배려, 경험과 지혜라는 인간적 가치만큼은 잃지 않고 지키고 있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회의 도중 갈등을 푸는 따뜻한 한마디, 부서 간 꼬인 문제를 풀 실마리, 팀원들의 속내를 먼저 알아챌 줄 아는 섬세함까지 대신해 줄 순 없다는게 김 부장의 생각이다.
기업이 AI로 혁신을 외치며 효율과 경쟁력만 따지기보다, 김 부장 같은 이들이 두려움 대신 동반자 의식을 느끼고,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고 손을 잡아줄 필요도 있다.
결국 AI가 현장을 바꾸는 속도는 빠르지만, 그 현장을 돌아보고 지켜내는 건 여전히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더 필요하다는 건 너무 희망적인 낙관일까. 자꾸만 그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일지 모른다. 그는 우리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