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 조선업의 미래 "안전도 경쟁력이다"
한국 조선업 종사자는 2025년 기준 약 13만6000명. 이 중 63%가 하청노동자다. 한국 조선 생산의 대부분을 하청업체가 담당하는 구조 속에서 중대재해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조선업 중대재해 사망자 21명 중 18명, 86%가 하청 노동자다. 산업이 다시 수주 호황을 맞는 지금, 이 구조를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장에서는 추락 방지 난간 미설치, 위험물질 취급 시 폭발·화재 방호조치 미비, 지게차 운행 시 유도자 미배치, 낙하물 위험 미조치, 잠수작업 2인1조 규정 위반, 잠수장비 미지급, 감시자 미배치 등이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문제의 근간에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있다. 원청이 하도급 대금을 지급하면 하청업체는 부족한 비용을 안전비용에서 줄여 충당하고, 이 과정에서 법정 보호구까지 미지급되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결과적으로 사고는 개인의 과실을 떠나 비용과 수익 구조가 만든 산업 위험으로 이어진다.
최근 인력난을 메우기 위한 이주노동자 확대도 새로운 안전 변수다. 정부의 인력 도입 정책 이후 조선소 이주노동자 수는 지난해 4월 기준 약 2만3000명으로 급증했다. 근로복지공단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조선소 이주노동자 산재는 사고 161건, 질병 17건 등 178명이며, 사망자도 3명 발생했다.
한 조선소에서는 40개국 4000명 이주노동자가 일하지만 통역 인력은 10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공정에 10여 개 국적의 노동자가 투입되는 현장에서는 위험 신호 전달이 늦어지고 돌발 상황 대응이 어려워진다.
이 문제는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조선업이 LNG·암모니아 추진선 등 친환경 고부가 선박 시장에서 다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안전이 비용이 아닌 수주 경쟁력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잦은 사고는 공정 중단, 수리 비용 증가, 선주 신뢰 하락, ESG 평가 악화로 이어진다. 숙련 인력이 조선업에 남지 않는 이유로 '위험한 산업'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는다면 미래 기술 전환도 지체될 수밖에 없다.
조선업은 국가 산업 경쟁력의 한 축이자, 여전히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업종이다. 그러나 다음 질문을 외면한다면 산업의 부활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조선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을 만들면서, 정작 그 배를 만드는 사람들의 안전은 세계 최고가 되고 있는가?
한국 조선업의 미래는 더 많은 수주와 효율적인 건조 능력, 사람이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안전한 산업 구조가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안전은 속도와 경쟁력을 저해하는 비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산 역량이자 글로벌 선주 신뢰를 결정하는 핵심 조건이다. 기업, 협력사, 정부, 사회 전체가 이제는 이 과제에 인식을 같이 하고 투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