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적극 추진 중이던 G20(주요20개국)센터 설립이 국회 예산 확보에 실패하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의 'G20 대학원' 교명 변경이 무산된 데 이어 센터 건립마저 좌초되면서 정권 말기 'G20 치적 쌓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KDI 등에 따르면, 당초 정부가 'G20글로벌거버넌스·개발센터' 설립을 위해 내년도 예산으로 요청한 80억 원이 국회 정무위 예산결산심사소위에서 16억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16억원은 KDI의 G20 연구비 명목으로 남겨뒀다.

G20 센터는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초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고 G20의 제도적 정착을 위해 설립을 지시한 글로벌 연구기관이다. 지난 6월 말 대통령 훈령으로 'G20센터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규정'이 제정됐으며, 센터는 7~8월쯤 출범 예정이었다.

하지만 센터의 이사회 의장 격인 운영위원장 인선이 난항을 겪으면서 조직 구성도 미뤄졌다. 당시 정부는 G20 정상회의를 주도한 사공일 전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무역협회장)을 운영위원장에 선임하려고 했으나, 사공 전 위원장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정부는 센터 설립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KDI 사업 예산으로 80억원을 내년도 예산안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여당에서조차 독립기관으로서 G20 센터를 설립하는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예결위 소속 한 관계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칫 '정부가 G20 홍보에 돈을 쏟아 붓는다'는 부정적 여론이 형성될 경우 여당에 불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절차상 문제도 제기됐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령은 국무회의 의결과 입법예고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대통령 훈령은 일종의 내부 지침이기 때문에 이런 절차가 필요 없다"면서 "정부가 부정적 여론을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 반대가 거세지자 정부는 스스로 관련 예산을 40억원으로 삭감해 정무위 소속 의원들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뉴시스가 단독 입수한 'G20 관련 연구 강화'라는 제목의 KDI의 제안서를 보면 정부 스스로 센터 건립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KDI는 이 제안서에서 "당초 계획인 'G20글로벌 거버넌스·개발센터(독립기관)'를 설립하는 대신, 기구와 인력 증설을 최소화하기 위해 KDI 기존 조직 내 연구 전담부서를 신설해 사업을 수행 하겠다"고 밝혔다. 인력도 기존 48명에서 18명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등 야당은 예산 전면 삭감을 계속 주장했고, 부랴부랴 총리실이 야당 의원들을 상대로 직접 설득에 나서면서 16억원의 예산을 관철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센터 설립 외에도 KDI 국제정책대학원에 '서울 G20 글로벌리더과정' 신설하겠다며 11억9500만원의 예산을 요청했는데 이는 원안대로 통과됐다.

앞서 KDI 국제정책대학원은 정부의 요청으로 '서울 G20 국제대학원'으로 교명을 바꾸려고 했다가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에도 'G20 서울 정상회의 치적 알리기', '세계적 조롱거리'라며 교내 반발이 거셌다.

KDI 역시 정부가 자신들을 전면에 내세워 G20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KDI 관계자는 "향후 G20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의제 설정에서 이니셔티브를 잡으려면 관련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면서도 "G20센터 설립은 애초 정부가 추진했던 사업으로 KDI는 예산을 배정받기 위한 '정거장' 역할에 불과했다"고 한 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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