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14일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막대한 국가부채와 민간 부문의 부실 우려가 컸던 것이 주된 강등 이유다. 이탈리아에 이어 스페인의 신용등급이 떨어짐에 따라 다른 유럽 국가로 충격이 확산할 것으로 우려된다.

도미노 강등 사태가 생긴다면 나머지 피그스(PIIGS) 국가가 가장 위험할 것으로 전망된다. 피그스는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등 5개국을 일컫는다. 스페인의 신용등급 강등은 어느 정도 예견됐고 금융시장 투자자들이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덕에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신용평가사들 “유럽 못믿겠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지난 14일 스페인의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다.

스페인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은 '부정적(negative)'이라고 S&P는 덧붙였다.

S&P가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내린 것은 지난 2009년 'AAA'에서 등급을 강등한 것을 포함해 이번이 세 번째다.

S&P는 스페인 은행의 자산이 악화하고 실업률이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는 한편, 21%에 이르는 높은 실업률이 민간 소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S&P는 성명에서 "올해 경제활동이 회복되는 징후가 있지만, 스페인의 성장 전망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며 "불량 자산이 늘면서 스페인 은행의 재무 상태도 더 나빠졌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국제적 신용평가회사 피치도 지난 13일 스위스 최대은행인 UBS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고, 유럽과 미국의 주요 은행 12개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negative)' 관찰대상에 올렸다.

피치는 앞서 영국 국영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와 로이드뱅킹 그룹의 신용등급을 두 단계와 한 단계씩 강등했으며 이날 UBS와 함께 란데스방크베를린 등 독일 은행 2곳도 추가 강등, 이날 하루만 모두 5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낮췄다.

피치는 성명에서 “각국 정부가 금융위기 속에서 이들 (5개) 은행의 생존을 보장할 가능성이 작아지고 있다”고 신용등급 하향 조정 이유를 밝혔다.

피치는 또 BNP파리바, 소시에테 제네랄(이상 프랑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이상 미국), 크레디 스위스(스위스), 도이체방크(독일) 등 대형 은행들을 부정적 관찰대상에 편입시켰다.

피치는 “(12개) 은행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린 것은 금융시장이 직면한, 점증하는 도전에 이들 은행의 사업 모델이 특히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피치는 “현재 시장에 잔존한 리스크(위험)가 2008년 위기 때 은행들과 세계 금융시스템이 받았던 스트레스와 유사하다”고 강조한 뒤 “이들 기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들이지만 최근 역사는 대형 은행도 실패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증시전문가들은 신용등급 강등 도미노가 프랑스와 피그스(PIIGS)국가로까지 이어진다면 증시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신용등급 강등이 프랑스나 독일, 영국 등 유럽 중심국가로 번지면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깎여가는 유럽 신용. 그 배경은

S&P가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내린 것은 정부의 막대한 재정 적자와 민간 부채, 높은 실업률 등으로 경제성장 전망을 의심받았기 때문이다.

올해 2분기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65.2%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8%포인트나 증가해 1997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유럽연합(EU) 회원국 평균인 GDP의 85.1%보다는 낮지만, EU가 정한 국가부채 상한선인 GDP의 60%를 넘었다. 지방정부 부채도 심각하다. 스페인 17개 광역자치단체 부채는 역대 최고인 GDP의 12.4%에 달한다.

높은 실업률과 주요 교역대상국의 경기 둔화로 경제성장 전망의 하방 위험성이 커진 것도 다른 강등 요인이다.

대우증권 서대일 연구원은 “스페인 신용등급이 떨어진 것은 다른 유럽 국가처럼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중이 크고 정부 부채가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은행들의 신용등급도 연이어 내려갈 가능성이 커졌다. 그렇게 되면 은행권의 자본 확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이탈리아에 이어 스페인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은 어느 정도 시장에서 예측된 만큼 파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3주 전쯤이었다면 스페인 신용등급 강등이 엄청난 악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 구제금융을 위한 국제공조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이어서 영향력이 제한적일 것이다”고 판단했다.

스페인 신용등급이 떨어지면서 유럽으로 충격이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당장 국가 신용등급 강등의 여파로 스페인 은행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낮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재정위기가 불거진 다른 피그스(PIIGS) 국가들의 신용등급 추가 하향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긴축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된다. 긴축을 하더라도 성장이 정체되고 재정위기가 나빠지는 악순환의 상황을 맞을 것으로 점쳐진다.

프랑스마저 신용등급 강등 대열에 합류하면 그 충격은 매우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재정위기가 서유럽으로 확산한다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 국내 증시 영향은 '제한적'

전문가들은 스페인의 신용등급 강등이 예견됐던 일이라며 국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유럽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조치, 유럽은행의 재자본화 등 유럽 재정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가 활발히 논의 중인 점이 시장의 우려를 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스페인 신용등급 강등으로 투자심리가 일시적으로 위축될 수 있지만, 증시 추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게 중평이다.

전문가들은 “프랑스까지 신용등급이 추락하는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은 아직 작다”고 보고 있다. 금융기관 안정화를 위한 국제적 공조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키움증권 마주옥 투자전략팀장은 “연쇄 신용등급 강등은 재정위기로 인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어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는 얘기가 달라지지만, 은행 자본 확충이 진행되면 신용등급 강등 우려는 잦아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대일 대우증권 연구원은 “유럽 재정위기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금융기관 자본 확충을 위한 공조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이다. 스페인 신용등급 강등은 부차적인 문제다”고 지적했다.

마주옥 팀장은 “원ㆍ달러 환율이나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국내 주식시장은 차익 실현 매물이 나타날 시점이지만 스페인 강등 때문에 더 많이 빠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다만, 코스피가 지난 6일부터 6거래일 연속 상승 흐름을 보인 만큼 이번 강등을 계기로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장화탁 주식전략 팀장은 “투자자들이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재인식하면서 최근 상승 흐름과 다른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고, KTB투자증권 정용택 이사는 “국내 증시가 최근 반등세를 보인 만큼 스페인 신용등급 강등이 단기 조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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