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팔둠의 전설

 
 

#64. 팔둠의 전설    

- 헤르만 헤세가 동화를 썼더군요. 
- 하하하. 헤세의 동화는 유명하지 않은가? 그가 쓴 최초의 작품은 10살 때 지은 ‘두 형제’라는 동화였네. 그의 노년, 70대에 그의 모든 작품들이 출판될 때 이 이야기도 포함되었지.   
- 아, 그랬나요? 유명 작가들이 동화를 몇 편씩은 다 쓰는 것 같아요. 
- 그럴만하지. 모든 진리는 비유로 말해지는 법. 무엇에 빗대지 않고 어떻게 한 부분이라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나. 작가들은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이나 비유를 즐겨 사용하지. 
- 그렇군요. 장자님도 중언(인용) 아니면 우언(비유)를 주로 사용한다 했었죠. 도(道)라는 것도 비유법 아니고는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씀이었죠? 
- 그렇지. 그래서 문학, 메타포가 생긴 거야. 또한 메타포의 기본은 동화형식이 아니겠나. 작가들이 동화를 즐겨 썼다는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 뜻밖에도 많은 작가들이 틈틈이 동화를 썼더군요. 톨스토이(바보 이반) 헤세(환상동화집) 뿐 아니라 오스카 와일드(행복한 왕자)도 썼어요.
- 오스카 와일드. 여기에 온지 벌써 1백년은 되지 아마. 
- 그렇군요. 사회주의자였나요? 
- 허허허. 자네답지 않게 그런 말을 쓰다니. 사람의 성향을 그리 단순하게 규정할 수 있는 말이 있던가? 
- 그런 비판을 받았거든요. ‘나눠 쓰고 함께 쓰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요즘은 다 ‘사회주의자’라고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더군요. ‘행복한 왕자’를 보면, 제비 한 마리가 왕자 동상의 표면에 장식된 보석들을 죄다 떼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다니잖아요. 
- 그렇지. 그거 착한 제비 이야기라고 어린애들 교과서에도 싣고 있지 않나? 그게 사회주의라면 뭐 괜찮은 주의인 것 같군. 가난한 사람도 함께 먹고 살자는 거라면 인간적으로는 착한 생각인데, 정치판에서는 그게 공격거리가 된다는 거지? 거 참 신기하네. 누가? 누가 왜 공격을 하는 거지? 
-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그런 현상이 있어요. 1900년 유럽에서의 얘기에요. 
- 그렇겠지. 1백년 전 사람들이나 하니까 그랬겠지. 하여간 옛날 사람들이란! 
- 그렇지만 지금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남을 돕고 베푸는 일은 대개 칭송을 받지만, 그래서 사회주의자라는 공격을 받기 시작하면 아주 불편해져요. 
- 흐음, 이해가 잘 안 되는군. 남을 돕고 함께 잘 살자는 행동은 칭송하면서 그걸 정치적으로 주장하면 비난을 받는다니. 뭔가 좀 꼬인 것 같군. 
- 어린아이들 교과서에 실린 동화 중에는 ‘심술궂은 거인’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 때문에 귀찮아진 거인이 자기 집 주변에 높은 담장을 쌓죠. 그러자 겨울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봄이 오질 않고, 그래서 꽃도 피지 않고 새도 울지 않는 음침한 집이 된다는 이야기. 
- 아, 그거 나도 아네. 낡은 담장 밑에 구멍이 생겨 어린아이가 기어들어오면서 봄이 다시 찾아온다는? 
- 맞습니다. 그런 이야기에 감동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도 현대인들은 정작 벽돌 살 돈만 생기면 자기 주변에 담장을 높이 쌓죠. 
- 자본주의가. 본래 천박한 거야. 어쨌든 오스카 와일드. 오늘 돌아가면 이 친구에게 술이라도 한잔 권해야겠군. 아름다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21세기 지구인들이 되새겨 읽어야 할 이야기야. 현대인들은 죄다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면서 스스로 외로워하고, 그래서 고통 받고 있질 않은가.  
- 아, 감사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지금도 외톨이인가요? 
- 워낙 외롭게 죽었지 않은가. 세상이 다 그를 버리질 않았나. 
- 워낙 유명하고 성공적인 작가였는데, 하루아침에 몰락했죠. 물론 자신의 탓도 있지만, 일종의 사회적 이지메였습니다. 그런데 저승에 가서도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것입니까? 
- 아니야. 이승을 떠난 영혼들에게 무슨 트라우마가 있겠나. 그러나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지 않는 한, 그의 의미는 그 이상이 될 수 없어. 지상의 사람들이 누구를 동경하거나 누구를 원망하느냐에 따라서, 저승의 영혼들도 힘을 얻거나 잃게 되지. 예를 들어 지상의 사람들이 알렉산더를 동경하면 알렉산더의 영혼이 힘을 얻게 되고, 슈바이처를 동경하면 슈바이처의 영향력이 커지게 돼. 
- 지상의 관심이 저승의 영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군요. 
- 그래. 사람들이 누구를 많이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렇게 힘이 생긴 영혼은 다시 지상의 일에 영향력을 갖게 되네. 
- 움베르토 에코도 동화를 썼어요. 역시 판타지였죠. 
- 아, 움베르토 에코. ‘지구인 화성인 …’ 어쩌구 하는 동화 말인가?
- ‘폭탄 장군’도 있죠. “폭탄을 많이 갖고 있으면 누구나 바쁜 사람이 되기 쉽다.”라는…. 
- 그런데 헤르만 헤세의 동화는 어떻던가. 
- 팔둠(Paldum). 
- 아하, 기억나네. 1백년 전 동화가 나왔을 때 천상의 영혼들도 재미있게 읽었어. 대략 그 줄거리를 상기시켜 줄 수 있겠나?  
- 시골마을에서 시작되죠. 팔둠 읍내에 대목장이 서는 날, 마을 사람들은 장터로 몰려가고 거기에 한 낯선 사람(이방인)이 나타납니다. 이방인은 거울장수 앞에서 각자의 소원을 말하는 순진한 소녀들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소시지를 먹고 싶은 방직공에게 소시지를 원 없이 먹게 해주고 새 옷을 갖고 싶은 사람에게 새 옷을 입혀주지요. 기적은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가난한 농부들이 화려한 사륜마차를 갖게 되고 요령 있는 사람은 큰 집을 얻었죠. 기적의 절정은 ‘산이 된 사나이’입니다. “나는 인생에서 듣는 것과 보는 것과 불멸의 것을 생각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소. 그러니 나는 팔둠만큼 크고 그 꼭대기가 구름 위까지 치솟는 높은 산이 되고 싶소.” 그래서 청년은 산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산악도시 팔둠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 그래. 마치 인류문명의 발달사를 그린 것 같았어. 인간들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스스로 그 꿈들을 실현시켜 왔지 않나. 세련된 옷을 만들고 배기량 높은 차와 창문이 높이 달린 고층 아파트들… 옛날 사람들이 본다면 20세기의 도시들은 기적의 실현과도 같아. 날개도 달리지 않은 인간들이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 대륙과 대륙 사이를 건너다니고 있지 않나. 
- 도시는 확장되고 인구는 늘고, 그러면서 전설은 점점 잊혀졌죠. 몇 번이나 도시가 쇠퇴하고 끝내는 파괴된 채로 방치되지만, 산천만은 의구하였는데.
- 기억나네. ‘세월이 흘러가면서 산도 늙어갔다. 바위와 동굴 깊숙한 곳에서 낯선 손이 일하고 있었다. 딱딱한 원성암이 물러져 점판암층으로 풍화되었으며, 시내와 폭포들이 더 깊숙이 침식해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빙하는 사라지고 호수는 커졌으며, 숲은 자갈밭으로, 초원은 검은 늪으로 변했다. … 산은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해와 달과 별이 자기와 같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 허물어져 내리고 울퉁불퉁한 돌무더기로 둘러싸여 죽어가는 산은 자기의 꿈에만 몰두했다. 예전에는 어떠했던가. …’ 
- 아, 서글픕니다. 인간 세상이 몇 번이나 바뀌도록 천년을 의연하던 산조차도 결국은 늙어 회상에 잠긴다는 이 대목은. 과연 헤세는 지구의 한 생애를 내다보고 이렇게 쓴 것이었을까요? 
- 허허. 백년 전 헤세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가서 한번 물어보겠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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