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코끼리의 최후

 
 

#63. 코끼리의 최후   
 
- 대동소이(大同小異)라는 말이 있네. 
- 크나 작으나 별 차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요?
- 크게 보면 같고 작게 보면 다르다는 말이지.혜시(惠施)가 말했다네. 만물은 금방 생겨났다가 금방 죽는다. 큰 견지에서 보면 모두 같은 것이다. 그러나 작은 견지에서 보면 모두가 다르다. 대동이여소동이(大同而與小同異). 그래서 만물은 모두가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모두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 장자님은 혜시의 말이 허황되다고 비판한 것으로 압니다만. 
- 그랬지. 이것이 말장난으로 흘러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지만 그의 가르침이 허황되다 하여 모든 말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네. 크게 보면 같고 작게 보면 다르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지 않은가. 
- 그렇군요. 코끼리도 태어나고 죽으며, 하루살이도 태어나고 죽습니다. 모든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에서는 한가지죠. 그러나 눈을 좁혀서 보면, 하루살이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에도 살아있던 코끼리가 죽을 때에도 여전히 살아있으니 하루살이에게 코끼리는 ‘영생불멸의 존재’로 보일 수 있겠군요. 
- 그렇지. 고작 1백년을 살다 가는 인간의 눈에 저 백두산 한라산이라든가 히말라야산맥 같은 건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그대로인 듯 보이겠지. 하지만 그 무엇도 생겨날 때와 없어질 때가 있으니 생성과 소멸의 법칙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크게 보면 같은 존재라는 얘기지. 
-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루살이가 나고 죽기를 백번이나 거듭해도 코끼리에게는 겨우 1백일이 지났을 뿐인 걸요. 인간이 나고 죽기를 천 번이나 거듭해도 히말라야에게는 겨우 한 절기가 지날 뿐이겠지요. 인간에게는 인간과 히말리야가 다름이 보일 뿐, 같음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또 의미도 없습니다. 
- 그래그래. 히말라야도 언젠가는 마르고 닳아서 평지가 되고, 언젠가 저 바다에 새로운 대륙이 솟아오르거나 사막 한 가운데 새로운 산이 돋는다 한들 지금의 인간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대동소이란 큰 것에게는 스스로 겸허하게 자기 분수를 깨닫는 것으로 의미가 있지만 작은 것에게는 공허한 관념일 뿐이지. 여름 벌레가 눈이 내린다는 것을 들어서 안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생애에 벌어지지는 않으니 그저 상상만 가능할 뿐이고, 눈사람이 한여름의 땡볕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안다 하더라도 역시 관념으로나 상상할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뿐이지요.  
- 동의하네. ‘지금 여기’에 충실하도록 하게. 
- ㅎㅎㅎ. 그런데 그 말씀이… 왠지 좀 싸한 느낌으로 들리는군요. 
- 그런가? 
- … .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군요. 
- 글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네. 변곡점에 대하여 말해 보겠네. 
- 변곡점. 
- 물리학 개념으로 바꿔 말하면 비등점, 임계점, 그런 순간에 대한 얘기네. 
- 물이 끓어서 증기로 바뀌는 순간, 열이 높아져서 폭발을 일으키는 순간….
- 그래. 물을 데워서 100℃를 넘기면 그 때부터 물은 끓기 시작하지. 액체에서 기체로 바뀌는 그 경계선이 비등점일세. 물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보세. 바닥에 불을 켜서 온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으나, 100℃에 이르는 순간까지는 그저 물일 뿐일세. 만약 0℃에서 100℃까지 온도를 올리는데 1천년이 걸린다면, 그 1천년 동안 물에게는 그 날이 그 날 같을 것일세. 어제보다 겨우 몇 초 정도 오르거나 내릴 터인데, 어제와 오늘 사이에 무슨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겠나. 그저 어제보다 오늘은 조금 더 더워졌겠구나, 관념적으로만 의식하며 별 실감을 못한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세. 
- 그렇겠지요. 
- 만일 온도가 30도에서 60도로 올라간다면 얼마나 심각하게 느끼겠나. 
- 30도가 올라 배나 높아졌지만 아직 비등점까지는 멀기만 합니다. 그다지 심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93도에서 96도로 올라간다면 어떻겠나. 
- 단지 3도 차이일 뿐이지만 비등점까지 거리가 한층 좁혀졌으니 긴장하게 될 겁니다. 항시 마지막 순간이 가까우면 좀 더 긴장하게 마련이죠. 
- 그렇네. 1백일의 여름을 지내고도 농부는 이렇게 기도하지 않는가.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마지막 순간에는 하루의 시간이 1백일만큼 아쉽고, 일분일초의 시간이 한창 때의 수년처럼 소중해지는 법이지. 
- 비등점이 가까워졌다는 뜻입니까? 
- 그렇게 생각되나? 
- 하여튼 예전보다는 가까워진 게 사실이겠죠. 90도인지, 93도인지, 96도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예사 때는 아닌 듯. 하루하루의 작은 차이(小異)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 정신을 바싹 차리게나. 한동안 기온이 일로상승을 했네. 
- 제 생각도 그랬습니다. 
- 일단 기세가 수그러들었지만 방심하지 말게나. 아직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니. 
- 수온의 상승이 멈춘 겁니까? 
- 주춤하는 것일 뿐. 그러나 이미 가속이 붙었으니 쉽게 복원은 어려울 걸세. 
- 무섭습니다. 
- ‘지금 여기’만이 중요하겠나? 
- 내일을 염려하란 말씀이군요. 
- 그렇지. 지금이 99도라면, 내일 당장부터 물은 끓어오를 수 있고, 더 이상 미래는 막연하다고 말해선 안 되네. 백 살을 사는 코끼리라도 죽는 날에는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 하루살이와 수명이 함께 끝나는 것 아니겠나. 영원하다 생각한 것의 종말도 하루살이의 종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네. 
- 종말 같은 것은 함부로 믿기도 어렵지만, 만일 인간에게 종말이 다가온 것이라면, 뒤늦게 걱정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수 있겠습니까? 때가 되어 끓어오르게 된다면 그냥 하늘로 날아가면 그만이지요. 안 그런가요? 
- 자, 자, 이리 와보게. 지금은 비등점을 눈앞에 둔, 위기 직전이야.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야 없지 않나? 사랑하는 자식들, 손주들에게도 미래라는 걸 남겨주고 싶지 않나? 지금 이 시대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걸 알아야 하네. 이대로 비등점을 넘어설 때까지 하던 대로 하다 끝낼 건지, 여기서 멈추고 변곡점을 그리며 안전한 지구로 돌아갈 것인지.
- 방법이 있나요? 
- 이런, 이런! 물이 끓어 넘치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생각이 아니라면 당장 불부터 끄게나. 가스불을 끄고 기다리면 수온이 다시 내려가겠지. 파리기후협약을 멋대로 탈퇴하고 핵감축 협상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괜히 밀려났겠나? 그가 왜 떨어졌다고 생각하나? 
- 어이쿠. 그게 천상회의의 선택이었어요? 
- 하늘은 무심치 않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하는 데까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봐야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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