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균형과 조화를 위한 실행자회의 (1)

 
 

#57. 균형과 조화를 위한 실행자회의 (1)         

-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궁금해 했으니 오늘은 그 얘길 해주겠네.
먼저 말을 걸어온 莊子의 표정이 진지했다. 
- 아, 드디어? 정말 궁금했습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악성 바이러스의 정체. 이건 미국이 만든 건가요 중국이 만든 건가요? 부터 해서...
- 누구 손에서 만들어졌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하늘에서 이런 게 필요하다 하면 지상의 누군가는 만들게 마련이니까. 중요한 건, 인간 세상에 이런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 퍼질만한 때가 되었다는 사실이지.
- 필요성이라도 있었다는 얘긴가요? 
- 필요성이라기보다는 개연성 정도로 해두지. 바이러스는 지상에 생명체라는 게 등장한 이래 언제나 있었지 않은가. 실은 생명체보다 먼저였지. 
- 그렇지만 이렇게 악독한 바이러스가? 
- 악독? 
- 공존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너무 교활하달까. 90도 열을 가해도 망가지지 않는다는군요. 정체를 파악했다 싶으면 새로운 변종이 등장하니 백신을 만들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극복하기도 어렵고 공존하기도 어려우니 결국 인간의 생존에 위협이 되지 않습니까? 
- 하하.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 자연의 입장에서는 늘 인간들에게 당하기만 하다가 모처럼 인간에 대해 강력한 저항이 가능한 특공대가 나온 셈인데 말이야.   

장자는 짧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기를....
- 다른 얘기부터 해보겠다. 이건 하늘에서 있은 일이야. 천부(天府)에는 ‘현자들의 원탁회의’ 같은 게 있다고 한번 말한 적이 있지? 하늘에는 오래 전부터 이승을 떠나온 영혼들로 구성된 다양한 포럼과 기구들이 있다네. 
- 기억이 납니다. 두 번째 대화에서 내게도 직접 보여주셨죠.
- 그래. 그런 기구들 중에 ‘우주의 균형과 조화를 위한 실행자회의’라는 기구가 있네. 
- 균형과 조화? 
- 이 기구의 ‘지구(地球)팀’이 몇 년 전 비상회의를 연 적이 있어. 2000년 무렵이었나. 그때 주제가 뭐였는지 아나? 
- 들어본 적이 없죠. 그땐 아무 생각 없이 살 때였으니까요. 지금처럼 심각할 일도 없었고요. 
- ‘폭주하는 지구 인류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가 주제였다네. 큰 주제는 ‘지구의 생태균형에 닥친 위기 조정에 관하여’였는데, 그 중에 특히 인류의 문제를 초점으로 다루었지. 같은 주제의 집중적인 토론회가 몇 번이나 열렸어. ‘현자들의 원탁회의’에도 소속된 몇몇 철학자 정치가 과학자들이 참여했고, 특별히 군 출신들이 다수 참가했었네. 이것은 좀 특수한 경우인데,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봐.
- 전쟁이나 군사행동? 
- 1999년 첫 번째 회의에서는 지구상에서 인류의 폭주가 정말 자연의 균형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졌는가를 다루었지. 일단 20세기 이후 지구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지만, 위험 정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좀 엇갈렸다네. 쇼펜하우어와 데이비드 소로는 큰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고, 그에 반하여 알프레드 노벨이나 니콜라 테슬라는 지구상에서 인류가 1백억 명까지도 살 수 있다고 주장했어.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60~70% 정도 의견이 ‘위협론’에 기울어 있었다네. 그래서 두 번째 회의에서부터는 ‘과연 심각한가’와 별개로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를 함께 다루기 시작했지. 특히 무인(戊寅)들의 의견이 아주 활발하게 개진되었다네. 
- 아, 전쟁 가능성이 논의되었겠군요.
- 그런 가능성이 전제되었지. 인간은 경쟁이 심화되면 한번씩은 큰일을 저지르곤 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반드시 전쟁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네.  구체적으로 의제는 이런 것이었어. 첫째, 인간들이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제한된 지구 자원을 슬기롭게 줄여 쓰도록 지성의 발달을 촉진하는 방안. 둘째, 이러한 방법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 물리적 수단으로 숫자부터 줄이자는 방안. 두 가지 의견이 치열하게 다투었지.
- 물리적 수단이라면… ?
- 전쟁뿐이겠는가. 인간의 방법으로는 고작 전쟁이나 집단살해 같은 것이겠지만, 하늘은 자연의 힘까지 사용할 수 있지. 천재지변 형태도 있고, 각종 질병이나 안전사고 형태도 있을 수 있지. 
- OmG !!!!!!!!!!!! 
- 무얼 그리 놀라나. 이미 그런 일이 종종 있었지 않은가. 하늘이 무얼 결정하기도 전에 인간들 스스로 9.11 뉴욕 비행기테러 사건부터 미국의 이라크 침공, 아프간 전쟁, 또 아프리카에서의 숱한 내전들과 게릴라들의 공방. 2천년대초에 이미 시작이 되었지 않은가. 이런 인간들의 자해가 2004년 수마트라 해변의 쓰나미라든가 일본 대지진, 북미대륙의 토네이도 산불사건 대홍수 같은 재앙도 전쟁보단 덜하지 않았네.  
- 설마 그게 ‘우주의 균형과 조화를 위한 실행자회의’에서 결정한 사건들이란 말은 아니겠죠? 승인했거나? 
- 오, 아니야. 승인까지는 아니었네. 하지만 인간들의 일부는 더 이상 억제할 수 없는 분노의 감정에 휩싸여 있었지. 그들이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테러와 침공을 저지름으로써 지구상에 재앙이 시작될 것을, 실행자회의는 적어도 예감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야. 그걸 막아야 한다는 의론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지. 게으르게 시간을 지연시키는 동안 그런 일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었던 거야. 결과적으로 2천년대 중동지역 전쟁의 참화는, 하늘이 승인은 아니지만 최소한 방관했다고 말할 수는 있어. 
-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 
- 그런 효과도 있다는 정도를 의식했을 수도 있지. 
-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방관한다는 게 좀 무책임하진 않습니까? 잔인하거나. 
- 그래? ‘하늘은 자비롭지 않다’(天地不仁)고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았나. 이미 말했듯이 실행자회의 멤버들 사이에선 인류의 폭주가 이미 지구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인식이 절반을 넘어. 그러니 하늘의 벌을 내리지 않더라도 인간들 스스로가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은근히 방관하는 거지. 어쩌면 그 자체가 본래 ‘천벌’이 실행되는 고전적 패러다임일 수도 있어. 생각해보게. 지금만 그러한가? 인간의 오만이 극에 달할 때, 인간들이 풍요를 주체하지 못하고 격렬히 탐욕을 부릴 때, 이런 일은 늘상 일어났고 그때마다 천상의 주재자들은 일손이 모자란 척 외면하곤 했지. 
- 아, 그래도 무고한 목숨들이 생으로 죽어가는 것은 너무 합니다. 이 종말적 재난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다른 방도는 없는 것입니까 정녕? 아무도 인간의 참화를 만류하려 하지 않는단 말이에요?  
- 명색이 천국인데, 여기에 평화주의자들이야 왜 없겠나. 실행자회의에 참가한 평화주의자들도 나름 분투하고 있다네, 믿거나 말거나. 그러나 인간이 참화 없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나서보자는 의견은 힘을 쓰지 못하는 거야.
- 그런데 결실이 없지 않나요? 평화주의자들의 노력.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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