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대한민국은 IT강국이다. 어께를 으쓱거릴 만큼 자랑스럽다. 'IT'가 철강, 자동차 등과 함께 세계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상을 떨치고 있으니까. 말 그대로 나라밖에서는 'IT강국'에 대한 자부심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게 맞다.

국외에서 활동하는 외교관이나 상사 멘들이 상대방에게 작은 IT제품을 건네주면 인간관계가 녹슨 기계에 기름 부은 것처럼 부드러워진단다. 메이드 인 코리아 IT제품의 위상은 이렇듯 단단하다.

국내에서도 관련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우를 받는다. 소위 실력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일 정도니까. 더 재미있기는 이미 ‘골치 덩어리’ 취급을 받고 사는 늙은이들도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문명인과 원시인으로. 당연히(?) 컴맹 쪽이 원시인이다. 나이 먹었다고 컴맹을 관용하던 시대는 이미 조선시대 얘기다.

사업을 하던 P라는 친구가 있다. 사장인지라 직원들에게 시키면 모든 것이 잘 풀렸다. 자연히 친구들 사이에서 컴맹이 무슨 감투인 냥 행세했다. 컴퓨터를 들먹이는 친구들을 향해 ‘아이들처럼 뭘 그런 걸 하느냐’는 몸짓을 하던 그였다. 그러다가 일흔 즈음에 회사를 접고 은퇴시장으로 나왔다.

동문들과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소통이 안되는 게 문제였다. 하다못해 동문모임이 있다면 자기한테는 당연히 초청장이나 엽서라도 보내리라 여겼던 것이다. 이미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사장권력에 빠져 살았다.

엽서, 편지, 전화로 친목모임을 기별해 주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스마트폰 메일, 인터넷, 동호회 카페 나아가 SNS 등 IT강국의 위상에 걸 맞는 매체를 이용한 정보교환이 생활화된 것이다.

P는 은퇴시장의 현역이 되면서 제일 먼저 자신의 컴맹처지와 철없었음을 실감하고 더럭 겁이 나더라고 고백했다. 궁리 끝에 구청에서 하는 컴퓨터교습을 받아야 했다. 강사와 동급생들의 구박과 눈치를 감내하면서 서너 달을 보냈다.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늙은 친구들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어지럽히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새벽 세 네 시경에도 요상한 그림이나 시시껄렁한 문자를 보내오기 일쑤니까. 게다가 만나기만 하면 답장도 안한다고 궁시랑 거리는 늙은이로 변했다. 이런 정도의 늙은이 에피소드는 기특하고 재미도 있다.

그러나 경쟁력이 판을 치는 현실은 다르다. ‘찬란한 IT강국’의 그림자는 어느 덧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념전쟁이 온라인상에서 잔인하게 벌어지고 있잖은가!

편을 가르고 떼로 나뉘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특유의 무기로 무장하고 싸움을 해댄다. 정치는 그들에게 ‘싸울 먹이’를 대주는 오프라인 시장일 정도로 퇴락했다.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밟고, 내던지고, 잔인하게 죽이는 걸 생활화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를 저지할 법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헉헉대고 있을 지경에 이르렀다.

남북통일은 이미 ‘대박’이 될 정도로 눈앞에 닥아 온 듯한데, 온라인 속 대한민국은 갈가리 찢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형국이 온라인 속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래도 괜찮을 거다. 문제는 그걸 오프라인 시장으로 끄집어내놓고 인기몰이로 악용하는 패들이 있어서이다. 그 반대 양상도 있다. 현실 문제를 인터넷여론시장에 내놓고 패거리를 지어 온갖 욕지거리를 해대는 패들도 있다는 것이다.

멀쩡하게 잘 치른 대통령선거를 부정선거라고 해를 넘기면서 싸운 것도 IT강국의 한 단면이다. 인터넷 속 우리나라 대통령의 초상은 인간이하로 격하된 지 오래다. 외국에 나가 열심히 외교활동을 하고 있는 대통령을 두고, ‘사고로 죽어 축하한다!’는 피켓을 인터넷에 띄운 여자가 있다. 버젓이 방송통신을 관장하는 기관의 임원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IT강국'의 자화상이다. 이런 것이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전직 남파간첩이 TV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앵커가 “요즘도 간첩이 많이 남파되느냐”라고 묻자 대뜸 고개부터 가로젓는다. 그리고는 “남한에는 온라인이 원체 발달해서 돈 많이 드는 간첩 안 만들어도 충분하다”고. 이어 그는 “남한의 인터넷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험했다”면서 연전에 있었던 모 은행전산망 마비사태가 바로 북한이 저지른 것이란다. 당시 매스컴에서도 북한의 소행임을 보도한 적이 있었다. 큰 혼란이 있었다. 인터넷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작금에 벌어진 온라인상 개인정보 대규모 유출사건도 IT강국의 비극이다. 국민 거지반이 개인정보를 털린 셈이다. 해당 회사들은 업무마비 지경이다. 벌금 적당히 내면 복구되니까 별거 아니라는 속내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손실인지 헤아려야 한다. 손해를 입었다면 배상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손해를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해당 회사들이 인정할리 없다고 생각하는 피해자가 많다.    

이런 비극을 사전에 대비할 방도를 하루속히 마련해야 한다. 벌금액수 올리는 것이 방법이 아니다. ‘IT강국’ 위상에 걸 맞는 IT적(的) 발상은 무엇인가?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