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뗏목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 55 뗏목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 친구가 살림이 어려워져서 집을 옮겼어요. 
- 평수가 줄어든 모양이군. 요즘 한국에선 부동산 문제가 시끄럽더구만. 
- 좀 그렇죠? 인간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척도 중에 엥겔계수라는 게 있는데요. 아시죠? 생활비 가운데서 먹는 비용이 차지하는 비율. 
- 알지.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전체 지출에서 먹는 데 드는 지출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돼있지 않나?  
- 그래요. 더 많이 먹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식비가 똑같이 50만원이 든다면, 월 5백만원을 버는 가구의 엥겔계수는 10%, 월 1백만원을 버는 가구의 엥겔계수는 50%가 된다는 식으로 비교하는 지표입니다. 
- 지금도 그런 지표가 의미가 있나? 
- 아주 없지는 않겠죠. 하지만, 지금 시대에선 빈부의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1천원 라면 한 그릇으로 때울 수도 있고, 1만원짜리 식사로 한 끼를 때울 수도 있는데, 이것이 반드시 빈부 차이 때문만은 아니니까요. 그래선지 요즘은 엥겔계수를 잘 언급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신 생활비 가운데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의미가 더 클 것 같아요. 
- 슈바베지수(Schwabe Index)라는 게 있더군. 부자일수록 주거비 지출의 절대금액은 커지지만,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든다는. 
- 그렇지요. 월 1백만원 수입자가 월 30만원을 집세와 관리비로 지출한다면 주거비용으로 수입의 30%, 5백만원 수입자가 100만원을 지출한다면 20%가 되니까요, 절대금액과 관계없이 비율로 따지면 역시 빈부 차이를 반영할 수 있겠네요.  
- 엥겔계수나 슈바베지수가 너무 높으면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되겠군. 
- 독일 학자 하인리히 슈바베가 이 지표를 만든 건 벌서 150년 전입니다. 슈바베지수 25%를 넘으면 빈곤층이라고 했다던데, 지금 보면 30%까지도 아주 흔한 것 같아요. 
- 그렇겠군. 1백년 전과 지금은 인구수부터 판이하게 차이가 나지 않나. 그만큼 주거비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 그런데 한국인들의 경우는 좀 독특해요. 가진 재산 중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 투자목적의 부동산 말고 실거주용 부동산만 치더라도 그것이 보유재산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거든요. 전체 물가에 비해 집값이나 전세가가 상대적으로 너무 비싸지 않은가 하는 거죠. 보통의 봉급쟁이로 살면서 10년, 20년을 버는대로 꼬박 저축해도 10억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데, 이들이 사는 아파트는 여차하면 10억에 육박하거든요. 아, 요즘은 서울시내 같으면 20~30평대 아파트도 10억을 넘어간대요. 
- 이런. 물정을 잘 모르는군. 10억은 옛날 얘기 아닌가? 새 아파트 같으면 20억도 금방이던데. 
- 맞아요. 그런 얘길 들었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잘 사느냐에 따라 금방 몇억씩, 십억씩 이렇게 오르기도 하니 그 기회를 잡은 사람들은 이런 재산이 당연한 자기 노력의 결과라고 믿고 싶고,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세상이 미친 것이다 생각해서 눈이 뒤집히죠. 이제는 투기조차 개인의 노력이나 실력이라고 강변하는 지경이에요. 거기에 정부 정책이 개입하면 운이 나빴던 원인까지도 모두 정부 탓으로 돌리려고 하죠.   
- 괜히 손댈 것 없이 시장원리에 맡겨 내버려 두는 게 낫겠군.     
- 하하하. 그럴래나요? 너무 적극적인 정부는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과 원망을 뒤집어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오늘은 돈 얘기가 주제인가? 사람들이 제일 재미있어 하는 게 돈 얘기라고는 들었네만. 
- 어휴. 요즘 같은 때 돈 얘기는 가장 열 받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TV방송에서 코미디 프로가 왜 없어졌겠어요. 무슨 얘길 해도 인구의 절반은 그저 열 받을 뿐이라. 이쪽 얘기도 저쪽 얘기도 할 수 없으니 끝나버렸지요.  
- 전통적인 EDPS라는 게 있지 않나. 
- 웬걸요. 요즘은 성평등, 페미니즘, 성 인지감수성, 이런 게 주요 아젠다가 되어서 그것도 잘못 건드리면 하루아침에 매장 당하고 말아요. 
- 아이쿠. 돈 얘기도 못하고, 남녀상열지사도 못하고, 정치풍자도 못하고, 그러면 웃을 얘기가 없겠군.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세상은 이미 사막과 같이 되었구나. 그래 앞으로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집에 아기들 웃음소리도 끊어졌다며?
- 결혼조차도 잘 안하는 시대인 걸요.   
- 정말 그대들 힘들게 사는구만. 그런데 아까 친구가 이사했단 얘길 하지 않았나? 그냥 집을 좁혀서 이사갔다는 게 오늘의 주제야? 
- 하하. 실은 그런 얘기가 아니고. 이삿짐이 어마어마했단 얘길 했죠. 
- 하아. 큰 부자였다가 쫄딱 망하기라도 했다는 건가? 
- 아니고, 그 친구는 학자였어요.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더군요. 작은 초막에 몇 보따리가 꽉 들어차 작은 도서관을 연상케 했습니다. 
- 작은 공간에 가득 쌓아놓고서야 어떻게 도서관이 되겠나. 그냥 책 창고가 된 것 아닌가? 그것도 헌책 창고. 
- 하하. 그렇군요. 책 창고. 
- 이런 얘기가 있지. 부처님 얘기야. 부처가 제자들에게 물었어. “어떤 나그네가 그리던 피안을 찾아 강을 건너려고 했다. 배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강변의 갈대와 나무들을 베어 뗏목을 만들었다. 손을 베어가며 뗏목을 만들고 거친 물결을 넘어 겨우 강 건넌 후에 나그네는 생각했지. ‘이 뗏목이 아니었다면 강을 건너올 수 없었다. 뗏목의 은혜를 잊을 수 없으니 끝까지 메고 가야겠다.’ 이 결정에 대하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 하하. 강을 이미 건넜는데 뗏목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 그렇지. 의견이 다양했다네. 
- 나는 세 가지 가능성이 떠오릅니다. 첫째, 자신의 파란만장한 방황과 구도 과정을 기념하며 정신적 의지를 삼으려는 것(의존). 둘째, 지금 도달한 곳이 과연 자기가 추구한 목적지라는 확신이 부족하므로 다시 떠날 때를 대비하여 보관해 두려고(불안감). 셋째, 누군가 다음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물려주려고(절용).  
- 그럴싸하네. 그런데 그대도 책을 많이 쌓아두고 있질 않나? 책을 왜 못 버리는데?
- 첫째, 아직 못 읽은 책이 더 많다. 둘째, 너무 좋은 책이어서 누군가에게 물려줄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셋째, 어느 대목이 생각났을 때 정확한 인용을 위하여 다시 찾아볼 필요가 있다.  
- 그래? 첫째, 아직 못 읽은 책의 대부분은 앞으로도 읽을 시간이 없을 걸세. 둘째, 아직 물려주지 못한 책은 앞으로도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일세. 셋째, 그대가 잘 읽어서 앞으로도 자주 써먹을 일이 있는 책들이라면, 그것은 좀 더 가지고 있어도 좋겠군. 부처는 이렇게 말했지. “나의 설법은 뗏목의 비유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 

*是故 不應取法 不應取非法 以是義故 如來
시고 불응위법 불응위비법 이시의고 여래
- 그러므로 응당 법을 취하지 말며 법 아님도 취하지 말라. (금강경)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