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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이리 창작우화] 장자(莊子)와 채팅을 나누다#53 눈에 색안경을 벗고 보세
황이리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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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21  0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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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눈에 색안경을 벗고 보세      
 

- 사람은 타고난 성질이 복잡하기도 하지만, 잘 변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다가도 내일이면 민주주의의 어느 부분에 신물이 나면서 ‘인간에게는 차라리 독재가 더 어울리는 것 아닐까’하고 다른 생각을 품을 수도 있으니까요.
- 그렇구나.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의 장자가 그 다음날 다른 시각의 장자와 같은 장자는 아닐 테니까 말이야. 어제는 무척 배고픈 인간이었다가 잔칫집에 초대받아 한상 거하게 먹고난 뒤에 오늘은 오히려 배부른 인간이 되기도 하지. 배고플 때는 세상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가 배부른 뒤에는 천하태평의 성질로 바뀌어 있을 수도 있을 테지. 그러면 인생관 자체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을 거야. 
- 장자님도 그러시구나.
- 인간이라면 다 그런 것이 아닐까. 굶주렸을 때는 어떤 사람이 자기 먹던 빵조각을 조금 떼어주기만 해도 감지덕지한 마음이 생기지만, 좋은 음식을 먹어 배가 불러지면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빵조각 떼어주던 사람에 대한 분노가 일어날 지도 모르지. 감히 내게 먹던 빵을 떼어주다니….
- 하하. 결국 인간이 변덕스럽기 때문인가요?
- 배고플 때의 나와 배가 부른 뒤의 나가 같은 나가 아니라는 뜻이야. 그래서 나를 도와주던 사람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변할 수가 있는 것인데, 만일 나를 도와줬던 사람이 나에게 빵 한 조각 주었던 일을 잊지 않고 스스로를 평생 은인으로 생각한다면,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한 사람은 자기가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 한 사람은 빵 한 조각으로 너무 생색을 낸다고 괘씸하게 생각하겠지. 사실 사람의 얕은 속이 어찌 열길 물속보다 어렵겠는가만, 인간은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게 속이 변하니 석을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 아침에 다 파악했지만, 저녁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아니겠나.
- 한비자(韓非子)의 고사가 생각납니다. 여도지죄(餘桃之罪).
- 맞아. 바로 그거야. 다 아는 얘기지만 간단히 한 번 더 설명해 보게.
- 춘추 말기 한비자가 ‘세난(說難)편’에 든 예화였죠. 사실인지 꾸민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위(衛)나라 영공에게 미자하라는 시종이 있었답니다.
영공은 미소년인 마자하를 젊은 시절부터 곁에 두고 사랑했다. 미자하는 언제나 영공과 함께 먹고 함께 자며 그의 곁을 지켰다. 어느 날 그들이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마침 먹음직한 복숭아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잘 익은 과일을 고르던 중에 미자하가 단물이 줄줄 흐르는 복숭아를 한입 깨물더니 비명처럼 탄성을 질렀다. “와아, 이렇게 맛있을 수가!” 영공이 그 모습을 보면서 “어디 나도 한 번 맛을 보자”고 했다. 그러자 미자하는 이미 제 입으로 깨물어 먹은 것이라 주저하면서 “이 미천한 것이 먼저 먹은 것이라”하고 차마 내밀지를 못하는데, 왕이 오히려 꾸짖듯이 말했다. “내가 굳이 그걸 먹고 싶다는 것 아니냐. 왜? 날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기라도 한 것이냐?” 미자하는 당황했다. 마지못해 먹던 복숭아를 바치자 왕이 받아먹었다. 그리고는 “정말 황홀한 맛이로구나. 네가 먹던 복숭아조차 아끼지 않고 내게 주다니 정말 충직한 신하로다.”하며 상까지 내렸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영공도 늙고 미자하도 나이가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 애정도 식는 건 정한 이치다. 애정이 식으면, 그 사이를 파고드는 방해도 있기 마련이다. 미자하를 시기하던 간신들이 주청했다. “군주께서 미천한 자를 너무 아끼시니 미자하는 교만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내치셔야 합니다.” 그를 고발할 마땅한 약점을 찾지 못하자 옛일을 끌어다 ‘재해석’하여 구실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영공은 그게 말이 된다고 받아들였다. 미자하에게 이제 싫증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너는 감히 왕인 나에게 그 천한 입에 넣었던 복숭아를 먹게 했고, 내 허락도 없이 내 마차를 꺼내 타고 다녔으니 무례하고 불충하기 이를 데 없다.”같은 이유로 사랑을 받고 같은 이유로 처벌을 받았으니, 하나의 행동이 언제는 정당하고 언제는 부당해진 것이다.

- 옳고 그름의 기준이라는 게 애매하지요? 
- 그러게 말이다. 이쁠 때 하는 행동은 다 옳고, 지겨울 때 하는 행동은 다 잘못되어 보이지. 그게 인지상정이다.
- 옳고 그름, 의나 불의에는 과연 객관적인 기준이 있기나 한 것일까요?
- 그러게. ‘지자의린(智子疑隣)’이란 말도 있지 않나?
- 아, 역시 세난편에 나오는 우화죠?

옛날 중국 송나라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 여름 폭우에 담장 한쪽이 무너졌는데, 아들이 말했다. “담장을 바로 고치지 않으면 도둑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마침 이웃사람도 담장이 무너진 것을 보고 같은 말을 건넸으나 부자는 담장고치기를 미룬 채 밤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밤, 실제로 도둑이 들어 많은 재물을 훔쳐가고 말았다. 그러자 부자는 ‘아들의 지혜로운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그런데 혹시 담장 무너진 것을 보고 간 이웃 사람이 훔쳐간 것은 아닐까 의심하였다. 같은 말을 했는데도 아들의 말은 지혜로운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웃의 말은 오히려 의심의 근거로 여긴 것이다.

- 카아.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일까요?
- 요즘 말로 이런 걸 뭐라 하는지 아나?
- 지자의린이라면서요.
- ‘내로남불’이라더구만.
- 어휴. 장자님이 더 요즘사람 같네요. 동감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 제발 자네는 중립을 잃지 말게.
- 그래야지요. 노력중입니다. 그러나 노력은 해도 저 역시 사람인지라.
- 마음을 비우는 것이 출발이야.
- 어떤 편견, 호불호를 넘어서라는 뜻이겠죠? 외모나 미사여구, 변설에 속지 말라는.  
- 커튼을 젖히면 태양 빛은 오직 한 가지 색깔/ 하지만 당신이 좋아하든 않든 그것은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 당연히 감정 자체는 죄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색안경처럼 세상을 기쁨 아니면 슬픔으로 물들이고/ 사물의 모든 모습들을 왜곡되게 보여준다/ 그런데도 그대는 손가락을 내밀며/ 이건 밉고 저건 아름답다고 말하지/ 절대로 이성과 지혜를 놓치지 말라/ 감정이 안개와 같다면 그 안개가 진리의 경지를/ 가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 크아. 멋진 시(詩)로군요.
- 8년 전 중국소년이 쓴 시라네. 당시 우빈(吳斌)이라는 18세 소년이 대입 수능시험에 논술을 대신해 쓴 시야. 극찬을 받았지. 
- 으아. 신동이로군요. 거기 비하면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ㅜㅜㅜ
- 힘내게나. 하하하. 

*唯道集虛 (유도집허) 虛者心齋也(허자심재야)
- 진리는 오직 허령한 곳에 모이는 법이니, 마음을 비우는 것이 바로 마음의 재계니라. (<莊子> 인간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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