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IP 재활용 넘어 레트로 부활
레트로 게임기 열풍에 웃돈 거래까지

[현대경제신문 진명갑 기자] 최신 기술과 그래픽 등으로 대표돼 온 게임업계에 ‘레트로(Retro, 복고풍)’ 열풍이 불고 있다. 과거 인기 게임의 모바일 재출시를 넘어 올드 IP 존재 자체가 소비자들의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모습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레트로 열풍은 게임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올드 게이머 뿐 아니라 Z세대 유저들에게도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며 “레트로 게임 트랜드가 국내 뿐 세계 시장에서도 성공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한 순간의 인기가 아니라 새로운 장르로 개척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복각판으로 출시된 '재믹스V 미니'를 어린아이가 체험하고 있다.<사진=연합>
지난해 복각판으로 출시된 '재믹스V 미니'를 어린아이가 체험하고 있다.<사진=연합>

레트로 열풍의 시발점 ‘레트로 게임기’

게임업계 복고 열풍의 시작은 레트로 게임기다.

레트로 게임기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TV에 연결해 사용했던 게임기들로 닌텐도의 패미컴 시리즈가 특히 유명했다. 국내에서는 삼성, 대우, 현대 등 주요 전자업체들이 TV용 게임기를 출시한 바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레트로 게임기는 2000년대 들어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등장 및 가정용 컴퓨터 보급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양질의 게임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지에서 레트로 게임기의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대에 뒤처지며 명맥을 감춘줄 알았던 레트로 게임기는 지난해부터 다시금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다. 올드 게임 내장형 레트로 게임기가 온라인에 출현, 30~40대 소비자 중심으로 인기를 얻은 것이다.

이에 소니, 닌텐도, 세가 등 대형 게임업체들도 과거 자사의 레트로 게임기의 복각판을 생산해 재출시하고 있다.

레트로 게임 카페 구닥동의 일부 회원들의 노력으로 1980년대 대우전자가 출시했던 가정용 게임기 ‘재믹스’의 복각판 ‘재믹스V 미니’가 지난해 500대 한정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특히 ‘재믹스V 미니’는 레트로 게임기 임에도 20만원대 후반의 높은 가격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판매시작 2분 만에 완판이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 중고시장에서는 출시 가격보다 높은 50만원~90만원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레트로 게임기의 인기 비결에 대해선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지도 않고 그래픽·사운드 모두 최신 게임에 비해 뒤처지나, 30~40대 게이머들의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게 우선 거론된다. 이제와 이들 레트로 게임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또한 게이머들의 수집욕을 자극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사진=넥슨>
<사진=넥슨>

‘레트로 감성’ 모바일 강세도 여전

국내 모바일 게임시장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출시됐던 PC온라인 게임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게임들의 출시가 줄을 이었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이 대표적이며, 최근에는 넥슨이 ‘바람의 나라’를 기반으로 모바일 게임 ‘바람의 나라 : 연’을 출시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모바일 게임시장에서는 단순히 올드 IP를 활용하는 것을 넘어 ‘레트로 감성’ 그 자체를 부활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바람의 나라 : 연’도 원작 출시 24년 만에 출시되는 게임이지만 3D 그래픽 등을 적용하기 보다는 약간의 수정을 거쳐 원작의 감성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넥슨은 ‘바람의 나라 : 연’에 ‘빽 투 더 바람’ 여름 업데이트를 진행하고 게임 내 배경과 NPC, 몬스터 등 그래픽 디자인을 구버전으로 변환하는 구버전 그래픽 모드를 지원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바람의 나라 : 연’은 애플 앱스토어, 구글플레이 매출순위에서 각각 1위, 2위를 기록하며 초반 흥행을 달리고 있다.

그라비티도 지난 7일 출시한 ‘라그나로크 오리진’의 개발단계부터 ‘라그나로크’ 원작의 감성을 살리기 위해 게임의 이름을 오리진(Origin)으로 결정했다.

카카오게임즈가 지난 16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가디언 테일즈’의 경우 신규 IP임에도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도트 디자인이 다수 적용됐다. 뿐만 아니라 게임성도 1990년대에 출시됐던 RPG게임들의 특성이 녹아 들어 많은 게임 리뷰어들이 지난 1993년 출신된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을 언급하고 있다.

‘가디언 테일즈’도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 매출순위 5위와 7위를 기록하며 서비스 초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게임시장 큰손 ‘아재 파워’

게임업계의 레트로 열풍 원동력은 결국 시장 주 소비층인 3040세대를 공략하는데 성공했다는 게 꼽힌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게임을 처음 접했던 유저들이 시간이 흘러 3040세대가 됐으며 경제력이 충분한 이들이 이들 레트로 게임을 적극 소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9 게임 이용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콘솔 게임 타이틀 구매 평균비용은 30대가 16만1천683월을 기록해 가장 높았으며, 40대가 13만7천188원으로 2위를 차지했다.

모바일게임 총 이용 평균 비용도 40대가 2만8천579원으로 가장 높았으며, 30대가 2만4천373원으로 2위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3040세대를 핵심 타겟으로 한 마케팅도 꾸준히 늘고 있다.

블리자드는 지난해 자사 PC 온라인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에 출시 초창기 ‘전장의 북소리’ 업데이트를 재구현한 ‘와우 클래식’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와우 클래식’ 서비스 직전 다수의 유저들은 과거의 불편한 UI, 파티 시스템 등을 우려했으나, 서비스 이후 연일 대기열이 발생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일본의 닌텐도도 지난 1993년 게임보이로 출시한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을 지난해 닌테도 스위치 버전으로 리메이크해 출시했다.

리메이크된 ‘젤다의 전설 꿈꾸는 섬’은 그래픽과 게임성등 여러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원작에서의 퍼즐, 탐험 요소를 그래로 계승해 닌텐도 스위치 독점 게임임에도 4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아케이드 시장, 설 자리 잃어

복고 열풍에도 재조명 받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레트로 게임도 있다. 바로 아케이드 게임 시장이다.

아케이드 게임은 오락실, 게임센터 등에 설치된 별도의 게임기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말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국내 게임 산업의 중심에 있었다. 사실상 레트로 게임 그 자체인 시장이다.

그러나 가정용 PC의 고사양화와 모바일 게임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게임 산업 시장에서 일반적인 전자오락만으로는 살아남기가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됐다.

특히 2006년 발생한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아케이드게임 산업에 대한 강한 규제로 인해 아케이드 게임들은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이후 대다수의 아케이드 게임 시설들은 뽑기방, VR게임 방으로 업종을 변경하며 산업이 사실상 고사 직전까지 몰렸다.

지난 6월에는 국내 대전격투 게임의 성지로 불리며, 해외 격투게임 매니아들에게도 잘 알려진 노량진의 ‘정인 오락실’이 29년 만에 폐업했다.

국내 아케이드 게임 시장의 규모는 바다이야기 사태 직전인 지난 2005년 4조7천621억원을 기록했지만, 지난 2018년에는 1천394억으로 대폭 축소됐다.

전국 오락실도 2005년 1만5천94개에서 2016년에는 800개로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뽑기방과 성인게임장을 포함한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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