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4명, 멀티플렉스3사 상대로 차별구제소송
1심선 원고일부승소…법원 “자막·편의 제공해야”
원고 “91억이면 장치설치” vs 피고 “400억 필요”

지난해 12월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이봄씨어터에서 서울고등법원 장애인 영화 관람 관련 재판 현장검증에 앞서 시·청각 장애인들이 영화관람 보조시스템 기기를 착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이봄씨어터에서 서울고등법원 장애인 영화 관람 관련 재판 현장검증에 앞서 시·청각 장애인들이 영화관람 보조시스템 기기를 착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대경제신문 이금영 기자] 시청각 장애인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불편함 없이 보는데 91억원이 소요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400억원이 필요하다는 멀티플렉스업계의 예상과 크게 차이 나는 금액이다.

서울고등법원 민사5부는 시청각 장애인인 김모씨 등 4명이 CJ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상대로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해달라”며 낸 차별구제소송의 항소심 6차 변론을 지난 23일 열었다.

이 소송은 김씨 등이 지난 2016년 영화관에 화면해설 음성서비스와 한글 자막을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이 소송은 이듬해 1심에서 원고승소 판결이 나왔다.

1심 법원은 “영화관들에 장애인들에게 화면해설과 자막, FM보청기기를 제공하라”고 밝혔다.

반면 멀티플렉스 3사는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날 열린 항소심 6차 변론에서 장애인 측 변호인은 “멀티플렉스 3사의 전체 스크린 2천857개 모두에 장애인의 영화관람을 위한 최소한의 장비를 설치하는 데 91억원이면 된다”며 “스크린당 상영관 내 서버 1대, 화면해설 기기 2대, 청각장애인용 스마트글라스 2대를 전부 설치해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는 앞서 멀티플렉스 측이 산정한 400억원보다 훨씬 적은 액수이며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영화관을 이용하게 되면 비용 회수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재판이 4년 4개월 동안 계속됐는데 멀티플렉스 사업자들은 업계 상황이 좋을 때도 아무런 조치도 해 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멀티플렉스 3사의 변호인은 “최근 상영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력을 축소하는 추세”라며 “논의되고 있는 기기의 대여·관리의 경우 이를 위한 추가 인건비가 발생할 수 있고 상영시스템을 바꾸는 문제이므로 협의만으로 되는지 의문”이라고 맞섰다.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도 간접적으로 멀티플렉스 3사의 손을 들어줬다.

영화배급사들이 자막 유출과 시나리오 저작권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촬영해서 (외부로) 유출할 수 있는 건 일반적인 영화 화면도 마찬가지”라며 “1심에서도 영화관에서만 재생되도록 암호화돼 있어 보안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관련 법안의 입법을 무작정 기다릴 수 없고 기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바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며 “원고 쪽에서 신속하게 진행해달라 했는데 재판부도 그렇게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날 김형두 부장판사는 “재판기록을 전자화하는 전자소송을 처음 도입할 때 변호사들도 싫어하고 직원들도 기피했으나 지금은 완전히 거꾸로 됐다”며 “시작이 어려운 부분도 분명 있지만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양측의 의견을 종합해 다음달 초까지 중재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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