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사설탐정 필립 말로는 고급 클럽 앞에서 억만장자의 딸과 결혼한 독특한 매력의 남자 테리 레녹스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레녹스를 말로가 집에 데려다 재워 준 인연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을 나누는 친구 사이가 된다.

넘쳐나는 부에 둘러싸여 지내면서도 어딘지 어두운 일면이 엿보이던 레녹스는 장전된 권총을 들고 다급하게 말로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그는 간밤 자신의 아내가 누군가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했다고 말하며, 말로에게 한 가지 도움을 요청한다.

이 책에서 중년에 이른 필립 말로는 이제 전작들의 에너지 넘치던 젊은이가 아니다.

냉소는 점점 더 심해져서 세상에 대한 쓰디쓴 무관심으로 변했고, 비정한 현실을 뼈저리게 아는 만큼 더욱 염세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구축한 윤리와 믿음의 체계는 여전히 완강하게 고수하는 모습이 오히려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사람은 보통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적응하며 유해지기 마련이지만, 말로는 그렇지 않다.

현실에 대해서는 더욱 차디찬 냉소로 일관하면서도, 본인이 옳다고 믿는 길을 고집스레 걸어가며, 누구보다 신실하게 우정을 지켜 가는 모습이 은근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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