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분노의 단계’가 온다.

 
 

#46 ‘분노의 단계’가 온다.   

오랜 숙고 끝에, 나는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지구촌의 현실을 비쳐볼 하나의 기준을 얻게 되었다. 이 상황은 마치 평생을 열심히, 성실히 살면서 가난과 질병 등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절정기를 맞은 사람이 갑자기 말기 암의 진단을 받은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일을 비유로 생각할 때에는, 실제 현실과 비교된 현실이 명확히 똑같지는 않다는 전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비유해 본다면, 지금 이 생명체가 중병에 걸렸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명백하다. 그것도 쉽게 나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난해하고도 치명적인 (말기 암과 같이) 중병이 발견되어 ‘멘붕(멘탈붕괴)상태’에 빠진 상황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비유해 본단 말이지? 바로 생태주의 관점이로구만.
- 맞아요. 생태주의라는 건 이 거대한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것이니까요. 사실 인간도, 우리에게는 단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독립된 세포들과 조직이 모여 있죠. 인간의 세포 수는 최소한 수십조인데,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미생물들이 그 안에 기생한다는군요. 
- 미생물? 종류도 많겠군. 
- 박테리아, 바이러스, 다양한 미네랄 원소들…. 그 종류가 엄청 많은가 봐요. 박테리아 종류만 1만 종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어요. 숫자로는 체세포보다 10배는 많을 거라고도 하고요. 인체 자체가 하나의 우주만큼이나 복잡하죠. 우주를 압축하면 지구처럼 되고, 지구를 압축하면 인간처럼 된다고도 해요. 
- 인간을 압축하면 한 마리 박테리아가 되려나? 
- 그럴지도 모르지요. 암튼 중요한 것은, 지구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것이죠. 그것이 생태주의 관점의 기본입니다. 
- 좋아. 그런데 그 생명체가 중증 암에 걸려있다. 이대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는 위중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런 얘기지?
- 맞습니다. 코로나19는 그런 격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잔병치레가 많았죠? 2000년 이후에만도 사스 메르스 같은 꽤 어려운 바이러스 질환들이 이미 나타났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간단히 지나갈 수 없는 대유행이 일어난 거에요.  
- 왜 이렇게 점점 심한 게 나타난 것일까. 
- 물론 상태가 아주 좋은 사람은 평소 감기 한번 앓지 않고 살아가기도 해요. 그러나 대개는 감기 정도, 얼마든지 걸리면서 살아요. 바로 낫기도 하고. 가끔 호되게 몸살을 앓더라도 시간이 좀 지나면 회복이 되지요. 
- 사람살이가 그렇다면, 지구가 가끔 감기 몸살을 앓는 것도 대수로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 
- 그렇게 볼 수 있었죠. 그런데 문제는, 언제부턴가 이 지구라는 생명체가, 감기를 달고 살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 허허. 몸이 병약해지기 시작했군. 왜? 운동을 게을리 했나? 
- 오히려 너무 심하게 운동을 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과학기술의 개발이나 경제활동, 개발, 자연파괴, 국지적 전쟁의 지속, 핵실험, 인구증가…. 지구가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간은 과속질주를 해왔죠.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 맞아. 운동이 과해도 몸살이 나지. 그런데, 왜 이것을 암이라고 보나? 또 한 번의 감기몸살 같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나?    
- 그것은 희망사항이구요, 그 단계는 이제 좀 지나지 않았나 싶어요. 2000년대 들어 지구가 자주 감기 증상을 보였죠. 이미 경고가 많이 있었던 거에요. 그런데도 지구는 체질을 개선한다거나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거나 영양의 균형을 맞추는 일 같은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죠. 결국은 중병이 나타나고 만 거라고 할 수 있죠. 이건 아주 심각한 거에요.  
- 부조화가 극단적으로 심해지긴 했지. 그래서 말기암에 비할 정도의 중병이 시작되었다. 그러면, 중증 암이 발견된 지구의 미래는 어떻게 된다는 건가. 좀 생각해 보세. 정말 인류는 지구상에서 멸종될까? 지구가 파괴되는 게 아니라면 말일세. 
- 마음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울 정도의 중증 암이 발견되었다면. 이게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겠지요? 
- 당연하지. 수백 년에 걸쳐 곪아온 것이겠지.
- 사람의 경우에 비교해서 생각해 보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말기 암이 발견되었을 때 보통 4-5단계의 심리적 반응과정을 보인답니다. 시카고대학 교수가 정리한 적이 있지요. 순서대로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는 부정. “그럴 리가 없어.” “에이, 오진일 거야.” 둘째는 분노. “정말이라구? 왜 하필이면 내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셋째는 타협과 포기. “아아, 정말이라니.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야.” 넷째는 우울. “돌아보니 건강을 위해 조심할 기회가 없지 않았는데, 사실 위험신호가 여러 번 있었어. 난 무얼 위해 달려온 것일까.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야.” 그 다음은 수용. “오, 하느님. 이제 어떻게 할까. 암과 싸워볼까? 죽음을 준비할까? 암을 무시하고 남은 삶이라도 잘 살아볼까?” 
- 지금 인류사회의 반응은 어떤가? 어떤 단계에 있다고 보나? 
- 처음에는 의심했죠. 설마…. 그냥 지나가는 유행병일 거야. 아무런 대처를 안 해도 돼. 우리가 바이러스 한두 번 겪어보나? 
-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았지. 
- 맞아요. 특히 미국, 영국, 스웨덴, 이탈리아, 일본 …. 마스크도 안 쓰고 방치하다가 선진국답지 않게 수만에서 수십만 명씩 죽어나갔죠. 시신 처리도 어려울 만큼요. 그래서 당황하고 있죠. 첫 번째 놀라움의 단계.
- 이제는 받아들이지 않았나? 
- 이제 분노의 단계가 올 겁니다. 원인에 대한 분석을 시작하죠. 파괴적 유전개발과 자연파괴에만 몰두해온 ‘야수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세계기후협약을 무시하고 생태론자들의 비판과 경고를 비웃어온 미국에 대한 비난이 일어날 거고요. 전쟁준비에만 자원을 집중하는 강대국들의 책임도 묻게 될 거고, 어쩌면 비민주적인 정부들에 대한 비판도 일어날 거에요. 지구자원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개발논리를 철회하지 않는 국제자본들에 대한 비난도 더 커질 겁니다. 
- 시끄러워지겠군. 
- 당장은 정신적 공황상태가 극심해서 이런 비판들이 집약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당장은 뭐가 뭔지, 정신이 없으니까요.  
- 요즘 미국의 시민 저항운동? 이런 것도 관련이 있을까? 
- 인종차별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그 배경에는 국가의 미래, 인류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비전이 없는 개발주의 정부들에 대한 대중적 불안과 불신이 깔려 있는 것 아닐까요? 단지 흑인 한 사람이 차별로 죽은 사건은 플로이드 사건은 임계점에 부어진 한 방울의 티핑 포인트에 불과해요.
- 호오, 흥미롭군. 이런 시간이 벌써. 다음주에 더 이어서 얘기하세. (계속) 

* 至則不論 論則不至 (지즉불론 론즉부지) 
도에 이른 사람은 논하지 않고, 논하는 자는 도에 이르지 못한다. 
(22장 知北遊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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