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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이리 창작우화 : 장자(莊子)와 채팅을 나누다#43. 무용지용(無用之用)을 모르면 각박해진다
황이리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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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28  1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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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무용지용(無用之用)을 모르면 각박해진다           

인간의 번창. 그래서 생존경쟁은 날로 치열해진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많은 것을 독차지하고 뒤진 사람은 최소한의 것도 가지지 못한다. 인간은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까. 생존경쟁에서 이기는 사람만 존귀하고 뒤떨어진 사람들은 그만큼 존재가치가 떨어지는 것일까. 

- 그것은 엘리트주의자들의 착각이지. 1등만 존중받고 승자만 대접받는….
- ‘더러운 세상’ 그런 말이 있어요. 
- 그건 코미디 프로에서 유행하던 말 아니냐? 
- ㅋㅋ.. 사실은 그렇습니다. 
- 이런 말 들어보았나? 무용지용(無用之用). 
- <장자>에 있더군요. 쓰지 않는 것의 필요성. 천지비불광차대야 인지소용용족이(天地非不廣且大也 人之所用容足耳). 땅이 아무리 넓고 커도, 사람이 걸을 때 필요한 것은 발로 밟는 부분뿐이다.
- 그렇다. 사람은 걸을 때 폭 30~40센티의 길만 확보되어도 충분히 그곳을 밟고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발이 놓이는 곳은 아주 일부 아니냐? 발 닿을 부분만 있는 징검다리라 해도 걸어갈 수는 있지 않겠나?  
- 나머지 부분은요? 
- 뭐 아무러면 어떤가. 정확히 발 디딜 곳 외에는 그곳이 모두 물이든 허공이든 무슨 상관이냐. 발 딛기에 필요한 디딤돌만 충분히 있다면. 
- 어휴, 떨립니다. 허공에 떠있는 징검다리라니요. 무슨 서커스입니까?  
- 생각해 보아라. 사람이 잠을 자는 데는 다다미 한 장 크기 정도 공간이면 충분하고, 밥을 먹을 때는 의자 하나 식탁 하나 놓을 자리만 있어도 충분하지? 그 나머지 공간은 하루에 한 번 딛지 않는 공간들이지. 이 얼마나 공간의 낭비인가 말이야. 그런 공간이 굳이 필요한가? 
- 글쎄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찜찜하군요. 
- 현대인들은 참 영리해. 효율, 효율 하면서 일 분 일 초의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꼼꼼한 시간표를 짜고, 땅 한 평의 공간 허비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촘촘히 나눠 쓰기를 하는지. 그런 사람들일수록 더 성공하고 출세하고 돈도 많이 벌지 않느냐. 그렇지 않은가? 
- 하하하. 이제 반어법을 쓰시는군요. 내가 재미있어 할까봐요? 재미 하나도 없네요. 누울 자리 발 디딜 땅, 자는 시간 먹는 시간 일하는 시간 분초까지 정확하게, 그게 무슨 기계지 사람입니까? 
- 그래도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주로 그런 사람들 아니냐? 일 분 일 초도 허비하지 않고 잠도 줄이고 먹는 시간도 줄이고. 공간은 또 얼마나 알뜰살뜰하게 아껴 쓰는지. 말 한 마디, 동전 한 푼도 허비하지 않는.  
- 아 그만 하세요. 차라리 외줄타기를 배우라고 하지 그러세요. 줄타기 하는 사람은 외줄 위에서 뜀뛰기도 하고 밥도 먹고 책도 읽습디다. 그렇게 하면 뭐가 좋지요?   
- 좋긴 뭐가 좋은가. 아마도 긴장되어서 대단히 삭막한 삶이 되고 말 것이다. 웃음이 사라지고 음악이 사라지겠지. 
- 지금 세상이 그렇습니다. 
- 한시도 아까워서 ‘빨리빨리’를 외치면서 달려가지. 
- 좀 삭막하지 않나요? 앞뒤 안돌아보고 쉬지 않고 뛰는 거.
- 그뿐인가. 앞에 조금이라도 거추장스러운 것이 있으면 참아주질 못하지. 밀어젖히고 부숴버리면서 자기 가고 싶은 길로 달려가지. 달려가서 거기에 뭐가 있기에. 
- 부귀영화가 있는 걸까요? 
- 그럴까? 남을 밀어 떨어뜨리고 성가신 것을 차 부숴버리면서 달려간 사람들은, 그래서 모두 행복해졌을까? 그게 행복인가? 오히려 자신에게도 힘들걸? 당장 딛고 올라갈 발판 밖에는 아무 것도 의지할 수 없는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는 기분이 그렇지 않을까. 이 외길 사다리에는 비켜서서 쉴 곳도 없고 뒤에서는 밀고 올라오고 오르자니 기운은 점점 떨어지고, 오르다 보면 왜 올라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 끝없이 뻗은 사다리를 오르는 고통이겠군요. 비켜설 곳이 없다는 비극. 그래서 암에 걸리는 걸까요?
- 발을 내딛는데 소용되는 것 외에는 다 필요치 않다는 효율지상주의가 스스로를 위기로 몰아가지. 곡예 부리듯 올라갈 때는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고 환호해주기를 기대하겠지만, 산 중턱에도 못 미쳐서 후회막급일 걸세. 그러나 물러설 수도 없으니 이를 악물고 올라가야만 하지. 한 줄 육상 트랙을 달리는 사람은 그것이 넓은 운동장 위에 그려져 있기에 두려움 없이 달릴 수 있는 것이며,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조금만 더 걸어가면 너른 평지가 있기 때문에 일시적 긴장과 외로움을 참고 건널 수 있는 것이다. 당장 필수적 최소한의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들과 더불어 있는 여유분의 시공간도 똑같이 중요하다. 이것이 무용지용의 의미지.
- 소위 성공이나 출세라는 건 일종의 자기함정이겠습니다. 그러나 적당한 때에 스스로 내려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운이 좋은 겁니까?
- 발을 잘못 딛거나 기운이 빠져 낙상하기 전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내려설 곳을 찾는다면 운이 좋은 거지. 하지만 운으로만 되는 일이 어디 있겠나. 
- 운과 자기 의지. 반반(半半) 정도로 작용한다고 봐야겠군요. 

노자 <도덕경>에 그런 말이 있다. 
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있고 없음은 반복되고, 쉽고 어려움은 서로를 낳고, 길고 짧음은 서로 상대적인 것이며 … 앞과 뒤는 항시 함께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무슨 일을 할 때 작위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며 가르치려 애쓰지 않고 말없이 모범으로 깨우쳐줄 뿐이다.)’ 
간혹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무시하고, 선두에 선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을 비웃고, 높은 데 있거나 힘이 강한 사람은 낮은 곳에 있거나 힘이 약한 사람을 짓밟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보다 뒤에 오는 사람들이 없다면 내가 앞서 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낮은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기 몫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내가 높은 자리에 있은들 무슨 보람이 있을 것인가. 또 서로 선두만 다툰다면 삶이 얼마나 피곤할 것이며, 모두들 높은 자리만 탐낸다면 세상은 얼마나 시끄러울 것인가. 
세상은 오히려 낮은 자리, 뒷자리를 묵묵히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안정되고 그들의 수고에 의해 필요한 산업이 부족함 없이 돌아간다. 누가 더 사회의 질서에 도움이 되는가를 가려 상을 준다면 앞자리 윗자리에서 목청만 높이던 자들이야말로 맨 나중으로 밀려나야 할 것이다. 
  

* 天地非不廣且大也(천지비불광차대야) 人之所用容足耳(인지소용용족이) 

땅이란 넓고도 크기가 한이 없지만, 사람들이 걸을 때 쓰이는 것은 발로 밟는 부분뿐이다.  (<장자> 외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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