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인 “비장애인과 동등한 영화관람환경 보장받아야”
멀티플렉스 “입법·국가 논의 필요…사업자에 해결요구 부담”
재판부 “휴대폰앱 이용·혼합형 상영방식 고려해 입장 좁혀야”

지난해 12월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이봄씨어터에서 서울고등법원 장애인 영화 관람 관련 재판 현장검증에 앞서 시·청각 장애인들이 영화관람 보조시스템 기기를 착용하고 있다. <사진=연합>
지난해 12월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이봄씨어터에서 서울고등법원 장애인 영화 관람 관련 재판 현장검증에 앞서 시·청각 장애인들이 영화관람 보조시스템 기기를 착용하고 있다. <사진=연합>

[현대경제신문 이금영 기자] 시청각 장애인들이 멀티플렉스 3사를 상대로 영화관람환경 보장 요구하는 소송이 4년째 지지부진하다. 3사는 여전히 비용, 법적인 의무의 부재를 이유로 들며 소극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23일 오전 서울고등법원 민사5부는 시청각 장애인 김모씨 등 4명이 CJ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를 상대로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영화 볼 수 있게 해달라”며 낸 차별구제소송 항소심 4차 변론을 열었다.

이 소송은 김씨 등이 지난 2016년 영화 화면해설 음성서비스와 한글 자막을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이 소송은 이듬해 1심에서 원고승소 판결이 나왔으나 멀티플렉스 3사가 항소해 2심으로 넘어가게 됐다.

이날 변론에서 멀티플렉스 3사의 변호인은 “지난달 영화관을 찾은 관객이 90% 급감하고 직원들이 급여 반납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행 법령상 상영업계의 의무가 명백하게 규정돼 있다고 보기 어려워 비용을 투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안은 법원에서 개인적인 소송으로 결정될 것이 아니라 입법과 국가적 논의를 통해 해결돼야 한다”며 “법정에서 사업자에게 해결방안 제시하라고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덧붙였다.

또 “휴대폰 앱을 이용해 화면해설과 자막을 제공하는 쪽으로 결정되면 휴대폰 거치대 제공은 문제 되지 않는다”며 “그러나 이러한 앱은 누구나 설치할 수 있고 해킹할 경우 영화 내용을 미리 알 수 있어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재판부는 “어떤 기술이든 보안 문제가 있는데 실질적으로 어떤 보안 문제가 있는지 제시하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시청각 장애인 변호인은 “휴대폰 앱만이 유일한 방법으로 제공돼선 안 된다”며 “장애인이 선택하고 계속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당장 가장 저렴하고 돈이 안 드는 방식만 하겠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하고 있다.

그러나 멀티플렉스 3사는 장애인용 화면해설과 자막, 장비, 수어 통역, 웹사이트, 점자 자료 등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반면 시청각 장애인들은 이번 소송을 통해 필요 장비와 전담협의체 구성 등을 요구했다.

특히 이날 변론에서는 필요한 장비 개수까지 특정했다.

최소한 화면해설 수신기기와 자막 수신기가 각각 3천420개가 필요하고 보청기 1천710개, 상영관 내 서버 2천10개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시청각 장애인들의 변호인은 “폐쇄형 자막 장치 캡티뷰(Captiview)와 스마트 안경 등은 해외 여러 나라에서 사용하고 이 중 안경은 비용이 가장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만 장애인의 영화 관람에 가장 불편함이 없다”며 “구체적으로 비용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영화 상영 패러다임이 점차 변화하고 넷플릭스와 경쟁해야 하는데 장애인을 시혜적 관점이 아닌 영화관의 관객으로 끌어들이는 방안이라 생각해달라”며 “한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도 영화관으로 불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참고인으로 출석한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는 이러한 의견에 반대 입장을 냈다. 영진위가 이 사건과 관련해 입장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진위 관계자는 “안경이나 캡티뷰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하고 안경도 사용자가 어지럼증 호소하는 등 문제가 있다”며 “충분히 장비를 시연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결론을 도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에서도 이러한 장비 사용하는데 계속해서 민원이 들어오는 상황으로 실질적으로 관객 수 확대보다는 집에서 IPTV를 관람하게 되는 현상도 있다”며 “테스트할 가능성은 있으나 장비를 현장에 보급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처럼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자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 양측에게 각각 다른 조정안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휴대폰 앱을 이용해 화면해설과 자막 등을 제공하는 폐쇄형 상영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라”며 “마찬가지로 피고는 (기기를 이용한 화면해설과 자막을 함께 제공하는) 혼합형 상영 방식 도입을 고려하라”고 주문했다.

이어 “기존 영화 상영의 경우 외국영화를 더빙이나 자막을 이용해 상영했을 때 성인도 그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며 “법률상 의무에 대해 양측 시각 차이가 있고 조정과 재판을 병행하고 있으니 양쪽에서 모두 생각해보라”고 정리했다.

한편,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제1항은 문화예술사업자가 생산·배포하는 정보에 대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자막 등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스크린 기준 300석 이상의 영화상영관은 2015년 4월 11일부터 이러한 의무를 부담하게 됐으나 이후에도 자막 등을 제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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