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스스로 돕는 자라야 도울 수 있다

 
 

#38. 스스로 돕는 자라야 도울 수 있다

- 오늘은 시장에 좀 나가보고 왔네. 일종의 민정시찰이지. 
-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까? 
- 시절이 뒤숭숭하니, 인간들이 어떻게 이 시절을 견디고 있는지 둘러보아야 했네. 우리 원탁회의에서 몇몇 영혼들이 지역을 나누어 시찰을 나왔지. 
- 아, 그런 일도 하시는군요. 제발 인류를 좀 구해주세요. 바이러스인지 뭔지. 그거 은근히 걸쩍지근해요. 
- 그런데 말이야. 내가 누구를 도우려 해도 그 자신이 스스로를 도우려 하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도와줄 수 있겠나. 물에 빠지려고 용을 쓰는 사람을 곁에 지켜 서 있다가 건져준다 해보세. 건져놓고 돌아서면 다시 뛰어들고 건져주면 다시 뛰어들고 한단 말이야. 건져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언제까지 그 한 사람을 건져주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 그게 누군데요?
- 몰라 물어? 지금 인류가 하는 짓을 좀 보게나. 살자고 하는 짓도 있지만, 죽자고 하는 짓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공장연기는 대책 없이 쏟아내지, 쓰레기는 끝없이 만들어서 바다에 처넣지, 죽자하고 술은 퍼마시지, 술 마시고 자동차로 질주하지, 건축자재 빼먹고 부실하게 지은 건물들은 계속 무너지지, 전쟁은 자꾸 일으키지, 핵무기 만들지, 생물무기 실험은 계속하지, 대체 신(神)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인간들을 하염없이 건져주고 구해줘야만 한단 말인가. 
- 아! 생물무기? 이번 바이러스도 그것과 상관있어요? 있죠? 난 아무래도 의심스러워요. 그거 만들다가 잘못 흘러나와 유포된 거 아닌지? 일부러 퍼뜨렸을 리는 없겠지만. 
- 아, 함부로 끌어다 붙이지 말아. 그건 나도 잘 모르겠고, 암튼 인간은 그런 비슷한 일들을 많이 하고 있단 말이야. 자칫하면 스스로가 죽을 만한 짓을. 아무리 하늘이 인간들을 편히 살게 해주려고 해도, 인간들 스스로 죽을 짓을 계속하는데 언제까지 구해줄 수가 있단 말인가. 
- 맹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스스로 해치는 사람과는 함께 말을 나눌 수 없고, 스스로를 버리는 사람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
- 맞는 말이야. 자포자기하는 사람은 하늘도 구제할 수 없는 법. 내가 맹자와는 라이벌 관계지만, 맞는 말은 맞다고 해줘야지. 
- 아, 멋집니다. ‘경쟁자의 언행이라도 맞는 건 맞다고 해준다.’ 우리나라 정치가들도 좀 본받으면 좋겠네요. 
- 이런! 아무나 맹자 장자가 될 수 있다던가. 하하하….
- 예, 하긴 자기들끼리도 ‘협량정치’ ‘졸보정치’라며 치고받는 모양인데, 무얼 기대하겠습니까. 그런데 자포자기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 맹자가 한 말이니 맹자에게 물어보게. 
- 어휴. 맹자님은 너무 까다로운 분 같아서 직접 교류를 안 합니다요. 다만 맹자님이 남긴 말을 보면 “입만 열면 예와 의를 비난하는 것을 ‘자포(自暴)’라 하고, 제 스스로 어질거나 의로운 길을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자기(自棄)’라 한다.” 합쳐서 자포자기. 인의를 포기하는 것이 ‘자기’로군요. 
- 으음. 그래그래. 
- 그런데 장자님은 인의(仁義) 같은 건 개나 줘버려라, 뭐 이런 입장 아니었습니까? 
- 아이쿠. 말은 듣고 뜻은 버리는 사람이로군. 그 말이 인의를 포기하자는 말로 들리나? 
- 사실은 인의를 틀에 박힌 어떤 언행으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한 것일 뿐, 장자님도 사람이 너그럽게 살고 의롭게 살자는 원론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 그래? 다행이군. 
- 근데, 사람들이 맹자와 장자는 살아생전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 같이 만나 대화 한 번 한 적이 없으니, 서로 적대적일 것이다 하거든요. 제가 알기로 두 분은 2천3백년 전에 단 3년 차이로 돌아가셨으니 분명 같은 시대 사람이었죠. 그런데도 서로 만났다는 얘기는 없고 추종자들 사이에 세력경쟁을 벌였다는 얘기만 있어요. 마치 1900년 러시아에 톨스토이가 있고 도스토옙스키가 있었는데 전혀 만나지 않고 각자 자기 글만 쓰다가 간 것처럼요. 
- 그래서? 
- 두 분은 정말 적대적 경쟁관계일 뿐입니까? 저승에 가서도 서로 말을 섞지 않고 지내시나요? 
- 허허허. 아주 초보적인 질문이네 그려. 
- 오며가며 마주칠 때도 있으시겠죠? 
- 어제도 맹자가 내게 껌을 하나 주고 가더군. 이번 시찰 길에 같이 출발을 했네. 맹자는 워싱턴DC로 갔고, 나는 여기 서울로 왔지. 
- 레알?
- 트럼프는 좀 따끔한 소리를 들어야 해. 그런 일이라면 나보다는 맹자가 더 잘하거든. 군기를 좀 잡을 필요가 있는 곳에는 맹자가 가는 거야. 
- 공자님은요?
- 공자는 말이 좀 길잖아? 트럼프 같은 단세포 두뇌에게는 의사 전달이 잘 안될 걸세. 트가 눈만 껌벅껌벅하며 듣다가 이렇게 물을걸. “그래서 제가 잘했다는 말씀인가요, 잘 못했다는 말씀인가요?” 긴 잔소리를 듣고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잖아. 맹자 같으면 아주 간명하게 핵심을 짚어서 말을 잘 하는 사람이니까 트럼프에게 딱이지.       
- 아, 단세포적인 사람에게는 맹자 스타일이…?
- 트럼프가 샤프해 보이지만 생각은 아주 짧거든. 임기응변에 뛰어난 잔머리 타입. 그게 인간들 세상에서는 좀 통했는지 모르지만, 정말 필요한 큰 생각은 못하는 사람이야. 덩치는 큰 사람이. 그게 단세포적이라는 거지. 
- 그래서 어떤 가르침을 주실 건가요?
- 그건 비밀이네. 내 일이 아닌 것은 나도 잘 몰라.
- 미국에게 할 말은 많으시겠어요. 기후협약 가입도 미루고, 핵무기 감축이나 개발 중단 협정도 빠져나가고, 국가경제를 전쟁에 기대려 하고, 외국인들 적대시하고…. 아참, 생각났다. 지난번 멕시코 국경 장벽 짓다가 무너진 거! 그거 누구 짓이에요? 장자님 분명 알고 있을 듯? 
- 그것도 말할 수 없네. 
- 알겠습니다. 그럼 그것도 내 맘대로 추정! 
- 그래, 상상은 자유지.  
- 아, 근데 지금 열심히 하는 나라도 있잖아요? 좀 도와주시겠죠? 
- 그래서 지금 우리가 손수 조사를 나오지 않았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기억하게나. 난 이만 가네. 다음 주에 보세.  

  
* 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棄者 不可與有爲也 
  (자포자 불가여유언야 자기자 불가여유위야) 
- 스스로를 함부로 하는 사람과는 더불어 이야기할 수 없으며
스스로를 포기한 사람과는 더불어 일할 수 없다. 
(<맹자(孟子)> 이루上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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