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勤於兵 忌於辱 輔其過 則社稷危
근어병 기어욕 보기과 칙사직위
(왕이) 군비증강에 힘쓰고 쓴소리를 회피하며 잘못을 더하면 사직이 위험해진다. <管子>

제 환공이 노나라를 다시 공격한 것은 3년이 지나서였다. 그 사이에 제나라는 관중의 치세에 힘입어 국정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재정이 넉넉해지니 군비를 늘리기도 보다 용이해졌다. 다만 관중은 환공이 침략 전쟁을 즐기는 것을 늘 경계하며 우선 내정을 안정시키는 데 힘쓸 것을 권했다. 그러나 군주가 되는 순간부터 몸이 근질근질했던 환공은 틈틈이 군비를 확충하면서 기회를 기다려왔던 것이다.

“우리가 진 것은 군사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병력이 세 배만 되었어도 이길 수 있었어.”
병력은 점점 늘어나 10만 보병과 전차 5천량을 갖추게 되었고, 그 군대는 하루도 쉬지 않고 훈련하며 전쟁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도 관중이 만류했지만, 환공은 침공을 강행했다.

노나라는 다시 조말을 대장으로 삼아 저항했다. 그러나 예전의 제나라 군대가 아니었다. 제군은 노나라 군대를 격파하여 성을 세 개나 빼앗았다. 노 장공은 항복을 통고해 왔다.
화의를 위한 의식이 제나라 땅 가(柯)에서 이루어졌다. 높은 단을 쌓고 두 나라 군주가 올라섰다. 제나라 호위군이 단 아래를 둘러싼 가운데, 제 환공은 관중의 보좌를 받으며 단에 올랐고 노 장공은 조말의 보좌를 받았다. 모두 비무장의 조건이었다.

 “천자의 신하로서 천자를 제대로 모시지 않은 죄를 물은 것이오.” 제 환공의 말에 노 장공은 앞으로 신하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약조하였다. 더 이상 제나라가 노를 공격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실상 자기 힘을 과시해보고 싶었던 환공 또한 대승을 거두어 목적을 달성했으니 흔쾌히 공격을 중단할 것이었다.

두 제후가 신 앞에서 짐승의 피로 화의를 맹세하려는 순간이었다. 장공을 보좌하고 있던 조말이 몸 속 어디에 감췄던지, 손바닥만한 비수를 꺼내 제 환공의 목에 들이댔다. 조금 전까지도 승자의 여유를 만끽하던 제 환공의 목숨이 졸지에 위기에 빠진 것이다. 호위무사들과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환공의 목숨은 오직 조말의 손끝에 달렸다.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관중이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제나라는 강하고 노나라는 약하오. 아무리 그래도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핍박하는 정도가 지나칩니다. 이제 제나라 국경은 노나라 땅을 깊숙이 파고들어 곧 수도에 닿을 정도가 되었소. 노나라는 질식할 지경이오. 제나라가 빼앗은 세 개의 성을 다시 돌려준다고 약속하시오.”

관중이 환공에게 말했다. “요구를 들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환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성을 돌려주겠다.” 조말이 그제야 비수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소원을 들어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신이 무례를 범하였으니 이제 저를 벌하십시오.”

환공이 분통을 터뜨렸다. 얼마나 아찔했던가. 천하에 두려울 게 없는 군주로서 일개 패장에게 당한 굴욕이라니. 그 자리에서 죽여버려도 시원찮을 것만 같았다. “힘들게 얻은 땅을 왜 돌려줘야 한단 말인가. 네 이 놈을 당장 요절을 내고 말겠다.”

그런 환공을 관중이 달랬다. “고정하소서. 협박당해 승낙하였다가 약속을 저버리고 그를 죽이신다면 작은 기분 풀이는 되겠지만, 그와 동시에 천하에 신의가 없음을 내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로써 천하의 지지를 잃게 될 것이니 좋은 일은 못됩니다.”

관중의 말이 거의 언제나 맞았다.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환공은 약속을 지켰다. 그 소문이 퍼지자 세인들은 환공의 인덕을 칭송했으며, 많은 군소 제후들이 제 환공에게로 귀의했다.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나 환공은 천하의 패권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야기 PLUS>
아찔한 순간을 넘기고 나서야 환공은 관중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동안 관중의 만류를 무릅쓰고 전쟁을 벌여 때로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지만, 이렇게까지 혼쭐이 난 것은 처음이었다. 마침내 노나라를 굴복시켰지만, 빼앗은 성을 다 돌려주게 되었으니 그 전쟁만 놓고 보면 헛수고한 셈이었다. 전쟁에 소모된 인력과 시간, 비용을 생각하면 손실도 적지 않았다. 이후 환공은 전쟁을 멈추고 정무에 힘썼다.
따지고 보면 전쟁이란 국가의 이익과 백성의 안위를 위하여 필요할 때만 하면 되는 수단일 뿐이다. 이를테면 ‘필요악’일 뿐이다. 어떤 군주들은 남을 침공하여 위력을 과시하는 것을 부국강병의 징표로 여긴다. 전쟁 준비를 국정의 제일 목표로 삼고, 침공의 구실을 찾기 위하여 가상적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시킨다. 그러면 민심은 들뜨게 된다. 군비확장을 위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니 불만이 늘어나고, 전쟁에 관한 소식이 늘어나 사회는 불안해지며, 지혜로운 사람보다는 단지 용맹을 앞세우는 사람들이 득세하면서 사회는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무지한 사회가 된다.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국가는 더욱 불안해진다는 게 관중의 견해였다.
관중의 행적을 기록한 <관자>에는, 집권 초기에 전쟁 구실을 찾는 환공에게 충고한 관중의 말들이 남아있다. “군주가 군비증강에 힘쓰지 않고 남의 쓴 소리를 피하지 않고 과오를 더하지 않으면, 사직이 안정된다고 들었습니다. 반면 군비증강에 힘쓰고 쓴 소리 듣기를 꺼려하고 과오를 더하면, 사직이 위태로와진다고 했습니다(勤於兵 忌於辱 輔其過 則社稷危).”
“외적에 대처할 전투력을 기르는 것보다 민심을 얻고 민생을 안정시킬 내치가 우선이다.” 침공하려는 제 환공의 충신 관중과 방어해야 하는 노 장공의 충신 조말이 주장한 바가 다르지 않다. 이것이 보편 타당한 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 제후가 화의를 맹세하려는 순간이었다.
장공을 보좌하고 있던 조말이 어디선가 비수를 꺼내
제 환공의 목에 들이댔다. 일촉즉발.
환공의 목숨이 오직 조말의 손끝에 달려 있었다.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