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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이리 창작우화 : 장자(莊子)와 채팅을 나누다#31, 생각이 너무 많으면 실패한다
황이리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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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04  09: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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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생각이 너무 많으면 실패한다   

- 글 쓰는 사람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 말해보게. 
- 글이란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을 때, 그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글을 쓰기 위하여 그것에 깊이 천착하다 보면 작가에게는 그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됩니다. 스스로 식상하다는 느낌에 빠지고 마는 것이지요. 이것은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 큰 방해가 됩니다. 쓰다가는 지우고, 쓰다가는 덮어두고, 쓰다가는 포기하는 일이 일상이 되거든요. 
- 오호. 정말 큰 방해가 되겠군. 처음 영감이 떠올랐을 때, 회의가 들기 전에 단숨에 써버리지 않으면 안 되겠네. 
- 맞아요. 그냥 뱉듯이…. 그래서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글을 쓰지 않으면 아무 것도 완성하지 못할 겁니다. 
-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새로운 것이라도 깊이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겠는가. 작가들은 자기가 쓰려는 것이 완성될 즈음이면 모두 식상한 느낌에 빠지게 되겠군. 
- 식상할 정도로 천착하지 않고는 글이 완성될 수가 없고, 너무 천착하여 식상해져 버리면 차마 그것을 글이라고 내놓을 수가 없게 되지요. 
- 안 됐군. 그런 일이 자주 있는가? 
- 쓰다 만 노트가 수십 권은 될 걸요. 리드를 잡아서 어느 정도 쓰다가는 스스로 이것이 새로운 글이 아닐 거야 하는 회의(懷疑)에 빠져서 김이 새버린답니다. 그러니 시작만 잡아놓고 접어두는 글이 많아요. 
- 이런. 그럼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게. 글이 완성될 때까지는. 그러면 수십 권의 글이 완성될 수 있겠구만.   
- 하하하. 바램일 뿐이죠.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게 많아요.   
- 그런데 묻겠다. 처음에 글을 시작할 때는 그것이 세상에 필요한 말일 것이다 생각해서 시작하는 것이겠지? 
- 그렇지요. 그것보다 새로운 이야기여서 세상 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것이다 하는 착각 같은 것이 있죠. 소신이랄까. 
- 그런데 쓰는 동안 흔들린다는 말인가? 
- 쓰면서 생각해보면, 누가 이런 말을 들으려 할까 하는 의구심도 생기고, 또 계속 생각하다 보면 내 자신에게도 그것이 새롭지 않아서….
- 자기가 쓰는 이야기에 익숙해져서 그런 거겠지. 처음 생각할 때는 새롭지만 계속 생각하고 쓰노라면 자연히 익숙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 그럴 겁니다. 익숙한 이야기는 곧 식상한 느낌이 들죠. 쓰는 사람이 식상하다면 읽는 사람도 지루할 게 아닙니까. 그러면 쓸 필요가 있을까, 회의가 생기는 것이지요. 
- 그럴 것이다. 그러나 자네가 글을 완성해서 내놓으면, 자신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뻔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처음 읽는 사람들은 역시나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 않을까. 
- 그, 그러겠지요? 같은 글이나 책을 두 번 세 번 질릴 때까지 읽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새로 사면 좀 읽다가 더 이상 읽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더군요. 
- 처음부터 끝까지 참신한 이야기란 있기 어렵지. 새로운 것에 대한 궁금증이 끝까지 식지 않을 만큼 쓰는 사람은 훌륭한 작가일 것이고. 
- 아아,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 하루라도 명상을 게을리 하지 말게.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가져야지. 글 쓰는 일 뿐이겠느냐. 모든 창작, 발명, 논문, 독서, 창의적인 사업의 구상, 또는 회사의 경영. 처음 시작할 때는 모두 새로운 각오로 시작해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나른해져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지 않더냐. 그런 상태로는 계속 이끌어가기도 힘이 들지. 자기 스스로도 힘이 들거든. 그래서 그만 두지도 못하고 재미는 없고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지만, 그것은 그저 죽어가는 과정에 불과하지. 
- 그면서도 수십 년씩 사업을 유지하는 데도요? 
-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일 뿐. 
- 초심을 유지하는 방법을 좀 알려주십시오. 
- 수시로 개혁하게. 그리고 인내로 버텨야지. 혹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을 좀 읽어봤나? 20세기부터 가장 많은 책을 쓴 사람 중 하나인데. 
- 맞아요. 다 읽기 벅찰 정도로 많은 책을 썼습니다. 두껍기는 또 얼마나 두꺼운지. 몇 권을 보았습니다. 개미부터 인간, 잠, 상절백…. 
- 재미있던가? 
- 솔직히 발상은 새롭고 흥미도 느끼지만, 다큐를 좋아하는 사람의 시각에서는 이런 몇 가지 얘기를 너무 나른하게 늘여서 쓰는 것 좀 지루하죠. 저는 속도가 느린 예능프로그램이나 소설 같은 것을 잘 참고 보는 편이 못됩니다.
- 그렇지만 최고의 다작 작가라는 것은 사실이지. 다작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 자기 회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 
- 맞아. 자기 재미에 빠져서 쓰지. 물론 지루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걸 또 재미있게 빠져서 읽어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과려필패(過慮必敗)!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은 곧잘 자기 회의에 빠지므로 글을 완성할 수가 없네. 어떤 글이든 코드가 맞는 독자는 얼마든지 있는 법이니 묵묵히 써나가는 게 좋을 걸세. 앞뒤 안 맞는 이상한 드라마도 그걸 보는 시청자가 얼마든지 있으니 계속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나. 너무 소심하게 결과를 많이 예측하지 말게. 사업이든 논문이든, 그게 비법이지. 만일 스스로 재미를 잃는다면 버리지는 말고 다른 방식을 도입하면 돼. 개혁이지.
- 내가 계속 새롭게 혁신해도 세상이 몰라준다면요? 
- 송영자라는 사람이 있었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지. 
- 아, <장자>에 소개되었던? 
- 그래. 이미 보았군. 이런 사람을 배우게. 사람들이 열광한다 해도 더 잘하려고 애쓰지 않고, 사람들이 비난하고 헐뜯어도 실망하지 않았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정도(正道)를 따라 해야 하고, 정도(正道)를 따라 하는 일이라면 누가 칭찬하거나 비난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페이스를 지켜가는, 이런 사람이 진인일세. 요즘 말로 진국. 
- 훌륭합니다. 정도를 지키며 멘탈이 강한 사람. 
- 자기 소신을 지키는 것은 자기 마음을 섬긴다고 할 수 있지. 이런 사람은 눈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슬픔과 기쁨의 감정으로 흔들리지 않는다네.
- 장사가 잘 되거나 되지 않거나, 음식 맛이 변하지 않는 요리사도 역시 진국이지요. 
- 바로 그렇네.  
  
*흔들리지 않는 사람
擧世而譽之而不加勸 擧世而非之而不加沮 
거세이예지이불가권 거세이비지이불가저  
- 사람들의 칭찬에 들뜨지 않고, 모두가 헐뜯어도 주저앉지 않는다. 
(<장자> 소요유(逍遙遊)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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