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은 부당편취·횡령, 회사는 부실펀드 알고도 판매
금융당국 늑장 대응, 사고발생 7개월 후에 대책 마련

<사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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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증권사들이 지난해 사상최대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증권사 최대 실적 잔치의 이면에는 심각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인한 고객 피해의 아픔이 숨어 있다. 연초부터 애널리스트 선행매매, 고객자금과 회삿돈 횡령 이슈로 얼룩진 증권가는 라임자산운용펀드 관련 투자자들의 대규모 원금손실로 인해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부실 펀드로 인한 투자자들의 손실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금융당국은 지난 14일 사모펀드 제도 개편을 발표했다. 위험성이 제기된 지 7개월이나 흐르고 난 뒤다. 금융당국이 늑장 대응으로 비판을 받는 이유다.

증권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직원은 고객과 회사에 피해를 입혔고, 증권사는 고객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 현재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라임펀드는 부실펀드라는 것을 인지하고도 증권사는 수익에 혹해 고객에게 판매를 했다. 증권사에 책임이 있지만 컨트롤타워인 금융당국도 이런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구멍 뚫린 증권사, 내부통제 안 돼

지난달 17일 A증권사 애널리스트 한 명이 구속됐다. 지난해 7월 금융감독원 자본시장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이 선행매매 의혹이 있는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를 조사한 결과 부당하게 이익을 취한 정황이 드러난데 따른 것이다.

해당 애널리스트는 공표할 조사분석자료 기재 종목을 공표 전에 공범에게 미리 알려줘 매수하게 했다. 이들은 공표 후 주가가 상승하면 매도하는 방식으로 부당이익을 챙겼다. 이들이 부당하게 편취한 금액은 약 7억6천만 원이다.

비슷한 시기 B증권사 PB가 고객의 돈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고 다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고액상품가입을 유도해 투자금 13억여 원을 빼돌려 징역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증권사 직원의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지만 2월에 들어서 1건의 사건이 더 발생했다.

C증권사에서 입사한지 1년된 20대 젊은 직원이 C사의 특수목적법인(SPC) 자금 13억2천만 원을 자기 계좌로 이체해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사건들은 직원 개인의 문제로 보이지만 시스템 관리 차원에서 보면 증권사의 문제다. 직원이 횡령을 한다는 것은 회사 내부통제에 허점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직원문제로 고객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회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며 “최근 3건의 사건에 대해 증권사는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게 관련 가이드라인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각 금융위원회 자본시장 정책관이 지난 14일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 발표 기자회견에서 "사모펀드를 다시 강화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진=연합>
김정각 금융위원회 자본시장 정책관이 지난 14일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 발표 기자회견에서 "사모펀드를 다시 강화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사진=연합>

고객보다 증권사가 먼저

증권사 수장들이 올초 신년사를 통해 밝힌 “고객보호를 최선으로 하겠다”는 말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라임자산운용이(이하 라임) 환매를 중단한 1조6천700억원 규모 사모펀드 가운데 9천373억원어치가 자산 상각(손실 처리)으로 반 토막이 났다. 남은 금액 가운데서도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으로 대출을 해준 증권사들이 자금을 먼저 회수해간다.

이렇게 되면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KB투자증권 등 TRS계약을 맺은 증권사들이 선순위로 자금을 가져가게 돼 투자자들은 대규모 원금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라임자사운용은 지난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기준가격 조정 결과 이달 18일 기준 평가금액이 '플루토 FI D-1호'(작년 10월 말 기준 9천373억원)는 -46%, '테티스 2호'(2천424억원)는 –17%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라임 AI스타 1.5Y 1호', '라임 AI 스타 1.5Y 2호', '라임 AI 스타 1.5Y 3호' 등 세 펀드는 모(母)펀드 기준가격 조정에 따라 전액 손실이 발생했다"며 “증거금보다 편입자산의 가치가 더 하락해 현재로서는 고객의 펀드 납입자금이 전액 손실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증권사는 TRS계약 때문에 자금을 먼저 회수해 간다는 것은 고객의 리스크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말로 해석 가능하다.

또한, 라임이 고객 자금을 돌려주지 못한 상황에서도 증권사들은 라임과 맺은 TRS 계약에 따라 매달 수억 원씩 이자 명목의 수수료를 챙겼다. 지난해 10~12월에 라임이 TRS 계약에 따라 증권사에 지불한 비용은 55억 원으로(신한금융투자 25억원, KB증권 17억원, 한국투자증권 13억원) 라임이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한 시기와 일치한다.

증권사들이 TRS 수수료를 받고 개인 투자자보다 대출금을 우선상환 받는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도의적인 책임마저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라임 펀드에 똑같이 투자했는데 개인투자자들은 자금을 돌려받는지 못하는 반면 증권사는 원금과 이자까지 모두 챙기고 있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관련된 증권사 임원들과 긴급 현안회의를 갖고 대출금 회수 자제를 당부했다”며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늑장대응, 사모펀드 규제 다시 강화

라임자산운용과 알펜루트자산운용이 환매 중단을 선언하는 등 사모펀드의 유동성 위기가 커지가 금융위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2015년 모험자본 육성 등을 위해 마련한 사모펀드 완화 규제를 5년만에 다시 강화했다.

금융위는 지난 14일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개선 방향' 발표에서 각 시장 참여자들이 효과적으로 서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운용사에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판매사에게는 판매 후 제대로 운용되는지 점검할 책임을 지도록 한다. 수탁기관에 대해서는 운용사의 부당행위에 대해 감시기능을 주고 증권사에는 레버리지 제공에 따른 관리책임을 강화한다.

또한 투자자는 앞으로 자신이 투자하고자 하는 사모펀드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판매사는 투자자에게 투자권유 시 상품설명자료 기재사항을 표준화해 투자자에게 핵심정보를 제공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에 투자자는 자신이 투자할 사모펀드의 투자전략과 주요 투자대상은 물론 해당 펀드가 유동성 리스크를 안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운용사 또한 개인투자자에 대해 정기적으로 자산운용보고서를 제공해야 한다. 기존에는 정기적 정보제공을 하지 않아 투자자가 운용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의무화 한 것이다.

또한 금융위는 불완전판매 관련 분쟁조정에 대한 사실조사를 신속하게 실시하고 투자자 피해를 적극 구제해 나가겠단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위법행위가 확인될 경우 엄정 제재하는 한편 펀드판매사의 불완전판매 혐의 포착시 추가 검사도 실시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에 라임 관련 현장검사 내용은 직원의 위법 부당행위에 대해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며 "회사에 대한 제재는 환매절차 먼저 진행 후 조치안을 만들어 추후 진행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사모펀드에 대해 선제적으로 밀착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문제 발생시 즉시 대응해 시장혼란을 최소화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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