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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이리 창작우화 : 장자(莊子)와 채팅을 나누다#27, 내가 나를 모르는데…
황이리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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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07  10: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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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내가 나를 모르는데…     

몸이 편안하니 손발을 잊고
마음이 편안하니 시비도 잊었노라
이미 편안하니 편안함도 잊었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네. 

온몸은 마른 나무 같이 아무 것도 모르고
마음도 꺼져버린 재처럼 아무 생각이 없어라 
오늘도 내일도 몸과 마음이 모두 사라졌다. 
39년을 살았고, 또 한 해가 저문다.
마흔이면 불혹이라는데, 내가 과연 그리 될까. 

身適忘四支 心適忘是非 
旣適又忘適 不知吾是誰
百體如槁木 兀然無所知
方寸如死灰 寂然無所思
今日復明日 身心忽兩遺
行年三十九 歲暮日斜時
四十心不動 吾今其庶幾
(백거이, ‘은궤 隱几’)

- 좋도다. 누구의 시인가? 
-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 아닙니까. 백락천이라고도 하고요. 은궤라는 시. 
- 허얼. 이게 시란 말인가? 
- 표절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죠? 
- 뭐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네만. 
- 압니다. 이 대목은 <장자> 제물론 편에도 나오죠. 남곽자 기(綦)가 은궤(옛날 선비들이 안방에 놓고 사용하던 작은 궤짝)에 기대어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육신이 해체되어 몸을 잃은 듯했다. 이를 보고 안성자 유가 물었다. ‘어찌 그리 되셨습니까. 육신이 마른 장작 같고 마음은 불꺼진 재처럼 가라앉았군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기가 대답했다. “금자오상아 여지지호(今者吾喪我 汝知之乎)?” 크아 기가 막힙니다. 
- 뭘 또? 
- 이게 그 유명한 김명환의 노래 ‘타타타’에 나온 가사 아닙니까?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 이게 다 <장자>에 나오는 말이더라구요. 
- 허허허. 내가 노래 가사를 베껴 쓰기라도 했단 말인가? 
- 아니오, 어찌 그런 말씀을. 누가 뭐래도 장자님이 가장 오래 전 사람이니 장자님이야말로 오리지널이죠. 낙천 백거이에 이어 20세기 가수도 장자님의 한 구절을 베껴 쓴 셈이로군요.  
- 그거 자꾸 베낀다고 표현하니 좀 거북하구나. 나는 표절이니 카피(copy)니 하는 말로 내 글을 활용한 훌륭한 작가들의 노고를 폄하하고 싶지 않다. 본래 훌륭한 고전은 후대 사람들이 즐겨 되새기는 법이 아니겠느냐. 그럴수록 원전은 더욱 빛나는 법이지. 엣헴.   
- 허… 알겠습니다. 장자님의 말을 재활용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은 그러니까 오히려 권장할 일이로군요.
- 그래. 내 입으로 그리 말하기는 좀 민망하다만. 
- 민망하기는요. 요즘은 스스로 자기 존재를 알리지 않으면 그냥 잊혀지는 시대니까 그리 생각 안하셔도 됩니다. 사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대단한 스승들이 있지만, 춘추전국시대 노장(老莊; 노자와 장자)만큼 완벽한 가르침을 남겨준 인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꾸 되새길 필요가 있지요. 
- 왜? 공자도 맹자도 있지 않으냐. 저 서양의 소크라테스로부터 동서양에 성인군자가 오죽 많으냐. 
- 또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도 장자님의 제자예요. 데미안이 의자에 앉아 몸에 온통 힘을 빼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자세로 명상에 잠긴 장면을 썼죠. 그게 바로 마른 나무 같고 꺼져버린 재 같은(槁木死灰; 교목사회) 상태 아니겠습니까. 
- 하하. 꿰어 맞추니까 아주 그럴싸하구나. 
- 아닌가요? 장자님은 그곳에서 헤르만 헤세나 데미안도 종종 만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정신세계가 뭔가 통할 것 같은걸요. 
- 데미안뿐이겠나. 데미안의 정숙한 어머니 에바부인과도 종종 차를 마시고 있지. 차뿐인가. 가끔은 와인도 같이 나눈다네. 농담 같겠지만. 
- 데미안이 실존인물이었단 말이에요? 
- 허허, 순진하기는. 어디 소설 속 인물이 실존해서 하늘에 왔겠나. 그와 같은 인물이 있다는 얘기지. 
- 하아. 내 정신….
- 그래. 그대는 명상수련에 좀 진척이 있었는가? 
- 잘 모르겠습니다. 자주 다른 데 정신을 빼앗기곤 합니다. 이를테면…
- 이를테면?    
- 정신을 빼앗아가는 것이 왜 이리도 많은지요. 먹고 사는 일, 가족의 안부를 챙기는 일, 찾아오는 친구들, 자식들, 국가의 간섭…
- 국가의 간섭? 그 나라는 아직도 민주화가 안 되었나?
- 웬걸요. 민주화가 되어도 국민으로서 챙겨야 할 일이 한두 가지입니까. 그 점에서는 독재시절이나 별 차이가 없죠. 기한 맞춰 세금 정산해야죠. 교통규칙 지켜야죠, 해마다 신체검사 받아야죠, 또 주민으로서 아파트 이웃들 사이에 예의도 지켜야죠. 핸드폰이나 컴터에 뉴스거리를 왜 또 그렇게 많은지. 
- 흠 국가의 간섭은 피할 수 없겠구만. 국가제도를 벗어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을 터이니. 그러나 뉴스 같은 건 안보면 되지 않나?
- 요즘엔 공식 비공식 미디어도 늘어나서 뉴스가 어찌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봐봤자 거기서 거기고 게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얘기들로 뒤죽박죽이지만. 안보고 안들을 수 없게 돼 있어요. 장자님도 한번 현대로 와서 살아보셔야 이 쓸데없이 번거로움을 이해하실 겁니다.  
- 하여튼 조잡한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는 말이로구만. 그런데 핑계대지 말게. 정신 빼앗길 일은 옛날에도 있었어. 정신 바싹 차리게나.  
- 맞습니다. 안타깝게도. 여기로부터 달아나고 싶은데, 그게 쉽질 않네요. 머리깎고 출가할 수도 없고. 하여튼 고즈넉한 성소(聖所)는 어디에도 없어요. 
- 안됐군. 그래도 노력하게. 시비분별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을 잃지 않도록.  


* 시비곡직을 다투지 않는다.  
聖人不由 而照之於天 亦因是也 
성인불유 이조지어천 역인시야
- 성인은 상대적인 시시비비를 떠나 오직 하늘의 도에 비추어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크나큰 긍정이다. (<장자> 제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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