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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이리 창작우화 : 장자(莊子)와 채팅을 나누다
황이리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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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22  09: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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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달과 손가락      

“어리석은 사람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는 것과 같이, 문자에 집착하는 자는 나의 진실을 보지 못한다.” 
(불교경전 <능가경(楞伽經)>)

- 그러나 그대여, 너무 더러운 손으로 달을 가리키지 말라. 부패한 손의 악취는 코만 막는 게 아니라 눈까지 어두워지게 한다. 
- 오오, 시(詩)입니까? 맞는 말입니다. 손이 너무 더러우면 달을 보기 전에 손에 먼저 신경이 쓰입니다. 그러니 달을 보지 못하게 되는 건 달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가리킨 자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뒤집어 보니 큰 깨달음이 오는군요. 
- 그렇다. 오늘날 진리를 가르친다는 사람들이 그 핵심은 전달하지 못하고 갖가지 잔재주로 자기 자신을 더 과시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것은 달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너무 더러운 손으로 달빛을 막아 오히려 달빛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일과도 같지. 
- 손이 너무 커서 달빛을 가린다든지, 손가락을 온갖 보석으로 치장하여 달보다는 손가락이 더 위대해보이게 한다든지. 
- 맞는 말이야. 맞는 말이야. 
- 그러니까 성인들의 진정한 모습이나 진정한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하는 일과는 상관없이 진리를 빙자하여 자신들의 부귀영화나 향락에 더 몰입하는 종교인들도 이 ‘더러운 손’을 가진 자들이라 할 수 있겠군요. 
- 흐음. 제법인데? 그러나 어디 종교인들만의 문제이겠느냐. 그대처럼 글 쓰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들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달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면서 장황한 이론이나 미사여구만 늘어놓아 정작 핵심이 되어야 할 달에 관한 얘기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 무슨 글을 읽었는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재미있게 들은 것 같은데 알맹이가 빠진….   
- 뜨끔합니다. ‘나는 주제의 핵심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가.’ 글 쓰는 사람이 새겨두어야 할 말이로군요.
- 너무 현학적으로 주절거리면 너저분한 곁가지만 기억에 남을 뿐, 전하려는 뜻은 날아가 버리는 수가 허다하거든.  
-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현학적으로 주절거리기만 하고 핵심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데에는 자기 스스로 달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경우도 있지 않을런지요. 
- 그렇네, 그래. 달이 어디 있는지 자기도 모르면서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손가락질만 하는 자들도 있지. 듣는 사람들은 그 손가락에 매달려 흔들리는 보석 반지 외에 진정한 달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빛나는지 알 수 없는 게 당연해. 
- 듣고 보니 이런 생각도 듭니다. 한번 이렇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대여, 그대의 비대한 손으로 달빛을 가리지나 말아라.  더러운 손으로 신성한 하늘을 가리키지 말라.부패한 입술로 진실을 논하지 말라. 피 묻은 칼끝으로 정의(正義)를 가리키지 말라. 

- 오, 그래, 그래. 내가 던진 화두가 이내 쑥쑥 가지를 치는구나. 특히 마지막 한 줄은 대단한 도약이다. 그렇게 같은 말이 될 수도 있구나. 
- 아, 쑥스럽게시리….   
- 아니야, 영감(靈感)은 그렇게 발전되고 시(詩)란 그렇게 완성되는 것이 마땅하다. 달 달 노란 달만 외친다고 그게 무슨 시가 되겠느냐. 마땅히 ‘달’이라는 사물을 통해 전하려는 실제가 있어야지. 진실이라, 진리라, 사랑이라, 정의라…. 이것은 마땅한 도약이다. 

#26. 소언첨첨(小言詹詹) 

- 흥미로운 일이 있었네요. 오늘 전철을 타고 좀 멀리 다녀왔거든요. 
- 그래? 오랜만의 나들이에 무슨 일을 겪었는가. 
- 전철 기다리는 곳에
- 플랫폼 말이겠지?
- 맞아요. 나이 육십쯤 되어 보이는 두 사내가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더군요. 
- 흔히 있는 일 아닌가. 
- 연말연시 즈음하여 동창모임이라도 가졌던 듯한 느낌인데,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가고 있는 거에요.
- 그러면 오랜만이었겠군. 밀린 얘기가 많았겠지.
- 그렇죠? 할 말이 많았겠죠. 그래도 그렇지.
- 뭐가? 
- 한 사람은 주로 말하고 한 사람은 주로 듣는 분위기인데, 잠시도 중단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더군요. 기다릴 때부터, 전차에 오른 후에, 그리고 몇 정거장 지나 내릴 때까지 말이에요. 
- 흠. 할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이 씌었거나, ㅋ…
- 그 나이면, 거의 은퇴했겠죠? 
- 그럴 수도 있겠지. 아직 기운은 팔팔하지만 정년퇴임이라도 했다면 기운은 남아돌고, 말할 사람은 없고, 입이 근질근질할 수도 있겠구만. 
- 뭐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죠. 그래도 마치 허기 들린 사람이 남 눈치보지 않고 앞에 있는 음식을 허겁지겁 집어삼키는 모습이라도 보는 것처럼, 계속해서 떠드는 모습은 좀 안쓰럽기까지 했네요. 더불어 내 자신도 반성이 되드군요. 자네가 무슨 반성을?
-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려고 애쓰지는 말자. 말을 많이 하더라도 숨은 좀 쉬어가면서 하자. 이제 두 마디 하고 싶을 때 한 마디만 해야겠다 생각했네요. 이해받지 못해 좀 안타깝거나 억울한 기분이 들더라도…. 
- 그것도 좋지. 어차피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살 수는 없어. 이해할 사람이라면 내가 한두 마디만 해도 이미 이해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네.  (계속)


*훌륭한 말은 시끄럽지 않다. 
大知閑閑 小知閒閒 (대지한한 소지한한) 
큰 지식은 여유롭게 행하지만, 작은 지식은 분주하게 촐싹거린다. 
大言炎炎 小言詹詹 (대언염염 소언첨첨)
큰 말은 담백하고 아름다우나, 작은 말은 시끄럽게 따지고 든다. 
(<장자> 제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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