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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황이리 창작우화 : 장자(莊子)와 채팅을 나누다#16, 시간의 원근법
황이리  |  doll@sg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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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04  17: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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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시간의 원근법  

- 벌써 연말이군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 그래 세월 빠르지? 하하하. 
장자는 호탕하게 웃었다. 
- 왜 웃습니까? 
- 1백년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3천년을 지내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 앗, 그렇군요. 세 살배기 어린애가 할아버지 앞에서 세월 타령을 한 꼴이네요. 생각해보니 가소로운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꾸벅) 
- 죄송하긴. 빠른 건 사실 아닌가. 
- 어려서 들은 얘깁니다만 그때 선생님 한 분이, (아마 50세 가까이 된 분이셨을걸요)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려서는 시간이 천천히 가는데,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라진다’고요.  
- 하하하 그래. 이해가 되던가?  
- 웬걸요. 열 살 남짓 어린애가 어떻게 이해를 했겠어요. 단지, 재미있는 말이다 정도로 알아들었지요. 시간이 달려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으니까요. 
- 흠. 재미를 느꼈으니 지금까지 그 말을 기억하고 있는 거겠지. 
- 그런 것 같아요. 뒤에 그 말이 다시 떠오른 건 30년쯤 더 지나서였죠. 문득 생각해보니 시간이 무척 빨라졌더군요. 어릴 때는 시간이 지나간다는 것을 거의 의식할 수 없었는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 시간이 무척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거예요. 
- 어떻게? 
- 어릴 때는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천천히 산책하는 정도의 속도로 흘러갔다면, 나이가 들면서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보듯, 그리고 자동차로 달리면서 보듯, 그렇게 세상이 보이는 속도가 달라졌지요. 지금은 비행기로 해를 따라가기라도 하는 듯, 일 년 단위로 시간이 흘러가요. 실제로 시간이 빨라진 건지. 나의 느낌만 그렇게 변한 건지 모르겠어요. 
- 어린애들에게 물어보지. 시간이 아직도 느리게 가고 있는지.  
- 참내. 안 그래도 30년 전의 나에게 물어봤죠. 
- 뭐라든가. 
- 그 소년은 지금도 시간을 무척이나 지루하게 보내고 있어요. 하루하루가 너무 길다는 거에요.  
- 지루할 만큼? 
- 소년은 독서광인데, 하루의 시간이 얼마나 긴지, 아침부터 시작하면 서너 권의 책을 읽어야 겨우 저녁 해가 진다는 겁니다. 
- 부럽군. 지금은 그렇질 못한가? 
- 하루가 얼마나 짧은지, 책 한 권을 읽는 사이에 사나흘의 시간이 지나가버립니다.  
- 오호. 정말 그렇군. 책 읽는 속도가 느려진 건 아니고?
-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래요. 시간이 빨라진 거에요.
- 읽는 책이 그때보단 훨씬 두꺼워진 거겠지. 
-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빠른 건 빠른 거지요.
- 맞아 맞아. 시간이 빨라졌을 거야. 
장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직 백년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에게 시간이 이렇듯 빠르게 느껴진다면 3천년을 존재한 장자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 것일까. 또 시간은 왜 빨라지는 것인지 그는 알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하고 질문을 던지자, 장자는 지그시 먼 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삼천년쯤 살아보면, 백 년 전이 ‘아까’와 같이 느껴진다네. 천년의 세월이 단 하루에 지나간 것 같기도 해.  
- 오호.
- 백년에도 못 미치는 인간의 생쯤은, 일순간처럼 느껴지지. 백년을 사는 인간에게, 매일 태어나고 죽은 하루살이의 일생은 순식간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바로 그 비슷한 느낌일 거야. 
- 거의 존재감이 없겠군요. 사람 하나 태어나고 죽는 것. 
- 존재감이 아주 없기야 하겠는가마는. 우리 선인들의 눈에는 무수한 날파리들 중 하나와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는 것이지.  
- 상대적인 느낌인 거로군요. 시간이 느리거나 빨라지는 게 아니라. 
- 맞아. 그렇게 느껴지는 것뿐이라네. 시간처럼 냉정하게, 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또 있겠나. 누구를 위하여 잠시 늦춰주거나 무엇을 위하여 서두르는 일도 없이 아주 냉혹하리만큼 똑같은 속도로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 그런데 같은 사람에게도 어릴 때 시간과 나이 들어 시간이 속도가 다르게 느껴지죠. 그 이유는 무얼까요. 
- 생각해보게. 돌쟁이에게는 1년이란 시간이 자기 전 생애에 해당하는 긴 시간이지만, 100세 노인에게는 살아온 세월의 100분의 1에 불과하지. 돌쟁이의 일생을 100번이나 반복해서 지나보냈거든. 그러니 1년은 순간처럼 짧은 시간일 뿐이야. 그게 전혀 나쁘지만은 않네. 그 비중만큼이나 시간이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수없이 반복되는 인생이 지루해서 어떻게 살 수 있겠나. 또 한 가지 비밀이 있지. 나이가 들수록 눈높이가 높아진다는 것. 
- 눈높이? 
- 갓 태어났을 때 세계는 얼굴 마주보는 어버이가 전부일세. 몇 달이 지나 고개를 가누게 되면 두리번거리면서 볼 수 있는 더 많은 세계가 보이지. 더 자라서 나무 위에라도 올라가면, 산에라도 올라 다니면, 더 많은 세계가 보이겠지. 그만큼 세계관이 넓어지는 거야. 
- 지금은 고층 빌딩도 있고, 비행기도 타죠. 
- 그뿐인가. 인공위성은 지구 전체의 조감 영상을 보내오고 있지 않나. 넓게 보는 만큼 상대적으로 세계가 더 좁아 보이는 거야. 맞아. 현대인들에게는 보이는 세계가 더 넓어졌지.  
- 그건 원근법의 원리 아닌가요? 
- 마찬가지 원리가 시간에도 작용한다네. 나는 이것을 ‘시간의 원근법’이라 부르겠네. 1천리라는 공간의 거리가 높이에서 보면 한 뼘 손안에 들어오듯이, 사람이 나이가 들면 ‘시간의 눈’도 넓어지는 거라네. 한눈에 들어오는 시간의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웬만한 시간은 한 순간처럼 느껴지는 게 당연해. 
- 시간의 원근법. 그렇다면 삼천년을 산 장자님의 눈에는? 
- 보이저 2호 인공탐사선이 태양계 밖으로 날아갔다지?
- 예. 비행시간 42년이 넘었답니다. 
- 지구는 한 점이 되고, 태양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겠지? 마치 한 장의 모바일 화면처럼. 그대도 조만간 백년의 생애가 한 눈에 들어오는 시점이 올 걸세. 그때는 그대도, 인간의 생애가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게 될 걸세.
-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하하하. 그런 복은 삼천 번도 더 받았네. 그런 ‘말 복’은 관두고 한국 막걸리나 한 항아리 올려 보내게. 우리도 연말 회식을 할 거거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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