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물 흐르듯 흘러라

 
 

#14. 물 흐르듯 흘러라.

 

- 도(道)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장자에게 물었다.

-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았나?

- 보았지요. 무수히 보았습니다.

- 물 흐르는 것이 도다.

- 에이, 그것은 자연이지요. 자연이 도입니까?

- 바로 맞췄다. 자연이 바로 도다. 노자가 말하지 않았느냐. 상선약수(上善若水). 물처럼 사는 것이 최고의 도리라고.

- 아, 그런 말인가요? 그러면 도를 따라 산다는 건 어떤 삶을 말합니까.

- 물이 흐르듯 사는 것이지.

- 에이, 구체적으로 말해줘 보세요. 뜬구름 잡는 식으로 말고요.

어깃장을 놓자 장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어떻게 말해줘야 한단 말인가. 본래 도(道)라는 것은 추상이다.

- 그래도 듣는 사람이 좀 알아들어야 공부가 되죠.

- 그렇다면 내가 물어보지. 물이 어떻게 흘러가던가.

-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 그래. 그것이 도다. 중력에 저항하지 말고 낮은 곳으로 흘러라.

- 밀려가듯 굴러가듯 흘러갑니다.

- 그것이 도다. 가야 할 곳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순순히 흘러라.

- 천천히도, 빠르게도 흘러갑니다.

- 그것이 도다. 급할 때는 빨리, 급하지 않을 때는 천천히 흘러가라.

- 때로는 흐르지 않기도 합니다.

- 그것이 도다. 부르는 곳이 없을 때는 머물러 자신을 돌아봐라.

- 간명하군요.

- 도란 본래 복잡한 것이 아니다. 아주 단순하고 간명한 것이다.

- 그런가요. 그래도 책에 이미 나온 말을 그대로 반복하시니 싱겁습니다.

- 도란 본래 싱거운 것이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원리는 변함이 없는데, 색다를 게 뭐 있겠느냐.

- 그래도 새 시대에는 새로운 맛이 있어야지요.

- 새 시대라고? 네가 어떤 옷을 갈아입고 어떤 말을 갈아타든, 도는 변함이 없다. 중력이 변하는 것을 보았느냐? 물이 차갑고 불이 뜨거운 이치가 변했더냐? 봄여름가을겨울의 순서가 바뀌는 것을 보았느냐? 21세기라는 숫자는 인간이 편의상 붙이는 기호일 뿐, 우주는 천 년 전이나 백만 년 전, 백억 년 전이나 변한 게 없다. 그제나 이제나 다른 게 없으니, 썰도 같을 수밖에!

- 도는 불변이로군요.

- 공자의 제자 염구가 자기 스승에게 물었지.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가 대답했지. “알 수 있다.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해 되는가? 공자는 무슨 재주로 그 비밀을 알았겠느냐. 단지 불변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자기가 태어나기 전이나 자기 나라가 생기기 전, 지구가 생기기 전에도 이치가 다 같았을 것임을 확신한 것이지. 예를 들면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나 삼국시대나 원시시대나, 해와 달과 별들을 움직이는 원리는 변함없이 똑같았다는 말이야.

- 태곳적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똑같다는 말인가요?

- 바로 공자가 한 말이야. 공자가 염구에게 결론적으로 말했지.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느니라’(無古無今 無始無終)라고.

- 아아, 조금은 섭섭합니다. 그래도 ‘도’라고 하면 최소한 엄숙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있어야 어울리는 것 아닙니까? 삼척동자도 다 아는 자연법칙들이나 말하면서 도라고 말하기는 너무 싱겁지 않아요?

그러자 장자는 크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 틀렸어. 틀렸어. 도라는 것이 새삼 특별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만물의 이치. 그것이 바로 도인데.

- 그러면 도라는 건 누구나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 쉽게 하나만 물어보겠다. 세 살 어린 아이가 열 개의 계단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냐 어려운 일이냐.

- 계단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 살짜리에게 일단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 그래. 세 살짜리에게는 벅찬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열 살 소년이나 스무 살 청년에게 열 개의 계단을 오르는 일은 쉬운 일이냐 어려운 일이냐.

- 몸이 성한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일도 아니지요.

- 열 개의 계단을 오르는 일. 때가 되면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가능해진다. 아직 세 살짜리일 때는 그 일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 같지만, 때가 되어 그것이 가능해진 사람에게는 그보다 쉬운 일도 없는 것이다. 도라는 건, 그게 뭔지 터득할 때까지는 대단히 어렵고 신비스러운 일처럼 생각될지 모르나, ‘아하, 이것이 도구나’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흔하고 일상적인 것이 바로 도라고 할 수 있다.

- 그래도 누가 도를 터득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와아, 대단한 걸’ 하는 기분이 듭니다.

- 그걸 대단한 척 하는 자들이 대단한 거지.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두 발로 걷는 것처럼 쉽고 네 발로 기는 것보다 쉬운 일인데, 아직 자전거 타기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누군가 자전거를 탈 줄 아는 것이 대단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수영을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수영을 즐기는 사람은 또 얼마나 대단해 보이겠느냐. 도를 아는 것도 그와 같은 일이야.

- 깨닫기 전에는 대단해 보이지만 깨닫고 나면 ‘겨우 이것?’ 하는 정도로 시시한 일이라는 것인가요?

- 시시한 일은 아니지. 자전거를 타는 기술 자체는 대단한 게 아니지만, 그것을 할 줄 알게 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유익은 무수히 많다. 수영도 그렇고.

- 그렇다면 도를 가르친다는 사람들은 다 무엇입니까? 무언가 특별한 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존경을 모으며 만인의 스승 노릇도 하는데….

- 돈을 받으면서?

- 뭐, 그, 그렇기도 하지요.

- 자전거 타기를 가르치거나 수영을 가르치면서 수고비를 받을 수는 있지.

- 도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 허허, 그렇다면 그들이 파는 건 도가 아닐 것이다. 성인들은 자신들이 아는 지식으로 밥벌이를 하지 않았네. 도라는 것은 물이 흐르는 일처럼 단순한 것이라고 깨우쳐주었을 뿐이지. 진리는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들 앞에서는 좀 뻐길 수 있겠지. 그러나 지금 인간의 정신수준이 어디 그런 수준인가? 여태도 그런 과시가 통한다고?

 

 

* 無古無今 無始無終: 무고무금 무시무종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장자> 지북유 편)

도(道=진리)에 대한 설명이다. 도는 시공을 초월하여 항시 작동하는 우주의 원리 같은 것이다.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