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부모의 삶은 어떻게 상속되는가

 
 

#12. 부모의 삶은 어떻게 상속되는가

 

내가 인류의 미래를 묻자 장자는 대답을 회피했다. 미리 다 알면 사는 재미가 떨어질 거래나.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좀 오래 전 일인데,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사람은 왜 사는 거예요?’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저 나이에 인생의 비밀을 묻다니. 사실은 그 답은 나도 잘 모른다. 그런데 부모라면 아이가 묻는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한다는 어리석은 의무감 때문에 나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대답을 해주고 말았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살아야 하는 거야’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도 여러 가지 정답 중 하나일 수는 있다. 하지만 앞으로 수십년, 어쩌면 백년을 더 살아야 하는 어린애에게 삶을 단지 의무로 느껴지게 하는 이런 대답을 던지다니. 따분한 미래를 선사한 셈은 아니었을까.

‘사람은 왜 사나요’하는 인생의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이가 어떤 미래를 상상하며 성장해 가는가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 그 순간 부모의 삶의 태도가 (고달픈 삶, 혹은 희망으로 가득 찬 삶이) 무의식중 자식세대에게 상속되는 것은 아닐까.

기왕 둘러댈 거라면 ‘맛있는 걸 먹기 위해 태어난 거야’라든가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해보려고 태어난 거야’라든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노래하기 위해서’ 같은 식으로, 아이가 인생에 흥미를 느낄만한 대답을 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어차피 성인이 되어서도 알지 못하는 정답인데, 반드시 진지하거나 심각해야 할 필요가 없다. 둘러댈 말은 얼마든지 있고, 그것은 일곱 살짜리 어린애에게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표현처럼 ‘행복하기 위해서’라든가 생일축하노래에도 나오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은 문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다못해 ‘왜 사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함께 탐색해보자’라고만 해도 유보는 되었을 터인데.

인간은 왜 사는가. 지금도 여전히 잘은 알지 못한다. 다만,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것이 (그것이 아주 불가능하지 않다면) 살기 싫다고 저항하거나 어떻게 빨리 끝낼까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뿐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곧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시간이 어제로부터 미래로 향해 흐르듯, 가만 놓아두어도 저절로 벌어지는 일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것이 내가 아는 한은 윤리적이다. 누굴 억지로 죽게 하는 일도 억지로 내 생명을 조작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그런데 인생은 ‘살아봐도 내내 지금과 변함없이 고달플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지겹겠는가.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꿈’이 불가능하다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겠는가.

 

#13. 스티븐 호킹

 

- 지상에 사는 인간들 중에도 지구의 미래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네.

장자가 말했다.

- 엇? 그렇죠? 내 짐작이 맞았군요. 그런 것 같았어요.

- 짐작하고 있었다고?

- 그럼요. 특히 노자나 장자님의 글을 읽을 때, 나는 당신들이 무엇인가 인간의 미래나 지구의 미래를 이미 알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 푸하하하. 그랬군. 내가 남긴 말은 아주 추상적인 몇 마디뿐이었는데도?

- 그래요. 어쩌면, 당신도 그리 상세히 알지는 못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러나 무언가 알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지요. 어차피 상세히 말해봤자 2천 년 전 사람들이 알아들었을 리도 만무했겠죠. 추상적으로 말한 건 그래서가 아니었나요? 말을 알아들을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흔히 추상적이거나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 이상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 아이들에게 우화로 말해주듯이?

- 그래요. 다양한 전설이나 종교적 표현 같은 것이 그래서 생겨난 것 아니었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모두가 상징이라고.

- 흐음. 이제 그 상징적 이야기들 속에 있는 진실을 깨달을 나이가 된 거로군.

- 맞습니다. 인류의 지식이 그만큼 성장했으니, 인류의 나이가 벌써 수십만 년이라고요. 장자님이 살던 시대로부터만 쳐도 2천년이 넘어요. 신화들을 이해하듯이 이젠 종교도 넘어설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 흥미로운 발견이로군.

- 그럼 이제 조금이라도 말해주실 건가요?

- 인류의 미래 말인가? 지구의 미래?

- 무엇이든요.

‘으음’하고 장자는 뜸을 들였다.

- 뭘 그렇게 뜸들이고 그러세요. 내가 못 알아들을까봐서요?

독촉하자 장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자판을 두들겼다.

- 스티븐 호킹을 알지?

- 알지요. 영국의 물리학자죠. 작년(2018년)에 죽었죠. 지구 밖의 빅뱅 이론을 설명해서 인류에게 우주의 비밀을 많이 가르쳐주고 갔어요.

- 그래. 그 친구가 작년에 이곳으로 왔지. 오자마자 이곳 ‘현자들의 원탁회의’에도 초빙이 되었는데, 그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하겠나?

- 알 것 같아요. 불편한 육신을 벗어던졌으니 얼마나 후련했을까요.

- 뭐 그런 기분도 있었겠지만, 상제님 앞에서 대단히 투덜거렸다네.

- 투덜거려요?

-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그 무슨 루게릭인가 하는 장치로 몸을 묶어놓아서 할 수 있는 일의 절반도 못했으니 아쉬움이 많다는 거야. 어찌나 투덜거리던지….

-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의욕이 넘치는 분이었잖아요.

- 그래. 상제님께 한 꾸지람 들었다네.

- 꾸지람이라고요?

- 이렇게 말씀하셨지. ‘네 녀석이 지상에 내려가서 알고 있는 걸 죄다 풀어놓을 줄 알았다. 그래서 이곳 원탁회의가 긴급회의를 열지 않았겠나. 저러다가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지식을 너무 풀어놓을까봐 어떻게든 재갈을 물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어. 네가 스무살 때였지 아마. 아인슈타인도 그 나이에 상대성원리를 드러내서 결국 인간들이 핵폭탄을 갖게 되지 않았느냐. 아주 돌아오게 할 수는 없고, 적절한 장치로 몸이라도 묶어두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안 그랬으면 아마 인류는 지금쯤 온전히 성숙되지도 않은 정신으로 우주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온갖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 아, 결국 장자님도 입조심을 하겠다는 말씀이로군요.

-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다 알게 되겠지만, 아직은 다 말해줄 때가 아닐세. 오늘은 이만 양해하게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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