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지구의 미래

 
 

#10. 지구의 미래

 

- 남극에서 큰 빙하 덩어리가 하나 떨어져 나왔답니다. 조금 더 클까요. 대륙에서 갈라져 나온 균열의 길이가 자그마치 20km나 된답니다. 길이가 그 정도면 우리나라 영종도나 맞먹어요. 크기는 그보다 약간 클 겁니다.

- 영종도만한 빙하가 떨어져 나왔다고? 대단하네.

- 그러게요. 영종도가 좀 큽니까. 그 안에 대규모 국제비행장이 두 개, 골프클럽에 신도시에 작은 산봉우리에…. 상주인구도 6만 명을 넘어요. 연락선 오가는 선착장만도 서너 개나 있답니다.

- 어허. 만약 빙산이 되어 바다로 흘러나온다면 거대한 섬이 떠다니는 것 같겠네 그려. 경비행기 정도는 뜨고 내릴 수도 있을 거야. 주변을 항행하는 선박들과 마주칠 경우 선박들이 안전을 경고하기 위해서 빙하 위에 경고 등대나 등대지기 경고요원들의 숙소를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군 그래. 그래서 지금 빙하 덩어리가 태평양쪽으로 흘러나오기라도 했나?

- 아직 흘러나오진 않은 것 같아요. 일단 그 정도 덩어리가 분리되었다는 것만 알려졌답니다.

- 가만. 큰 바다로 흘러나올 수도 있고, 분리된 채 머물러 있다가 다시 붙을 수도 있겠군.

- 그게 이상적이긴 하죠. 그런데 이제 남극에는 여름이 시작되지 않나요?

- 맞아. 기온이 올라가면 쉽게 얼어붙기는 좀 어렵겠군. 이게 대양으로 흘러나온다면 대단한 사건이 되겠는걸.

- 그 정도겠습니까? 지구로서는 상당히 안 좋은 징조죠.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빙현상이 심각하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 너무 걱정 말게나. 그렇게 큰 빙하가 어디 쉽게 움직이겠는가. 실제로는 그저 금이 갔다는 정도로 봐도 되지 않을까. 그나저나 지구 온난화는 더 이상 사소한 문제가 아닐세. 북극도 많이 녹았다지 않은가.

- 제가 좀 찾아보았지요. 빙하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지상의 물 가운데 66퍼센트가 빙하라더군요. 강과 호수 지하수를 다 합친 것보다 배 이상 많은 물이 빙하상태로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게 녹는다면…, 어휴 상상하기도 아찔합니다.

- 하하. 과학자들이 다 계산해주지 않았는가. 바다의 수위가 지금보다 얼마나 높아질른지.

- 찾아봤지요. 북극 빙하가 다 녹으면 7미터, 남극 빙하가 다 녹으면 자그마치 60미터 이상이 높아진답니다. 우리가 사는 땅의 해발고도는 대개 몇 미터가 안돼요. 60미터나 상승하면 낮은 지대의 도시들은 거의 물에 잠기죠. 서울을 예로 들면, 남산 기슭까지?

- 아파트와 고층 건물을 많이 지었으니 한국은 그래도 견디기가 덜 어렵겠군.

- 어휴….

- 그런데 남극과 북극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일은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렇게 극단적인 재앙이 단시일에 벌어지기야 하겠어? 설사 이대로 빙하가 녹아내린다 해도 그것이 다 녹기까지는 적어도 1~2천년이나 최소한 수백 년은 더 걸릴 일이지.

- 아, 과학자들도 그렇게 말하긴 했습니다.

- 그렇다면 뭐 지금 세대에겐 그리 심각한 문제도 아니겠군.

- 하지만 극단적 재앙만이 전부가 아니지요. 평균 기온이 1~2도만 상승해도 지구의 자연은 벌써 작동이 달라지질 않습니까? 엘니뇨 현상에다가 해수면 상승. 이건 몇 센티 겨우 높아졌는데도 미크로네시아의 저지대 섬들은 이미 바다에 잠기기 시작했어요.

- 그렇지. 지구의 종말은 그야말로 눈에 띄게 극단적으로 오기보다는 야금야금 다가오고 있지. 그런데 극단적 변화는 1천년이나 뒤에 온다 하더라도, 이미 시작된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인간에겐 쉽지 않을 거야. 우리가 화분 하나를 옮기면 그 안에 살던 개미들은 아주 난리가 나질 않는가. 앞으로 1백년동안 벌어질 변화만 해도 인간에게는 이미 혼란스러운 거라네. 어디로 피할 수 있겠는가.

 

지구가 수천 년 내에 최악의 상황을 맞지는 않으리라는 건 과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렇다. 인류가 완전히 멸종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자도 그 견해에 동조했다. 하지만, 조금씩의 변화만으로도 인간의 생활은 바뀌게 된다.

누가 왕이 되거나 대통령이 되거나 어느 종족과 어느 종족이 분쟁을 벌여 국경이 변하거나 강약의 구도가 뒤바뀌는 상황이 일어난다 해도, 지구적인 자연환경의 변화로 벌어지는 이 거대한 변화의 충격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지구의 온도가 몇 도씩 상승하고 있는 이 사태 앞에서, 국가나 종족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분쟁 같은 건 자잘한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은 분쟁에도 무심할 수가 없다. 당장 밥 한 끼만 굶어도 고통을 느끼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이 인간 아닌가. 말로는 핵폭탄이라도 터지지 않는 한, 인간의 역사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사실 인간의 목숨은 총알 한 발만으로도 왔다갔다 한다. 하루살이가 100년의 역사를 논하고 1년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또 알기는 어찌 알겠는가.

 

#11. 스포일러 1

 

- 그러지 말고, 지구의 미래에 대해 속 시원히 좀 알려주시지요. 언제쯤 어떤 식으로 인류의 종말이 오려나요.

- 허허. 그걸 왜 내게 묻나?

- 나는 백년도 살아보지 못했지만, 장자님은 벌써 수천 년째, 그것도 저 높은 천계에서 세상을 보아오셨으니 아무래도 좀 시야가 넓지 않겠습니까?

- 이런. 이건 마치 이제 열 살도 안 된 어린애가 환갑 넘은 노인에게 ‘인생의 미래를 가르쳐주십시오.’라고 조르는 것 같군 그래. 미리 알아서 무엇하려나.

- 대비를 해야지요. 좀 더 지혜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 아니야. 아니야. 그냥 아직 모르는 게 있는 상태로 더 살아보게. 나도 다는 모르지만, 조금 아는 것조차 아직은 가르쳐주고 싶지 않네. 드라마는 몰라야 재미가 있는 거야. 미리 다 알아버리면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나.

- 드라마라고요?

- 그래. 인간의 역사는 거대한 장편대하다큐멘터리 같질 않은가. 그 끝을 미리 알아버리면 재미가 없지.

- ‘스포일러(spoiler)’라고 얘기하시는 것 같군요.

- 바로 그렇네. 아직 몰라도 되는 걸 너무 다 알려고 하지 말게.

 

 

* 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 소지불급대지 소년불급대년

작은 지식으로는 큰 것을 알지 못하고 짧은 목숨으로는 긴 미래를 알지 못한다. 하루살이와 버섯은 한 달 앞을 내다볼 수 없고, 한 철 사는 쓰르라미는 한 해의 일을 알지 못한다. (<장자> 소요유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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