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교활한 처세술

# 9. 교활한 처세술

 
 

이솝의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선량한 사람이 길을 가던 중 날개 부러진 독수리를 보았다. 독수리는 야생의 새를 잡아서 파는 장사꾼의 상점 앞에 있었는데, 다리에는 굵은 나뭇등걸에 묶인 쇠사슬까지 메여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날개를 꺾어서 달아날 생각을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 
선량한 사람은 마음이 아파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주머니를 다 털어 비싼 값을 주고 독수리를 사들인 다음 집에 데려가 좋은 먹이를 주고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날개를 치료해주었다. 두어 달이 지난 후 날개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선량한 사람은 독수리를 들판에 데려가 발에 묶인 사슬을 풀어주었다. “다시는 사람에게 붙잡히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가거라.” 
독수리는 상공을 넓게 선회하면서 선량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한 뒤 자기가 살던 들판으로 멀리 날아갔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였다. 독수리가 살진 토끼 한 마리를 물고 다시 마을로 찾아들고 있었다. 동구 밖 참나무 위에 잠시 앉아서 쉬고 있을 때, 지나가던 여우가 보고 말을 걸었다.
“여보게 독수리여. 그 먹음직한 토끼를 물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독수리가 그동안의 사정을 대략 설명한 뒤에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인간에게 토끼를 선물하여 앞으로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려는 것일세.” 
“자네를 구출해준 선량한 사람에게 선물하려는 것인가?” 
“아닐세. 독수리를 잡는 장사꾼에게 가져가려고 하네.”
“아니. 구출해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으려는 게 아니라 자네를 해쳤던 자에게 선물을 하겠다고? 이해가 안 되는군.”여우의 말에 독수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네는 아직 생존전략을 모르는군. 생각해보게. 선량한 사람은 선물을 바치지 않더라도 앞으로도 나를 헤치지 않을 것일세. 그러나 장사꾼은 또 언제든지 나나 우리 새끼들을 잡아 날개를 꺾으려 할 거야. 그러니 그에게 종종 선물을 해서 환심이라도 사두는 게 조금이라도 덜하지 않겠는가.”

독수리의 말을 통해서 이솝은 무엇을 깨우쳐주려 했는지 모르겠다. 선량한 이웃보다는 위험한 인간을 더 조심하라는 영악한 처세법인지, 의리보다는 안전에 대한 계산을 앞세우는 영악한 이웃들에 대한 한탄인지. 둘 다겠지. 이것이 인생의 법칙일까. 어느 쪽이든, 인생은 씁쓸하다. 

- 이솝의 시대에도, 인생은 씁쓸했군요. 
오랜만에 장자를 불러낸다. 우리의 채팅창은 허공에 열린다. 
정신을 모두어 그를 생각하면, 그가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물론 머릿속에 채팅창이 열리는 식이다. 나는 그것을 무형의 허공으로 생각한다. 문자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가끔은 그렇기도 하지만) 나의 생각에 반응하는 그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 그래 본래 씁쓸한 것 아닌가. 인생은. 그러나 그것을 씁쓸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게 나의 말이지. 정말로, 우아한 인생이 씁쓸한 것은 아니니까. 
- 글쎄요. 무엇이 우아한 것인지. 
- 머릿속이 탐욕으로 가득차 있으면서 얼굴에 비싼 화장품을 바르고 몸에 황금단추의 비단옷을 걸쳤다 해서 반드시 우아해지는 것은 아니지. 그건, 물질적 가치와는 무관해. 
- 생각해 보세요. 이솝이 말한 것처럼 남을 속이거나 해치는 자는 계속해서 살이 찌고 남을 도우며 사는 사람은 부자가 될 겨를이 없는데. 인간이 물질을 떠나서 행복하고 불행할 수 있나요?
- 불평하는군. 그대 마음에는 이미 불행이 들어차나 보이. 
- 어쩔 수 없지요. 먹어야 사는 인간으로서. 
- 불행한가? 
- 아주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 그런데? 
- 선량한 사람이 잘 살고 사악한 자들이 벌을 받는, 그런 세상은 불가능한 것입니까? 
- 왜 불가능하겠나. 인간은 선(善)을 지향하며 사는 동물이 아닌가.
- 정말 그럴까요? 내가 볼 때는 별 진전이 없어요. 
- 오, 불행한 인식이로군.  
- 이솝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거의 3천년 가까운 이솝의 시대에 비웃은 부조리가 지금까지 그대로 아닙니까. 
- 그렇기도 하군. 부정적으로만 본다면 말일세. 
- 조금이라도 나아진 게 있습니까? 
- 글쎄. 내가 보기엔. 
- 나아졌다고요? 
- 진정하게. 
장자가 시가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잎담배 연기는 부드럽고 향긋한 냄새와 함께 퍼져나갔다. 
- 좋군요. 그런데 담배는 언제 배우신 겁니까? 
- 이솝 시대에는 이런 게 없었지. 
- 푸하하. 조금은 나아진 게 있다는 말씀이군요.  
- 이 향기에 반해서 끊질 못한다네.
- 이제 그 얘기나 더 해보시죠. 인간이 어떻게 더 나아졌는지. 이 나라는 여전히 친일파 자식이 더 잘 살고, 독립군 후손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부패한 벼슬아치의 후손들은 떵떵거리고 청백리의 후손치고 잘 사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무엇이 나아졌다는 것이지요? 
- 너무 신파조 아닌가? 이쯤에서 얘길 정리하기로 하세. 
- 쩝. 
대화는 좀 더 이어졌다. 이솝이 비유로 말할 때 그 말을 알아듣고 웃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이제는 같은 얘기를 듣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는다. 매우 느리지만 인간은 서서히 문명인으로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 그런데 천천히? 대체 언제쯤 되어야 인간은 완전해질까요?
- 너무 서두르지 말게나. 점점 더 나아지겠지. 인간은 철이 들면 죽을 때가 되는 거라잖은가. 왜? 인간시대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건가?  
 
* 勢爲天子 未必貴也 천자(왕)라 해서 반드시 존귀한 것은 아니고
窮爲匹夫 未必賤也 가난한 필부라 해도 반드시 천한 것은 아니다.
(장자 도척 편)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