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도둑에게 망신당한 공자(孔子)

#5. 도둑에게 망신당한 공자(孔子) 

 
 

“어째서 정의를 실천하지 않으시나요. 실천하지 않으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신뢰를 얻지 못하면 벼슬을 얻지 못하고 벼슬을 얻지 못한다는 건 이익도 없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명예로 보나 이익의 관점으로 보나 의를 따라 행동하는 편이 실속이 있습니다. 명예나 이익 같은 걸 바라지 않는다 해도, 선비라면 하루라도 의를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장)
“글쎄요. 富라는 것은 수치를 모르는 자에게 돌아가고 출세는 귀염 받는 사람들이나 차지합니다. 그러니 명예로 보나 이익의 관점으로 따져보나 높은 사람의 귀염을 차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지요. 혹시 명예나 이익 같은 걸 바라지 않는다면 선비는 그저 가만히 물러나 자기 천성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만구득)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처세술’에 관한 심야토론이 벌어져 두 사람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자장은 의를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만구득은 높은 사람의 귀여움을 받아 출세와 이익을 취하든지, 그게 싫다면 굳이 출세를 바라지 말고 조용히 물러나 사는 게 낫다고 반론한다. 

<장자의 발제>  
토론에 앞서 흥미로운 예화로 말문을 연 것은 우리의 장자였다. 
- 노나라의 공자((孔子)에게 유하계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계는 바로 그 즈음 세상을 크게 어지럽히던 산적 두목 도척이라는 자의 형이었습니다. 
도척은 9천명이나 되는 졸개들을 거느리고 천하를 휩쓸고 다니며 아무 마을이나 침범하여 소와 말을 끌어가고 부녀자들을 겁탈하며 잡아갔습니다. 놈들이 나타났다는 소리가 들리면 큰 고을 작은 고을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성문을 닫아걸고 숨어 버렸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고통 받은 것이지요.
보다 못한 공자가 유하계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라면 아들을 훈계해야 하고 형이라면 동생을 가르치는 게 도리요. 선생은 세상이 알아주는 선비인데도 천하를 어지럽히는 아우를 가르치지 못하니 친구로서 내가 다 부끄럽소. 내 그대를 대신하여 도척을 설득해보겠소.“ 
그러자 유하계가 만류했습니다. 
”선생 말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녀석은 성정이 솟구치는 물과 같고 사나운 바람 같아 누구의 말도 듣잘 않소. 천하무적의 힘과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말재주를 가졌으니 당할 도리가 없소. 선생을 위해 말하는데, 그놈한테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나 천하의 휴머니스트인 공자는 오히려 사명감이 끓어올랐습니다. 
유하계의 말을 뒷전으로 하고 안회와 자공을 대동하여 태산으로 찾아갔지요. 도척 무리의 아지트입니다. 마침 도척은 부하들과 함께 쉬면서 사람의 생간(肝)을 초장 찍어 먹고 있었습니다. 
공자가 찾아왔다는 전갈을 넣자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놈은 노나라의 위선자 아니냐. 쓸데없이 이런 저런 이론을 지어내 천하의 군주들을 현혹하고, 또 무슨 놈의 효도다 공경이다 友愛다 하는 규칙들을 만들어 백성을 얽어매서는 결국 제후들 배나 불려주고 그 댓가로 잘 먹고사는 나쁜 놈 말이다. 자기는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잘 먹고 길쌈도 하지 않으면서 잘 입는(不耕而食 不織而衣) 자가 아닌가. 당장 꺼지라 해라. 내 손에 걸리면 점심에는 그 놈의 간을 먹겠다." 
공자는 속으로 겁이 났으나 찾아온 체면이 있는지라, 유하계의 이름을 팔아 겨우 만나게 되었는데, 두 번 허리 굽혀 공손하게 인사부터 올립니다. 그런 공자에게 도척은 거만하게 버티고 서서 으름장을 놓지요. 
"구야!! (丘는 공자의 이름입니다)  네 말이 내 뜻에 맞으면 살아서 가겠지만, 내 맘에 거슬리면 죽을 줄 알아라." 
공자가 애써 '인간의 도리'를 유세하며 지금이라도 뜻을 받아들인다면 제후들을 설득해 수십만 호의 영주가 되게 해보겠다고 달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도척은 중국의 역사를 주루룩 꿰면서, 소위 의롭다는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은 일과 도둑들이 더 잘 먹고 살았다는 실례를 늘어놓고는, 인간의 욕망은 아무래도 통속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공자의 입을 막아버립니다. 
'인간은 본래 법 없이도 잘만 살았다. 그런데 권세를 가졌다는 자들이 만든 法과 도덕이라는 것이 서민들을 굴종시켜 권력자들의 말을 더 잘 듣게나 하려는 것 외에 무슨 정당성이 있느냐. 그런 법도라는 걸 만들어 권력자들의 배나 불리는 너도 한통속이다. 道라니, 그냥 미친 소리지." 
공자는 기가 눌리고 말문이 막혀서 얼굴이 잿빛으로 변한 채 황급히 돌아갑니다. 수레에 올라타면서 말고삐를 세 번이나 놓쳤다고 합니다. 
노나라에 돌아가서 결과를 묻는 친구 유하혜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죠. 
"그대 말대로였소. 아픈 데도 없는데 뜸을 뜬 셈이지요. 허둥대며 달려가 호랑이 머리를 만지고 수염을 잡아당기다가 하마터면 잡아먹힐 뻔하였소. 헉헉;;" 

자장과 만구득은 장자의 발제를 듣고 주제토론에 들어갔다. 인간의 도리를 따라 사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의견과, 하고 싶은대로 욕망을 채우며 살아가는 것이 실속 있는 일이라는 의견이 밤새 맞섰다. ‘작은 도둑은 붙잡혀 감옥에 가지만 큰 도둑은 나라를 훔쳐 제후가 된다’(小盜者拘 大盜者爲諸侯)는 말도 나왔다. 이 논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대나 어떻대나…. 
현대 문명사회라는 대한민국에서도 장자에 나오는 도척논쟁의 프레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을 배려하며 인의를 지키고 사는 것과, 되는대로 내키는대로 원시시대 야수들처럼 약육강식 원리에 충실하게 사는 것. '인간의 길'을 묻는 토론이 아니라 아직도 이해관계나 따지고 있다. 고대의 장자가 이 시니컬한 우화를 지어냈을 때, 수천년 후까지도 여전히 이런 논쟁이 계속될 거라고 차마 상상이나 했을까. 
원시 자연의 약육강식 법칙은 너무 살벌하다. 
- 장자여, 선생은 원시자연의 법칙이라는 걸 너무 호의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겉은 그렇더라도 인간 세계가 늘 그 모양이어서는 안 된다는 얘길 하고 싶어 지어낸 반어법이겠지요? 


* 無恥者富 多信者顯 (무치자부 다신자현) 
수치를 모르는 자들이 부유해지고 아부하는 자들이 높아진다. 
(<莊子> 21. 도척편)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을 비꼬아 한 말이다. 그런데 세상은 본래 거꾸로 돌아가는 법이다. 똑바로 살고 싶다면 정신을 바싹 차려야만 한다.   
여기서 ‘믿을 신(信)’자는 ‘높은 사람의 마음에 든다’는 뜻으로 해석함이 합당하다. 우리 말에서도 ‘누구를 특별히 신임한다/ 편애한다’는 의미로 ‘신용받는다’ ‘신용준다’와 같은 표현이 80년대 무렵까지는 널리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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