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프롤로그: 느닷없는 만남

<알림> 복면작가 황이리 – 새 창작우화 연재

이제는 말할 때가 되었다.

인류의 시대(The age of Human)는 또 다시 큰 변혁의 시점에 이르고 있다. 지금 우리가 ‘역사’라 부르며 기억하고 있는 인류의 시대는 큰 변고를 맞으면서 마치 지각이 뒤집히듯 뒤집히고 말 것이다. 이것은 수백년 만의 변화며, 어쩌면 수천년 만에 찾아드는 변화일 수도 있다. 어떤 종족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고, 어떤 종족은 새로운 세계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의 일이다. 그 ‘머지않은 장래’라는 것은 대체 몇 년쯤 뒤를 말하는 것인가. 궁금하신 분은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새 연재 글을 계속 읽어보시라.

나는 고대의 성인 장자(莊子)의 책을 한동안 탐독하였는데, 그가 남긴 비의(比擬) 가운데는 모종의 은밀한 정보와 예언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되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옛사람과 소통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장자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으리란 생각으로(‘살아있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와 직접 소통할 길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만났다. 직접 만남은 아주 짧았지만, 이를 계기로 나는 장자와 실시간 채팅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화 소재는 지구상과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거나 특이한 사건들로부터 인간의 존재와 내면에 관한 것까지, 쉽게 말하면 국어 산수 사회 자연 예술 문학 철학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이 망라되어 있다.

이제 그와 나누는 대화들을 이 지면을 통해 공개하기로 했다. 대화내용 일부를 대중에게 공개해 달라는 장자의 간곡한 부탁을 이행하기 위해서다. 고맙게도 ‘현대경제신문’에서 소중한 지면을 내주었다.

장자와는 가끔 엄청난 주제의 이야기들도 주고받는다. 서두에 말한 인류시대의 변곡점 또한 이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너무 심각한 이야기는 걸러낼 생각이니 너무 긴장하지는 마시기 바란다. 다만 장자가 꼭 전파해달라고 부탁하는 사안에 한해서는. 좀 터무니없이 들리거나 너무 참혹한 이야기라 해도 전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점 미리 양해를 구한다. (황이리)

 

# 1. 프롤로그: 느닷없는 만남

 
 

- 이봐, 좀 일어나 보게. 얼른 일어나라구!

누군가 거친 목소리로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실눈을 뜨고 창문 쪽을 바라보니 아직 어두워 보였다. 일어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나는 귀를 막고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수년째 올빼미처럼 늦게 잠드는 습관을 가진 내게 이런 어스름에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 그런데 나를 깨운 사람은 누구지? 친숙한 느낌도 들지만 매우 생소한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저런 목소리로 나를 깨울 사람이? 지금 이 집에는 아무도 없어야 옳다.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러면서도 나는 가만히 누워 있었다. 지금 오로지한 목표는 수면상태를 유지하는 일이다. 여기서 정신이 들어버리면 안 된다. 늘 그렇지만 어제도 피곤한 하루였다. 최소 여섯 시간은 자 주어야 컨디션이 망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대체 누구지? 누구면 어떤가. 설사 도둑이 들어온 거라 해도, 그것 때문에 잠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나는 졸립다. 나는 졸립다. 오로지 자야 한다.’ 중얼거리며 다시 잠속으로 돌아가려고 애썼다.

 

“철썩”

소리와 함께 등이 따끔했다. 버텼다.

철썩! 철썩!

잇달아 잔등에 날카로운 충격이 가해진다. 더 참을 수 없이 아팠다.

‘죽비다.’

세 번째 충격을 받고 나서 나는 벌떡 일어났다. 죽비인지 철장(鐵杖)인지.

가는 철사를 엮어 만든 죽비 끝에는 핏방울이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그런데 내 몸! 그저 누워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을 뿐인데, 너무 급히 튕겨 일어났나? 나는 침대를 벗어나 거의 천정에 부딪칠 정도 높이까지 떠올랐던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제정신이 들면서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이젠 밑으로 떨어지겠구나.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중력을 벗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천장 바로 아래 뜬 채로 몸이 허공에 멈추어 버린 것이다.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경악할 일이었다. 내 몸이! 아무리 보아도 내 자신이 틀림없는 속옷 바람의 한 사내가 아직 침대 위에 웅크리고 누워 있질 않은가. 사내의 어깨는 죽비에 맞아 피까지 맺힌 상처를 벌겋게 드러내고 있으니 저것은 조금 전까지 나였음이 분명하다. ‘아프겠다.’ 그런데 정작 나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침대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내 몸은 필경 고통스러울 터인데, 정작 나 자신은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니. 게다가 아픈 내 자신의 몸을 공중에서 내려다보고 있기까지 하다니. 아니지, 그러면 지금 나는 누구란 말인가. 아무런 고통도 없이 천장 밑 공간에 떠 있는 나는 누구며, 상처 입은 채로 아직 침대에 누워 있는 저 사내는 누구란 말인가.

아무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진짜겠지? 나는 손가락을 펴서 살펴보았다. 분명히 여기에도 몸이 있는데? 팔다리도 있고 손과 발도 있었다. 거울이 없어 비쳐보지는 못하지만, 필시 얼굴도 온전히 내 얼굴일 것이다.

- 이건 자네 몸이 아닐세.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나를 깨우던 목소리다.

- 그러면?

- 영혼이지.

공중에 떠 있는 나는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 그렇다면 침대에 있는 것은 필시 내 몸이겠군요.

- 맞아. 그가 네 육신이다.

-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죠? 내가 죽기라도 한 것입니까?

- 설마. 자네는 영혼인데 어떻게 죽을 수 있겠나.

- 아니, 내 몸이 죽었느냐고요.

- 자기 눈으로 직접 보게나. 죽어 보이나?

그건 아닌 듯하다. 저게 내 몸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침대 위의 사내는 여전히 뒤척이고 있었다. 피가 맺힌 상처를 괴로워하면서. 그렇다면 죽지는 않은 몸이다. 그런데 어떻게 내 영혼은 몸을 떠나 자신의 몸을 내려다볼 수 있단 말인가. 잠결에 놀라 일어나면서 몸과 영혼이 분리되기라도 한 모양이다. 소위 유체이탈인가? 생각지 않은 사건에 망연자실 했다. 내 몸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있을 것인가.

- 당신은 대체 누구요?

그제야 냉정을 되찾으면서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검은 옷을 입은, 좀 못생긴 존재가 나처럼 공중에 떠 있었다.

- 뭘 새삼 물어보나?

그가 말했다.

- 아, 장자(莊子)로군요.

신기한 일이지만, 그가 장자라는 걸 나는 느낌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 그래. 장자. 본 이름은 주(周)이니 장주이고, 사람들은 흔히 장자, 장오자라 부르지. 그대가 하도 깊이 내 생각을 하고 있기에 이렇게 찾아왔다네.

그의 용모가 어땠는지는 자세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 순간에 나는 그를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제법 정신을 모두어 살펴보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그의 용모에 대해 그리 상세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그를 강렬하게 ‘느꼈을’ 뿐이다. 머리가 길었던가, 상투가 있었던가, 각진 턱을 가진 의지형 얼굴이었던가, 날카로운 역삼각형의 두뇌형 얼굴이었던가. 의복은 남루했으나 남루한 줄을 모르겠고, 눈빛은 형형했으나 날카로운 줄을 모르겠으며, 음성은 묵직했으나 그렇다고 음험하게 가라앉은 소리도 아니었다.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장주라는 사람이, 그동안 내가 책 <장자>를 읽으며 상상했던 옛 도인의 느낌을 거의 그대로 풍기는 사람(아니, 영혼)이라는 점이었다. (계속)

 

*장주(莊周)

장자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말기 사람으로 기원전 365~270년 사이 송(宋)나라 지역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자(孔子)의 후예인 맹자와 같은 시기에 살면서 노자(老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인물이다. 공자의 학통은 유가(儒家)를 이루었고 노자의 학통은 도가(道家)를 이루었다. 장자의 사상과 생애는 <장자>라는 고전을 통해 전해졌다.

*chatting (채팅) - 본래 ‘수다 떨다/ 담소하다’라는 뜻을 가진 영어 ‘chat’에서 유래한 단어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긴 시간의 전화통화 등)를 의미. 지금은 인터넷의 메신저를 이용한 수다 떨기를 지칭하는 전문용어로 널리 굳어져가고 있다.

* 작가 황이리: 이미 이 지면을 통해 ‘회사원 K의 이중생활’을 연재한 바 있는 복면작가. 필명 ‘황이리’는 헤르만 헤세의 명작 ‘황야의 이리’에서 딴 이름이며, 또 다른 판타지 창작소설 ‘EXIT’(초록우산, 2016)를 e-book으로 공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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