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장.

크고 작은 동네시장 치고 시비가 일어나지 않는 날이 없다. 사람 사는 동네의 일상다반사가 그렇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뭐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다. 동물이 그렇듯 즉물적 사고와 감정적 일처리, 지독한 이기적 집단주의로 주변을 놀라게도 한다.

나라 간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처리 하나가 빌미가 돼 시비가 생긴다. 그것이 양국의 외교적 사안이 되고 나아가 전쟁으로 비화되는 예는 역사가 증명한다. 우리는 지금 일본과 전쟁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쟁은 어쩌면 옛날식 싸움이다. 원초적인 것이다. 돈을 가지고도 전쟁을 한다. 환율전쟁이 그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면 무역전쟁으로 비화한다.

전쟁의 무서움은 인명살상에 있다. 인간적이어야 할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다. 비인간이라고 한다. 인간이 아닌 지경으로 극적 변환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무섭다.

무기로 싸우는 전쟁이 그렇다면 무역전쟁은 어떤가. 흐르는 피를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무역전쟁은 자비로울까. 더 무섭다고 한다. 기근이라는 전화와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비참하기로 하면 무역전쟁에서 피해를 입는 나라백성들의 몰골은 심각하다.

사회의 최소단위가 깨진다. 가정이 없어지는 것이다. 남부여대라는 말로 표현된다. 우리나라 백성 중에는 이런 경험을 한 이들이 많다. 가슴에 씻기지 않는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목숨만 붙어있을 뿐 시도 때도 없이 죽음과 더불어 산적이 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난이 그것이다. 그래서 눈앞에 당한 일본과의 무역전쟁의 미래는 무척 어둡다. 국민의 심사가 그렇다.

일본이 우리를 적대시하고, 주요자재의 수입길이 막힌다면 경제적 전망은 절망적이다. 이런 이유로 무역전쟁을 반대하는 것만은 아니다. 막말로 쪽팔리기 때문이다. 국가적, 국민적 체면 말이다.

타국과의 약속을 처지가 달라졌다고 아예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외교적 예의고 관례다. 아무리 정략적 속셈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걸 먼저 깬 나라가 우리나라다. 일본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생각하면 창피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될 전쟁이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그러자 대통령측근들의 일성이 드러났다. 구한말 의병들처럼 항일 운동하는 정신으로 모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동학혁명 때처럼 죽창가를 부르며 나서자고 했다.

이어 이 전쟁을 불러온 장본인이자 최고결정권자 문재인대통령은 열두 척의 배로 왜적을 물리치자던 이순신장군의 기개를 되새기는 말을 했다. 적과의 타협도 반대했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내비쳤다. 뜬금없다는 소리가 크다.

환호작약하는 무리들이 보이지 않았다. 싸워 이겨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조차 아니, 일본과 왜 싸워야하는지 그 의미를 꿰뚫어 아는 이들도 많지 않다. 전쟁까지 해야 할 사안인지에 대해 납득하려는 이들이 아주 적다는 말이다. 삼각파도에 걸린, 연료마저 바닥난 선박 같은 격이다. 나라가 그런 것 같아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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