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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한 천사를 사랑했네> 45회 며칠 후, 며칠 후②
이군산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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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7  22: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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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이 끝나자 은영의 남동생이 분골상자를 안았다. 행인지 불행인지, 은영의 뜻대로 살인죄는 그녀가 고스란히 쓰고 갔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녀의 동생은 안전했다. 힘들겠지만 그는 그 비밀을 무덤까지 안고 가면서 은영의 몫까지, 이 사회를 위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일행은 여러 차에 나눠 타고 화장터를 나와 합천으로 향했다. 혼자 뒤따라가는 것이 뻘줌해서 유인경에게 내 차를 타고가지 않겠느냐고 묻자 고맙게도 순순히 내 말에 따라주었다. 삼십 분 가까이 달려 합천군내로 들어선 일행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황강 강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모두 강변으로 내려갔다. 은영의 남동생이 분골상자를 내려놓고 보자기를 풀고 상자를 열었다. 은영은 연회색 재가 되어 그 작은 상자 안에 소복이 담겨 있었다. 은영의 어머니와 언니가 통곡했다. 두 사람의 얼굴에 은영의 얼굴이 조금씩 들어 있었다.

은영의 남동생이 먼저 뼛가루 몇 줌을 강물에 뿌렸다. 이어서 다른 가족들과 친구들이 몇 줌씩 뿌렸다. 강물이 무심히 발치에서 찰싹였다. 나도 유인경 옆에서 몇 줌 뿌렸다. 내가 사랑했던 그녀의 몸. 그녀는 믿기 힘들 정도로 따뜻했고, 부드러웠고, 가벼웠다.

결국 이렇게 되자고 그녀는 34년 4개월을 이 땅에서 그토록 힘들게 살아왔던 걸까?

가슴 깊은 곳에서 후욱, 뜨거운 기운이 올라왔다. 나는 내 표정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최대한 고개를 강물 쪽으로 돌렸다. 팔을 뻗고 주먹을 펼쳤다. 바람에 실려 그녀가 조금씩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녀가 내 손 안에서 떠나갔다. 그녀는 먼지처럼 날리다가 조용히 강물 위로 떨어졌다. 강물은 계속 흘러갔고, 그녀는 곧 눈앞에서 사라졌다.

몇 줌씩 그렇게 그녀를 보내다보니 어느새 상자가 비워져 있었다. 일행은 마지막으로 빈 상자를 강물 위에 띄우고 다시 찻길로 올라왔다. 그녀는 완전히 무(無)가 되었다. 자연이 되었다.

 

그곳에서 인사를 하고 그들과 헤어졌다. 은영의 어머니는 말없이 내 손을 잡고 흐느껴 울었다. 눈두덩이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은영의 언니 그리고 남동생과는 가볍게 목례만 주고받았다. 평생 한 가족으로 살 뻔한 그들과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어쩌다 훗날 어느 거리에선가 우연히 마주친다 해도 서로 몰라볼 것이다.

나는 깜박깜박 졸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앞 유리창에서 부서지는 오후의 햇빛이 자꾸 눈을 감게 했다. 휴게소를 만날 때마다 들러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고 스트레칭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들뜬 표정으로 연인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휴가지로 떠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차에서 내릴 때야 하모니카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옷가지가 든 쇼핑백을 챙기는데, 하모니카가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나는 콘솔박스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보고 의자 밑까지 샅샅이 뒤져보았다. 하모니카는 보이지 않았다. 봉화에서 찍은 결혼사진들도, 오 년 전 신촌에서 찍은 스티커 사진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속옷들도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그것들을 숨길 리는 없고, 아무래도 그녀가 없앤 것 같았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방바닥의 엎어진 화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을 바라보았다. 바닥에는 희미하게 얼룩만 보일 뿐 물기가 다 증발해 있었고, 꽃잎들은 바짝 말라 오그라들어 있었다.

나는 꽃병을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남은 꽃대들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면서 한바탕 청소기를 돌리고 샤워를 했다. 문이 꼭꼭 닫혀 있었는데도 곳곳에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샤워를 마친 뒤 옷을 갈아입고 컴퓨터를 켜 인터넷에 접속을 해보니 그동안 메일상자에 스팸메일이 꽉 차 있었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스팸메일을 체크해 지워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연해지고 말았다. evergreen80으로부터 <지우지 마!>라는 제목의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던 것이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 보내온 편지,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소름이 좌악 끼쳐왔다. 내가 헛것을 본 것인가?……

메일을 열어보니 내가 해남으로 휴대전화기를 찾으러 갔을 때 그녀가 장흥의 피씨방에 혼자 남아 쓴 예약메일이었다.

비가 오고 있다고, 그녀는 썼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세계관이 뒤바뀔 정도로 많은 놀라운 일을 겼었다고 썼고, 나를 만나지 못한 오 년 동안 너무 외롭고 힘들었었다고 썼다. 문장들이 짧고 간결하고 드라이했다. 내 생각을 많이 했지만 선뜻 나를 찾아올 수 없었다는 말도 있었고, 안동에서 처음 만났을 때 반가웠으면서도 죄스러웠다는 말도 있었다. 그리운 곳을 다 돌아다니고 마지막으로 나를 찾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을 나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썼고, 상처만 입고 가지만 그래도 세상은 한번쯤 와볼 만한 곳이었다고 썼다. 그리고 추신으로 나에게 부탁한다면서 앞으로 건강하고 요리 잘하고 술 담배도 안 하는 아주 착한 여자 만나서 재미있게 살라고 썼다. 그런 여자 만나거든 자기가 보내준 여자라고 생각하고 많이 사랑해 달라고도 썼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스크롤바를 내려가며, 단숨에 메일을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눈앞이 뿌예지고 나도 모르게 입술이 실룩거렸다. 세상에서 나 하나만 사랑하고, 내 사랑만 받았던 여자. 그러나 내 앞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쓸쓸한 운명의 여자. 내 운명의 여자.

가슴이 무거운 돌에 눌린 것처럼 답답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왔다갔다하며 심호흡을 했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다행히 캔맥주가 하나 남아 있었다. 뚜껑을 따서 한 모금 마시자 시원한 맥주가 조금은 막혔던 숨통을 트이게 했다.

나는 맥주를 찔끔거리며 편지를 한 번 더 읽은 다음, 그녀가 7월 12일 보낸 편지를 다시 열어보았다.

‘2015년 7월 13일 오후 1시 안동역’이라고 적힌 편지글이 보이고, 스크롤 바를 내리자 그녀의 사진이 나왔다. 어느 건물일까 그녀는 돌계단에 앉아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의 눈, 그녀의 코, 그녀의 입술, 그녀의 뺨, 모든 것이 너무도 생생했다. 손을 뻗으면 그녀는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며 안겨올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앞에서 울고, 웃고, 재잘거리던 바로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감쪽같이, 흔적도 없이,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나는 우주법칙을 납득할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우주를 산산조각 내고 싶었다. 당장 자동차를 몰고 산청으로 달려가 알로에 사무실이라도 불질러버리고 싶었다. 나는 벽에 이마를 짓찧었다. 아무런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른다. 많은 꿈을 꾼 것 같은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눈을 떠보니 다음날 오전 11시였다.

나는 혹시나 하고 대구의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 날 내 대신 차를 몰았던 경찰관을 찾아 자동차 안에서 하모니카와 사진을 본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경관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서,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예상대로였다. 그녀가 없앤 것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간’ 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하모니카가 그렇게 사라졌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이 계속 살아가려면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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