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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한 천사를 사랑했네> 44회 며칠 후, 며칠 후①
이군산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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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1  15: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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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하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세상모르고 그녀 옆에 잠들어 있었다.

눈을 떠보니 세상은 황혼에 짙게 물들어 있었다. 무인혹성 같았던 천변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물새들과 잠자리며 하루살이, 풀모기 따위들이 한결 서늘해진 황혼 속을 어지러이 날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몽롱하게 꿈속 같은 느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생이 방전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꾸 다리가 휘청거렸다.

어느 틈엔가 은영의 시신이 앰뷸런스에 실리고, 나는 경찰차에 올라탔다. 내 차는 다른 경찰이 운전한다고 했다.

앰뷸런스가 먼저 출발했다. 다음으로 경찰차가 출발하고 내 차가 그 뒤를 따랐다. 위잉…… 귀에서 계속 이명이 울었다. 그녀와 함께 도착했던 아침시간은 이제 고대(古代)로 흘러 버렸고, 그녀는 딱딱한 시신이 되어 저 앞의 흙먼지 날리며 달리는 앰뷸런스에 실려 가고 있었다. 세상에서 나 하나만 사랑하고 내 사랑만 받았던 여자. 이십일 년을 그리워했지만 함께 지낸 것은 고작 열몇 달…… 참으로 박복한 인연이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 얼마쯤 들길을 달리자 차창 밖으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마을 표지석이 스쳐지나가고, 황혼을 받는 논밭이 지나가고 몇 번인가 리 단위 마을들이 지나갔다. 아침에 그녀와 함께 편안하게 ‘소풍’을 왔던 길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녀의 심장은 뛰고, 피는 따뜻하게 혈관을 흘렀을 것이다. 그녀는 그때 이미 죽음을 결심했던 걸까…… 딸기우유를 마시며 생글생글 웃던 그때?…… 아아, 몹쓸 여자…… 그 들길 어디쯤에선가 나는 훌쩍이며 울었던 것 같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황혼 저편의 마을들이 이생에서는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마을들처럼 아득히 멀어보였다. 옆자리에 앉은 경관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낮게 뭐라고 위로의 말을 중얼거렸다. 은영과 나는 그렇게 마지막 피크닉 장소를 벗어났다.

 

그녀가 죽었는데도 태양은 변함없이 떠올랐고, 사람들은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을 되풀이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이지만 그 슬픔은 그녀를 사랑하는 몇 사람만의 몫일 뿐, 한 다리만 건너면 그저 얘깃거리에 불과했다.

며칠 동안 나는 대구에 머무른 채 경찰과 검찰에 불려 다니며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했다. 텔레비전 기자들이 몰려와 내 뒷모습을 찍어가기도 했다. 문득 눈을 돌리면 경찰서 주차장에서 햇빛이 눈부시게 튀곤 했다. 수시로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솟았다.

계속 몽롱한 상태였지만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불리한 증언은 하지 않았다. 유서가 나온 상태였으므로 심한 심문은 없었다. 책상을 두드리지도 않았고, 반말로 욕지거리를 하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오 년만에 옛 애인을 만나 함께 여행을 해주었을 뿐’으로 내 입장을 정리해 놓고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갔다. 가끔 그녀와 나의 관계를 부정해야 할 때는 꼭 이래야만 하는가 싶어 마음이 괴로웠다.

“아무 낌새도 못 느꼈다,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네요. 뭐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하니까 마지막 가는 길 곁에 있어줘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겠지요. 안 그러면 평생 감옥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처럼 힘들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안 그런가요?”

형사는 시종일관 내 표정을 살피며 꼬치꼬치 캐물었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자살방조죄로 엮어 넣으려고 했다. 나는 초지일관 아무것도 몰랐다고 버텼다.

물론 나는 그녀가 자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음독할 줄은 몰랐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함께 있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사랑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연인의 자살을 지켜봐 주는 것도 사랑인 것이다. 나는 심장을 도마 위에 펼쳐놓고 칼로 다지는 듯한 아픔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전화기를 켜놓자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내가 왜 대구에 머무르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그녀에게 속았다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말해줄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여동생이 알려준 것이겠지만, 보도를 통해 내 곁에서 자살한 여자가 바로 오 년 전 나와 동거하던 여자라는 걸 알아차린 어머니는 ‘여우같은 년’이라며 그녀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나는 전화기를 귀에서 떼고 들고 있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만 그녀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여행을 조금 더 아름답고 즐겁게 해주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나흘 후, 시신이 안치되어 있던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그녀의 자살이 단순 변사사건으로 종결 처리된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참고인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되었다.

장례식은 몇 안 되는 친지들로 간소하게 치러졌다. 나는 검은색 여름 재킷을 한 벌 사 입고 영안실을 찾아갔다. 내가 아는 사람은 은영의 친구 유인경밖에 없었다. 오 년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그녀로 인해 나는 이방인이 아닐 수 있었다. 그러나 자리가 자리인지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목례를 나누었을 뿐, 제대로 된 대화는 나눌 수 없었다. 눈을 질끈 감고 어금니 악문 채 고개 숙인 은영의 남동생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8월 무더위 아래, 장례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은영이 자살을 했고, 살인자이기 때문에 대놓고 슬퍼하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절절한 고음으로 불려지던 찬송가 소리만이 그 슬픔의 깊이를 가늠케 했다.

병원을 나온 일행은 시신을 영구차에 싣고 대구 근교의 화장터로 갔다. 나는 따로 내 차를 몰고 뒤따라갔다. 화장터에는 땡볕만이 한창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어서 죄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조용조용 걸어다녔다. 죽은 자들은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했다는 이유만으로 살아 있는 자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된다. 그들은 우리 마음속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고, 심판할 수 있을 것 같다. 장례식장에서 대놓고 고인의 험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살아 있는 자들은 죽은 자들을 결코 이기지 못한다.

호오오…… 호요요, 이따금 먼 숲에서 환청처럼 휘파람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화구가 열렸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가족들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화부들이 관을 화구 속으로 밀어 넣었다. 다시 철문이 닫히고, 작은 유리를 통해 불꽃이 치솟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가 한 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은영의 살이 타는 동안 나무그늘에 앉아 유인경과 스티로폼 도시락을 놓고 몇 잔의 술을 마셨다. 새털구름 몇 조각이 무심히 하늘을 떠내려가고 있었다. 유인경은 토목회사에 다니는 남자와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고 현재 대전에서 산다고 했다. 그녀는 안정되어 보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은영은 지난 몇 년,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 못하는 궁핍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도 넉넉한 형편은 못되어 입던 옷 물려주는 정도밖에 도와줄 수 없었다면서, 무리를 해서라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 게 너무 후회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참 좋은 친구였는데…… 아름다운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쓸쓸히 가네요…… 세상에 와서 만났던 그 많은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아주 이따금씩 바람이 주위의 미루나무 많은 이파리들을 쏴아 뒤집으며 조용히 지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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