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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한 천사를 사랑했네> 42회 무서운 백색의 세계①
이군산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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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30  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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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쯤, 나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깨어났다. 은영이 옆자리에 웅크리고 돌아누워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만졌다. 그녀가 틀어놓았는지, 자동차에서 마할리아 잭슨의 <섬머타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Summertime and the livin' is easy…… Fish are jumpin' and the cotton is high…… 평화로운 여름철, 물고기는 뛰어오르고 어느새 길게 자란 목화들…… 아빠는 넉넉하고 엄마는 환한 얼굴…… 그러니 아가야, 울지 말고 고이 잠자거라…….

영혼마저 잠재우는 듯한 침울한 선율의 자장가. 노랫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알 수 없었다. 일 초? 일 분? 한 시간?……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은영아.”

가만히 어깨를 흔들며 불러보았다.

그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계속 자동차에서 ‘가스펠의 디바(Diva)’로 불리는 마할리아 잭슨의 노래가 오토리버스되고 있었다. 그녀가 그 노래 파일만 담은 usb메모리카드를 카오디오에 꽂아놓은 것 같았다.

 

갑자기 물새 두 마리가 허공을 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팠다. 나는 “아!” 하고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싸쥐고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웅크리고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허리 숙여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핏기 없는 하얀 얼굴, 입에 피를 토한 흔적이 있었다. 오, 이런! 순식간에 내 온몸의 피가 얼어붙었다.

“은영아!”

두 손으로 그녀의 몸을 흔들어댔다. 그녀는 통나무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창백하게 굳은 그녀의 얼굴 위로 무심히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 햇빛…… 모래톱의 모래들은 찜질방의 소금알갱이들처럼 익어 있었다. 비현실감이 나를 지배했다. 계속 머리통이 깨질 듯 아프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은영아, 왜 그래? 은영아, 눈 떠, 일어나, 일어나아󰠏󰠏󰠏 .”

그녀의 뺨을 때렸다. 처음에는 가볍게, 그리고 세게, 그리고 더 세게. 그래도 그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녀의 코에 뺨을 대보았다. 아무런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심장이 무섭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죽었다.

의식 저편에서 악마가 중얼거렸다.

죽었다…… 은영이가 죽었다…… 은영이가…… 죽었다…… 죽었다…….

아냐, 아냐. 절대 그럴 리 없어!

나는 부르르 떨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우리는 체코에 가야 했다.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 한자리에 모아놓고 결혼식을 올려야 하고, 그리고 티티카카로 신혼여행도 가야 했다. 아이들도 낳아야 했다. 우리는 할 일이 많았다.

나는 다시 그녀의 뺨을 때리며 소리쳤다. 뺨을 때리고, 몸을 흔들고, 이마에 머리통을 찧으며 악을 썼다.

“은영아, 일어나! 이게 뭐야?……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응? 다 농담이었다면서?…… 은영아, 눈을 떠, 왜 눈이 안 떠져! 나 미칠 것 같아. 장난 그만하고 일어나 제발, 제바알󰠏󰠏󰠏 !”

그녀는 계속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내 목소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통곡으로 변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모든 것은 정말이었다. 생명이 그녀의 육신을 포기하고 나간 것이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사랑하고 그리워한 우주의 모든 것이 구체화된 한 여자, 밤이면 내 품속으로 파고들던 여자, 내 조강지처, 그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되어 있었다.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고, 나를 보고 웃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백색이 다른 색을 모두 잡아먹으며 여기저기서 번쩍번쩍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불가해한 백색의 세계…… 하늘도, 숲도, 하천도, 모래톱도, 온통 터무니없는 백색이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세계였다.

꿈인가 싶어 나는 으아아아 소리지르며, 도리질 치며, 모래톱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모래를 양손 가득 쥐고 허공에 흩뿌려보기도 했다. 그런 나를 조롱하듯 이름을 알 수 없는 새 몇 마리가 이리저리 튕기듯 허공을 날았다. 꿈은 깨어지지 않았다.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떡하라고…… 이제 나 혼자 어떡하라고…… 모든 게 농담이라더니, 그 말이 또 농담이었나?…… 온 몸의 힘이 달아났다. 무엇인가 내 안에서 속절없이 허물어지고 비워졌다.

구부린 그녀의 무릎 옆으로 다리가 부러진 채 뒤집어진 선글라스의 모습이 보이고, 검은색 가죽 장정 다이어리가 보였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다이어리를 집어들었다.

반쯤 찢겨나가 홀쭉해진 다이어리 남은 부분에 글이 적혀 있었다. 글을 쓸 때 손이 많이 흔들렸는지, 휩쓸려 넘어진 갈대처럼, 턱없이 큰 글자들이 제멋대로 비틀려 흐르며 페이지를 가득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녀 특유의 작고 동글동글하고 예쁜 필체는 온데간데없었다.

간신히 알아볼 수는 있었다. 나는 눈을 비벼가며 힘들게 한 글자 한 글자 해독해나갔다. 언젠가 이런 글을 본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것은 나에게 쓴 유서였으며, 경찰에게 보이기 위해 쓴 가짜 자백서이기도 했다. 뒤에서 억새잎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졌다.

 

사랑하는 당신,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죄송해요. 당신에게 너무 큰 짐을 지게 한 것 같습니다.

당신도 곧 알게 되겠지요.

그래요. 보름 전에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인생은 참 무서운 것이더군요. 내가 사람을 죽일 줄이야. 그 사람이 밉긴 했지만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어요.

우리 가게 보증금을 사기쳐 달아난 그는, 아버지 친구였습니다. 10개월만에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돈을 달라고 했지만 그는 무슨 말이냐며 시치미를 뗐습니다. 웃었습니다. 나쁜 사람. 우리 가족은 모든 것을 잃었는데 그는 우리 가진 마지막 것을 빼앗아가고, 거기서 그렇게 웃고 있었습니다.

 

내가 여자로 보였는지, 친구 딸에게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입에 담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그런 인간도 있을 수 있는 걸까요.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마 나는 그 순간 생애 최고로 영악했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벌레를 죽였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억울했습니다. 후회는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난 위암으로, 어차피 얼마 안 있으면 죽을 몸이었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지난 오 년, 내 위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습니다.

나는 감옥에 갇히고 재판을 받고, 그런 복잡한 절차를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고, 그렇게 구차하게 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죽음 앞에서 인생을 돌이켜보니 다 허무했습니다. 왜 그렇게 모든 즐거움을 뒤로 미루었을까요.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내키는 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찾았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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