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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한 천사를 사랑했네> 39회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②
이군산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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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09  14: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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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헤드라이트를 켰다. 어둠은 쏟아지듯 갑작스럽게 짙게 내려앉았고, 불켜진 마을은 나오지 않았다. 계속 칠흑같이 어두운 숲이 이어졌다. 대자연의 침묵이 무겁게 무겁게 우리를 눌렀다. 어두운 산, 어두운 들, 어두운 하늘…… 보이는 것이라곤 노란 중앙선과 휙휙 지나치는 요괴처럼 그로테스크한 가로수들뿐이었다. 불쾌하고 음산한 어둠…… 괴괴한 고요…….

문득 불 밝힌 휴게소가 시야로 빨려 들어왔다.

은영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나는 속도를 줄이고 휴게소로 들어갔다. 나방이며 하루살이 따위가 휴게소 불켜진 간판에 타닥타닥 부딪치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휴게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가 이번에는 가락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녀를 테이블에 앉히고 가락국수 두 그릇을 받아왔다. 가락국수를 다 먹고, 우리는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가볍게 몇 번 스트레칭을 하고 차에 올라탔다. 커피를 마시면서 천천히 어두운 들판을 달렸다. 이미 열한 시가 넘어 있었다. 그녀는 커피를 두 모금쯤 음미하듯 천천히 마시고 나머지를 창밖으로 버렸다.

저 멀리 모텔 간판이 보였다. 자동차 속도를 줄였다. 그러자 그녀가 계속 달리자고 했다. 할 수 있다면 밤새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어려운 일 아니었다.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헤드라이트가 끝없이 커브길을 따라 어둠을 헤집어 나갔다. 어두운 숲이, 들판이, 가로수들이, 끊임없이 차창으로 스쳐 지나갔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자동차가 저절로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우고, 거창 인터체인지에서 88올림픽고속도로를 탔다. 캄캄한 고속도로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산했다. 나는 바깥 차선을 적당한 속도로 달렸다. 옆 차선으로 무거운 짐을 실은 화물트럭들이 바람을 가르며 위험한 속도로 질주했다.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내 자동차가 미세하게 휘청거렸다.

은영이 문득 콘솔박스를 열어 하모니카를 꺼냈다. 그러더니 다시 박스에 손을 넣어 뭔가를 꺼냈다. 스티커 사진이었다. 그녀가 실내등을 켜고 하트형 액자에 담긴 사진을 보았다.

“어, 이거 신촌에서 찍은 거네. 왜 안 걸었어?”

“그냥…… 네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그녀가 “바보.” 하고 중얼거리며 하트형 액자에 연결된 고무 빨판을 앞유리창 적당한 높이에 접착시켰다.

“여자 참 이쁘다. 어쩜 저렇게 이쁠 수가 있지? 남자 봐라. 좋아서 입이 헤 벌어진 거. 하하.”

“저 여자가 왜 이쁜지 알아?”

“왜 이쁜데?”

“옆에 남자한테 반해서 그런 거야. 사랑을 하면 이뻐진대잖아. 봐.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잖아.”

“아이구 바보. 한 마디도 안 지려고 해요.”

‘대구 35km’라고 적힌 이정표가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고 선명하게 드러났다가 이내 어둠 속에 묻혔다.

대구에서 다시 경부고속도로를 탔다. 경주를 지나 어디쯤 휴게소에서 잠깐 쉬며 소변을 보았다. 은영은 계속 CD를 갈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자동차가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다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창원으로 갔다. 휙휙 스쳐가는 검은 숲과 끝없이 이어질 듯한 어두운 벌판…… 마산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밤을 새는 게 무리였을까, 아니면 저녁에 마신 커피 때문이었을까, 어디쯤에선가 은영이 갑자기 복통을 일으켰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그녀가 편하게 약을 먹도록 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배를 싸안은 채 모로 누웠다. 미간이 수시로 찌푸려지고 웅크린 몸이 움찔움찔했다. “아파…… 아파…….” 그녀가 가는 목소리로 신음을 냈다. 나는 오디오를 끄고 비상등만 켠 채 자동차 키를 뽑았다. 멀리 유성 하나가 밤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아, 아파…… 아음…… 음…… 아, 아음…… 아파…… 나 바보야, 커필 왜 마셔…… 아 아.”

마치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듯 신음소리가 줄줄 그녀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얼마나 아프면 이런 소리가 나오는 걸까. 나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공간을 마련하여 그녀를 안았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내 품에 안겨왔다.

“아파…… 아음… 음…… 삶이 뭐라고…… 이렇게 아픈 거야…… 아음…….”

그녀의 팔이, 허벅지가, 옆구리가, 뺨이, 제멋대로 경련했다. 내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얇은 피부 한 장 차이인데, 그 얇은 피부 안의 고통을 내가 줄여줄 수도 대신 아파해 줄 수도 없는 냉엄한 현실이 나를 미치게 했다. 나는 그녀의 등을 연신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평소와는 달리 지독하게 느리게 시간이 흘러갔다. 이따금 위이잉 바람을 가르며 자동차들이 스쳐 지나갔다. 소형차는 촤아악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를 미끄러져가고, 대형차는 우우웅 소리와 함께 지축을 흔들며 지나갔다. 여기서 이대로 끝장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느 결엔가 그녀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멈추고 고른 숨소리를 냈다.

고요…….

나는 가만히 그녀의 몸에서 떨어졌다.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보자 졸음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까지 길에서 잠들 수는 없었다. 나는 뒷자리 창문을 조금씩 열어놓고, 만약을 위해 전화기를 챙겨들고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굳은 어깻죽지를 주무르며, 담배를 피우며, 그녀를 확인하며, 자동차 주변을 왔다갔다했다. 다시 통증이 시작되면 119로 전화를 걸 생각이었다. 나는 도저히 길 위에서 그녀가 죽는 것을 대책 없이 지켜보고만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5분이 흐르고 10분이 흘렀다. 그녀는 안정을 찾았는지 계속 같은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그 모양을 보자 내 마음도 진정이 되었다.

도로 밑으로 어슴푸레하게 개울물 흐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비탈길을 내려갔다. 개울가에 앉아 물세수를 하고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잠이 달아나는 것 같았다. 세수를 마치고 다시 비탈길을 올라갔다. 풀잎에 맺혀 있던 이슬이 운동화를 흠뻑 적셨다.

어느 순간 드러나는 푸른 새벽하늘…….

계속 하품이 나왔다. 아무래도 어디 들어가서 자야할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차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알고보니 그녀는 자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숨소리가 달랐다. 색색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울다 말고 숨을 고르는 듯한 소리를 냈고, 어깨마저 미세하게 흔들렸다. 어떻게 할 것인가. 어쨌든 통증은 지나간 것 같았다. 나는 못 본 척하기로 하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시동을 걸었다.

좌회전 등을 켜고 도로로 진입하려는 순간, 그녀가 고개 들어 미간을 찌푸리고 하늘을 보았다.

“어디야?”

“잘 잤어?” 나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톡톡 두드려주며 말했다. “조금 있으면 마산이야.”

그녀가 기지개를 켜고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아󰠏󰠏󰠏 잘 잤다.”

“이제 조금 괜찮아졌어?”

“응. 가뿐해. 아자, 파이팅!”

그녀가 주먹을 내보이며 낮게 소리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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