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혼인(婚姻)의 법칙

父一而已 人盡夫也 부일이이 인진부야
아버지는 한 사람밖에 없지만, 남편은 어떤 남자라도 될 수 있다. (<사기> 鄭世家)
제중의 딸이 ‘아버지와 남편 중 누가 더 중요한가’라고 묻자 그 모친이 대답한 말


문강(文姜)이 노나라로 시집가기 전 아버지 제 희공(僖公)은 본래 문강을 정(鄭)나라로 보내려고 했었다. 정나라는 신흥국가였지만, 주 황실과 가까운 혈족이고 또 유왕이 피살되던 시기에 황실을 구한 공으로 제후국이 되었기 때문에 기대할 것이 많았다. 때마침 이민족이 쳐들어오자 희공은 정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정나라 장공(莊公)의 태자인 홀(忽)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도와주었다. 희공은 홀을 접대하면서 은근히 딸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홀은 정중히 사양하였다. “우리나라는 아직 작은 나라라, 제나라의 친척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 동행했던 대부 제중은 매우 아쉬워하면서 홀에게 말했다.

“지금 부왕(父王)에게는 여러 명의 처첩이 있습니다. 그들이 낳은 자식들 가운데 당장이라도 군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세 명이나 됩니다. 태자께서도 큰 나라의 원조가 없다면 도저히 국왕의 자리에 오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장공은 여러 처첩을 통해 아들딸을 낳았는데, 태자 홀의 어머니는 등(鄧)나라 사람이었고, 유력한 라이벌인 아우 돌(突)의 어머니는 송(宋)나라 사람이었다. 홀이 비록 태자로 정해져 있다 해도 그것만 믿고 있을 일은 아니었다. 왕위 승계가 이루어지는 순간까지 왕의 마음이 바뀌거나 어머니가 다른 공자들 사이에서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노련한 제중은 장차 이런 일이 생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수년이 지나 장공이 죽은 뒤에 제중의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제중은 순리에 따라 장공의 맏아들이자 태자인 홀을 후임자로 옹립하려 하였는데 그만 송나라 사람들에게 유인되어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송나라 사람들이 죽이겠다고 협박하므로, 제중은 하는 수 없이 홀 대신 공자 돌을 옹립하기로 약조했다. 송나라 군주 장공과 동맹을 맺고 돌아와 돌을 새 군주로 삼으니 그가 바로 여공(厲公)이다. 제중이 미리 기별을 보내서였겠지만, 나라 안에 있던 홀은 제중 일행이 귀국하기 전에 나라를 빠져나가 위나라에 몸을 의탁했다.

여공은 제중에 의해 왕이 되긴 하였으나, 본래 홀을 지지했던 제중을 늘 경계하였다. 그렇다고 왕가의 어른이며 정나라의 정신적 지주인 제중을 멀리하거나 함부로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공 4년에 제중의 권력이 회복되자 여공은 제중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심복 옹규에게 밀지를 내렸다. 옹규는 하필 제중의 사위였다. 옹규는 이 일을 승낙했다. 장인을 살해한다는 것은 불효지만 신하로서 왕의 명령을 거절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대한 밀지를 받고서 태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불안한 행동은 한 식구인 처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잠결이었던지 꿈결이었던지, 아내의 추궁에 옹규는 그만 그 은밀한 임무를 털어놓고 말았다. 아내에게는 친정아버지가 죽고 사는 문제 아닌가. 고민하던 옹규의 아내는 어머니를 찾아가 슬쩍 고민을 던져보았다.

“어머니. 아버지와 남편 중에 누가 더 가까운 사람이죠?”

남편은 무촌이고 부모자식지간은 1촌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촌수로 따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 사람 뿐이지만, 남편은 남자라면 누구나 될 수 있는 거 아니겠니(父一而已 人盡夫也).” 그 말을 듣고 딸은 곧 아버지에게 가서 일러바쳤다.

제중이 급히 옹규를 체포하여 반역죄로 죽이고 시신을 거리에 진열하게 하였다. 심복들로부터 급보를 전해들은 여공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런 일을 마누라와 상의하다니 죽어 마땅하구나(謀及婦人 死固宜哉)!” 그해 여름 여공은 쫓겨나 변방에 유폐되었다. 그런 일을 마누라와 상의한 옹규도 못났지만, 하필 죽여야 할 사람의 사위에게 일을 맡긴 군주도 못나긴 매한가지다. 곧 위나라에 가있던 홀이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그가 소공(昭公)이다.

이야기 PLUS
역시 대부 제중의 생각은 깊었다. 만일 홀이 제나라의 사위였더라면, 공자 돌의 외가인 송나라 사람들이 함부로 왕을 바꿔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만 보고 결혼한다’는 이상적인 결혼관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지 않은 평민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게 아닐까.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 일이 사업에 가깝기 때문이다. 권력과 재산이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상속되는 제도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들의 결혼은 두 가문, 곧 두 세력, 두 경제 단위간의 동맹이나 연대라는 성격을 벗어날 수 없다.

사람들은 이것을 ‘정략결혼’이라고 부르고 ‘사랑도 없는 거래’라고 비웃기도 한다. 하지만 만일 수백억 수천억의 재산이 내 집에서 상대의 집으로 건너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라. 혼인 상대의 배경이나 출신을 전혀 따지지 않겠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렇다고 인간의 감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왕족이나 귀족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따로 모여 자연스럽게 우정과 사랑을 맺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애쓴다. 그런 노력에 의해 ‘귀족 학교’ ‘귀족 과외’ ‘귀족 서클’ 같은 것이 고안되었다. 이런 노력에도 서로 격이 맞는 상대들 가운데서 자연스러운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경우를 감안해서 ‘연애와 결혼은 별개’라는 식의 애정관이 한편으로는 용인되기도 한다.


옹규는 그만 은밀한 왕의 명령을 아내에게 털어놓고 말았다.
“아버지를 죽인다고?”
아내는 급히 어머니에게 가서 물었다.
“아버지와 남편 가운데 누가 더 가까운 사람이죠?”

 

저작권자 © 현대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