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소심한 노 환공의 죽음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정해용 시인·상임논설위원
賢者死忠以振疑 현자사충이진의
현자는 죽기까지 충성함으로 의혹을 떨쳐낸다 (<管子> 大匡편)
제(齊)나라 팽생이 노 환공을 죽이라는 양공의 명을 받든 것을 비판하는 말 중에서


공자 휘의 꾐에 빠져 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노나라 환공(桓公)은, 3년째 되던 해 제나라 희공(僖公)의 딸 문강(文姜)을 비로 맞아들였다. 문강은 유난히 사연이 많다. 상당한 미모였거나 애살이 많았던 모양이다.

잠시 제나라 사정을 먼저 살펴보자. 주나라가 혼란을 겪은 이왕(夷王)부터 선왕(宣王)까지의 시기(BC 9세기)에 제나라 또한 극심한 왕권의 혼란을 겪었다. 포악했던 여공(厲公)이 민중반란에 의해 시해되고 아들 문공(文公)이 즉위한 후에야 안정을 찾았다. 이후 왕위가 순조롭게 이어지면서 제나라는 태평성대로 들어섰다.

그런데 태평성대가 이어지노라면 반드시 기고만장한 골칫덩이 하나쯤 돌출하게 돼 있다. 그가 바로 희공의 아들 제아, 후일의 양공(襄公)이었다. 두려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안정기 제나라 태자의 힘은 무소불위였다. 제아의 오만방자는 하늘을 찔렀다. 마음껏 먹고 노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용서받지 못할 사랑에 빠져버렸다. 천하에 못할 일이 없는 그에게 용서받지 못할 사랑이 무엇일까. 하필이면 그 대상이 친동생 문강이었던 것이다.

한번 발을 헛디뎌 욕정의 늪에 빠져버린 제아와 문강 남매는 그 때부터 인간의 도리를 잃어버렸다. 사촌도 아닌 친동생. 인간사회라면 그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용납된 적이 없는 사련(邪戀)의 비밀을 안은 채, 공주 문강은 노 환공에게로 시집을 갔다. 아무리 천방지축인 제아였어도 동생을 자기 사람으로 붙잡아둘 수는 없다는 건 알았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제 희공이 죽자 제아가 뒤를 이어 제나라 주인자리에 올랐다. 바로 양공이다. 이제 더 이상 눈치 볼 사람도 없게 된 양공은 곧 문강을 보고 싶어 했다. 문강이 시집간 지 이미 십년도 넘었지만, 하루도 그녀를 잊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양공도 그동안 결혼을 했고 마음껏 농락할 여자들도 주변에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문강의 몸을 잊게 해주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즉위한 지 4년째 되던 봄에 양공은 구실을 만들었다. ‘양국간 우호친선’을 명분으로 노나라 환공을 부부동반으로 제나라에 오라고 초대한 것이다. 동맹국이자 부인의 친정 국가로서 명분은 충분했다. 양공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는 노나라 대신들이 만류했지만, 소심한 환공은 당대의 실세 제 양공의 초청을 거절할 배짱이 없었다.

양공의 환대는 거창했다. 밤마다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술과 음악으로 정신을 빼놓았다. 주흥이 무르익어 환공이 정신을 놓을 때쯤이면 문강은 별실로 안내되어 오빠 품에 안겼다. 십수년을 허약한 환공과 살면서 굶주렸던 몸에 다시 불이라도 붙었던 것일까. 그들은 다시 헤어지지 않으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노 환공의 귀국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공자의 <춘추(春秋)>에 의하면 노 환공은 정월에 제나라로 갔고 여름(4월)에 송별연이 있었다(음력상의 날짜). 제나라에 붙들려 있은 기간이 두세 달은 족히 되었던 듯하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어리석은 환공도 결국은 처 남매의 간통을 알아채고는 문강을 심히 추궁했다. 일이 심각해진 것을 깨달은 문강은 곧바로 오빠에게 달려가서 알렸다. 양공으로서도 이런 일이 만천하에 알려지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즉시 환공을 달래어 귀국을 허락하고는 마지막 밤 환송연까지 열어주었다. 이것은 또 다른 흉계였다. 환공이 취해 정신을 잃자 양공은 이복동생 팽생을 시켜 숙소까지 배웅하게 했다. 팽생은 힘이 장사였다. 환공의 몸을 번쩍 들어 수레에 태운 뒤 함께 숙소로 갔는데,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지 환공은 갈비뼈가 으스러져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힘이 없는 노나라에서는 말로 항의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천하의 비난이 두려워서 양공은 팽생을 처형했다. 제나라도 알고 노나라도 알고, 천하가 그 전말을 다 아는 불륜 살인사건은 이렇게 눈가림 문책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야기 PLUS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두 권력끼리 흥정은 끝났다. 그래도 세인들의 기억에서 진실이 지워지지는 않는 법이다. 노나라에서는 문강이 낳은 환공의 아들(莊公)이 새 군주가 되었지만, 문강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제나라에 남아있기도 낯 뜨거운 일이라 두 나라 국경마을에서 어정쩡하게 수년을 지냈다. 그로부터 8년여가 흐른 뒤 양공이 사냥터에 나갔는데, 큰 멧돼지가 사람처럼 일어나서 덤벼들었다. 양공은 그것을 팽생으로 착각하고 놀라 수레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쳤다. 그동안 원한을 가졌던 대부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니 양공은 문 뒤에 숨었다가 잡혀 죽었다.

아무리 욕정에 눈이 먼다 해도 절대로 손대지 말아야 할 상대는 있는 법이다. 곧 자기 어머니나 딸, 직계의 존비속이 첫 번째요, 피가 섞인 이모나 고모나 사촌이나 조카, 그리고 어린 아이가 두 번째요,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자기 아내의 어머니나 딸이나 형제를 취하지 못하는 것이 세 번째다. 유대인의 바이블이나 아랍인의 코란에는 이러한 통간을 금하고, 이를 어긴 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는 계율도 있다. 두 번째나 세 번째 경우를 십분 양보하더라도, 자기 어머니나 딸 형제를 취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용인된 적이 없다.

양공의 환대는 거창했다. 주흥이 무르익어 환공이 정신을 놓을 때쯤이면 문강은 별실에서 오빠 품에 안겼다.

십수년 잠들었던 욕망이 다시 불붙었던 것일까.
환공의 귀국은 차일피일 늦추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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