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십여 년 동안 다른 환경 속에서 남남으로 살던 두 사람은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으로 한 집에서 한 이불을 덮고 살게 될 것이다.

때때로 남편은 반찬투정을 할 것이고 아내는 가사분담을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리라. 그러면서 날들이 흘러가겠지. 일요일에는 자동차를 타고 가까운 물가나 혹은 유원지로 놀러가고, 명절이면 서로 우리 집에 가자고 티격태격 다투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어느 날 그들 사이에 아이가 생길 것이고, 정신없이 아이를 키우면서 상대에게 약간씩은 소홀해질 것이다. 그러면서 날들은 흘러가겠지.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부부는 주름살이 늘어나고 입 모양이 점점 고집스러워지리라. 그때쯤이면 아무리 식성이 달라 고생하던 부부라 해도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득문득 젊은 날 품었던 원대한 꿈이 가뭇없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한숨쉬기도 하겠지. 어쩌면 살아보지 못한 또 다른 생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럴 즈음 권태기도 찾아오겠지. 그러면서 날들은 흘러갈 것이고…….

신랑신부가 우리 앞으로 왔다. 누구야? 하는 눈빛으로 신부를 보는 신랑. 잘 모르겠어 대충 인사해, 하는 눈빛으로 신랑을 보는 신부. 그리고 꾸벅 고개 숙여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두 사람. 우리는 말없이 목례를 해주었다.

우리에게 인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들의 앞에는 싸울 수 있는 날들, 사랑할 수 있는 날들이 무수히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시간의 부자였다. 나는 그들이 말할 수 없이 부러웠다. 어떻게 살아도 좋으니 늙도록 은영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식당을 나오자마자 은영이 참지 못하고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아이처럼.

천천히 자동차 세워둔 곳을 향해 걸었다. 머리 위에서 한여름 오후의 태양이 이글거렸다. 지표 온도가 가장 뜨겁다는 오후 두 시였다. 그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아이들 모습이 보였다.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불볕더위. 잔뜩 달구어진 아스팔트에서 훅훅 지열이 끼쳐 올라왔다. 숨이 가빠지고 가벼운 현기증마저 일었다.

부르릉, 하고 스쿠터 한 대가 우리 곁을 지나갔다. 뒷자리에 옆트임이 심한 미니 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보자기로 싼 보온병을 들고 앉아 있었다. 어디론가 차 배달을 가는 길 같았다. 여자는 한 손으로 운전하는 남자의 허리춤을 꽉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보자기를 쥔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졸고 있는 여자의 얼굴에 거칠고 척박한 삶을 살아온 그녀의 이력이 고스란히 내비쳤다.

흐느적흐느적 걷다가 문득 옆을 보니 은영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은영은 저 멀리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 한떼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필리핀인이거나 방글라데시인들로 보였는데, 한결같이 곱슬머리에 피부가 검었다. 그녀는 그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알롬! 알롬!”

그녀가 그들을 불렀다. 거리에 있는 몇 명의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정작 그들은 못 듣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은영아, 어디 가.”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듣고 홀린 듯이 계속 그들을 따라갔다. 가슴이 비워지는 듯했다. 그들은 그녀의 목소리를 못 듣고, 그녀는 내 목소리를 못 듣고, 그렇게 우리 모두는 한 방향으로 계속 길을 갔다. 거리 유리창마다 오후의 햇살이 몽환적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그들은 시외버스터미널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도 터미널로 들어갔고, 그리고 또 잠시 후 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터미널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승차장 그늘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은영이 서 있었다. 나는 그 쪽으로 다가갔다.

“알롬, 몰라요…… 몰라요…….”

빛 바랜 빨간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은영에게 서툰 한국어로 대답하고 있었다.

“혹시 오 년 전 독산동에서 일하지 않았어요? 서울, 독산동.”

“아니에요, 아니에요, 없었어요.”

은영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이마와 콧등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미안해요,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봐요. 혹시 센터 알아요? 이주노동자센터?”

승차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안심해요. 우린 당신들 친구예요. 당신들 어디서 일해요?”

그들이 뭐라고 말했지만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곳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곳에 있는 염색공장에 다닌다는 것 같았다. 은영이 그들에게 전화번호 하나를 적어주고 말했다.

“그럴 일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여기로 전화해요. 몸이 아프면 어디로 가라, 임금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라, 방법을 알려줄 거예요. 오케이?”

은영이 그들에게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말했다.

빨간 티셔츠가 쪽지를 받아들고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은영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모두들 어딘지 주눅 든 얼굴에 조금씩 불안해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최대한 편안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잠시 후, 우리는 터미널을 나와 조금 전 걸어온 길을 되짚어 걸었다.

“누구 닮았어?” 내가 물었다.

“응. 빨간 옷 입은 사람이 전에 알던 사람하고 꼭 닮았어. 알롬이라고, 그 사람 친군 줄 알았어. 알롬은 플라스틱 사출공장에서 일했는데, 손가락이 두 개 잘리고 열 달치 월급 못 받은 상태였어. 우리가 체불임금과 보상금 받아냈지. 지금은 방글라데시로 돌아갔는지 모르겠어.”

“…….”

그녀의 눈이 생기를 띠었다. 악덕업주와 인권을 외면한 공권력을 향해 건강한 분노를 터뜨리던 예전 그녀의 모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유럽이나 북미 사람들 보면 쩔쩔매는 사람들이 왜 저 사람들은 집에서 기르는 개만큼도 취급 안 하는지 모르겠어. 저 사람들은 감정도 없는 줄 알아. 저 사람들 가난하고 더럽다고 깔보면서 통일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어유, 뭐든지 돈, 돈, 돈으로 환산하는 것밖에 모르는 한심한 천민자본주의자들.”

“이미 한국은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어. 적어도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 판단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해. 우리는 유럽의 세련된 문화에 기죽는 거야.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우리 국민 전부를 너무 나쁘게 몰지 마.”

외국인노동자 문제에 대해 나는 기본적으로 은영의 의견에 찬성한다. 그러나 페미니즘도, 생태주의도, 성소수 운동도 그 이론 자체로는 옳을 수 있지만 딱 잘라 재단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모든 일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고, 쉽게 공유할 수 없는 시대적 문화적 사정이라는 게 있다.

물론 운동가는 욕을 먹더라도 한쪽 진영에 서야만 하고, 그래야 조금이나마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박경리의 󰡔토지󰡕에서 보면 말야, 백정 딸을 사람들 많은 데서 발가벗겨 새끼줄 목에 걸고 엉덩이 때리면서 네 발로 기게 했다는 장면이 나와. 성추행도 그런 성추행이 없잖아? 양반들에게 개돼지 취급받던 상민들이 백정들에게 그랬다는 거야. 저것들은 인간도 아니라고, 옴짝달싹 못하게 기를 콱 죽여놔야 한다고. 나 그 장면 보다가 울었다. 일본놈들이나 친일파 나오는 장면보다 더 화가 났어. 어떤 슬픈 장면보다 더 슬펐어. 그건 철저한 동물의 세계잖아. 몬도가네잖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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