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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한 천사를 사랑했네> 25회 칠 월의 신부①
이군산  |  kj.lee@fi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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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22  0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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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고, 자동차는 영주 봉화 간 지방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이미 휴가가 끝났지만 나는 회사에 전화하지 않고 있었다. 나도 이미 어떤 지점을 넘어서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계속 이동했다. 답답해 숨이 막힐 것 같아 한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다른 곳에 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무언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막연한 기대로 계속 이동했다. 목적지가 따로 없었으므로 한번도 네비게이션을 찍은 적은 없었다.

맑은 하늘, 푸른 들, 풍경을 감상하며 뒷차들이 추월하든 말든 느리게 달렸다.

빠아아아앙󰠏󰠏󰠏 클랙슨을 울리며 옆으로 영화촬영 버스가 지나갔다. 버스에 붙은 영화 타이틀 로고를 보니 내가 아는 여배우가 주연으로 캐스팅된 영화였다. 마스크 좋고 연기력 좋고 성격도 좋은데 자신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배역을 맡아본 적이 없어 삼십대 후반 나이에 벌써 잊혀져 가는 아까운 배우였다.

버스를 따라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세트장이 나왔다.

잡지사 사원증을 보이고 세트장 안으로 들어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나는 카메라를 챙겨들고 자동차에서 내렸다. 은영도 함께 내려 옆에 붙어 걸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 건물들과 간판들 사이를 당시 의상을 입은 엑스트라들과 현대 복장을 한 스태프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다.

은영이 휘둥그래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 엉성한 가짜들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져서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거구나.”

“나는 진실을 좋아하지 않아요. 마법을 좋아해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여주인공이 그렇게 말하지.”

멀리 카메라들과 조명이 움직이는 촬영현장이 보였다. 얼굴만 아는 감독이 접이의자에 앉아 한쪽 팔을 든 채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 영화는 그의 입봉작으로, 조감독 시절 따라다닌 감독들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솔직히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은 아니었다. 여배우는 멀찌감치 앉아 분장을 고치며 대본을 외우고 있었다. 그녀는 신여성 복장을 하고 있다.

“박기자님?” 누군가가 옆으로 와 말을 걸었다. 여배우 매니저였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 그냥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촬영차를 보고 사진이라도 몇 장 찍어볼까 해서요. 뭐 인터뷰는 서로 준비가 안 되어 있을 테니 나중에 전화로 하기로 하고, 괜찮겠죠?”

“그럼 저희도 좋죠.”

몇 마디 의례적인 인사를 마친 후 매니저가 여배우에게 갔다.

나는 줌을 당겨 대본을 외우고 있는 여배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여배우가 나에게 손짓해보이고 웃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분장사가 자기 얼굴이 나오지 않도록 등을 돌리고 작업을 계속했다.

“레디󰠏󰠏󰠏 !”

감독이 소리치며 손을 들었다. 카메라 앞에서 조연출이 씬 넘버와 테이크 넘버를 대고 슬레이트를 딱 소리나게 쳤다.

“액션!”

주변 소음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멀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나도 더 이상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그동안 은영은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아는 배우들 얼굴을 확인하고는 신기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캇!”

감독이 모니터를 확인하고는 그럭저럭 만족한 듯 다음 신에 등장하는 배우들을 불렀다.

나는 다시 내 옆으로 온 매니저와 열흘 뒤 전화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분장을 마친 여배우가 이쪽으로 왔다. 여배우가 나와 인사를 나누고 은영에게도 살짝 눈인사를 했다. 여배우에게 포즈를 부탁하고 다시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다. 활짝 웃는 모습도 찍고 고민하는 듯한 모습도 찍었다. 매니저에게 부탁해 배우와 내가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는 듯한 장면도 몇 장 찍었다.

여배우가 돌아간 뒤, 그럼 다음에 보자면서 매니저에게 악수를 청했다. 매니저가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따가 촬영이 끝나고 근처 경치 좋은 식당에 감독, 제작사 간부, 시나리오 작가 다들 함께 모이는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 마련한 자리니까 함께 가시죠.”

“말씀드렸다시피 다른 일 때문에 지나가던 길이라서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요.”

은영이 옆에 있어 매니저는 더 이상 권하지 못했다. 매니저와 헤어져 다시 주차장으로 갔다. 그래도 기사 한 꼭지는 건진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정말 다르네. 반짝거렸어.”

뒤를 돌아보며 은영이 말했다.

“반짝거리긴.” 나는 리모컨을 눌러 자동차 시동을 켰다. “다 화장빨이고 조명빨이야. 너도 반짝거려. 아니, 네가 제일 반짝거려.”

얼마 후 우리는 앞뒤 차창을 모두 열고 다시 국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은 봉화에서 잤다.

이튿날 오전, 느지막이 모텔을 나온 우리는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식당을 찾았다. 길 양쪽으로 병원, 우체국, 전자제품 대리점, 이발소, 찻집, 세탁소, 술집 따위가 늘어선 거리였다.

유리문에 ‘신부 최명희’라는 하얀 종이가 나붙은 식당 앞에서 구겨진 양복을 입은 노인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길 건너편 식당에도 하얀 쪽지가 붙어 있었는데, 그곳은 신랑 측 하객들 식당 같았다. 근처에서 결혼식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곳을 지나쳐 다른 식당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은영이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여기서 공짜로 먹자.”

그녀의 입술 끝에 장난스런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정말?”

“응. 뭐 어때. 잔칫집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댔어. 따로 식권을 확인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들어가자, 응?”

우리 두 사람 의상을 점검해보았다. 그녀는 반바지, 나는 긴바지. 여행중인 사람들 같기도 했지만 우리 두 사람 모두 깔끔한 상태라 예식장에 갈 만한 차림으로도 보였다. 충분히 미친 척하고 결혼식 하객 행세를 해도 될 만한 복장이었다.

“콜.”

우리는 팔짱을 끼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정장에 흰 장갑까지 낀 소년이 정중히 우리를 안내했다. 소년의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갔다. 군데군데 예닐곱 명씩 모여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창가 쪽의 빈자리에 가 앉았다.

한복 입은 여인들이 떡이며 음식들을 부지런히 가져다주었다. 다행히 우리를 의심하는 시선은 없었다. 어디서 온 누구냐, 신부와 어떤 사이냐, 귀찮게 말을 거는 사람도 없었다. 갈비탕과 함께 많은 요리가 나왔다. 밤톨만한 색색의 송편들, 돼지고기 편육, 잡채, 애호박볶음, 두릅나물, 숙주나물, 더덕구이, 육회…… 푸짐한 잔칫상이었다. 동네의 솜씨 좋은 아낙들이 한 자리에 모여 흥겹게 수다를 떨며 만들었을 것 같은 음식들이었다. 그녀는 적은 양을 오래오래 씹어먹었다. 과일 샐러드만큼은 많이 먹었다.

신랑신부가 계단을 딛고 올라와 자리를 옮겨다니며 하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신부는 육감적인 도톰한 입술과 큰 눈이 어딘지 프랑스 여배우 베아트리스 달을 연상시켰다. 미인이랄 수는 없지만 그런 대로 시원스럽게 생긴 얼굴이었다. 신부는 연신 손수건을 톡톡 찍어 얼굴의 땀을 닦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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