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그 사람이 웃을 때 함께 웃어주고 그 사람이 눈물 흘릴 때 그 눈물을 말려주는 것. 앓아 누웠을 때 가만히 이마를 손으로 짚어주는 것, 목말라 할 때 물 한 잔 내밀어주는 것, 혼자 있고 싶다고 할 때는 잠시 자리를 피해주는 것.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이 거절한다 해도 끝끝내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

그랬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그 사람 곁이어야 했다.

물론 내 인생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두려움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되든, 중요한 것은 현재였다. 이 사랑을 외면한 인생이 의미 있는 뭔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곤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 인생에서 우연히 지나치는 존재가 아니었다. 비록 그 표현방법이 달라 잠깐 엇갈리긴 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서로가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함께 있을 수도 없었다.

어쩌면 그 옛날 하모니카를 훔치던 순간부터 이 고통은 준비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몫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국도를 달렸다. 암청색 하늘,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새까만 아스팔트 위를 쌩쌩거리며 질주했다.

남원시 외곽 식당에 들어가 간단히 육개장을 주문했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가도 종업원이나 옆자리 손님들과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어주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우린 지금 잠깐 티격태격하고 있지만 행복한 연인사이랍니다……. 아마도 그녀의 눈빛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식당을 나와 88고속도로를 찾아 들어갔다. 그녀는 다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언제 우울한 얘기를 했냐 싶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디오의 CD를 갈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옳았다. 운명이 우리를 선택하면 누구도 운명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고, 비정한 운명은 눈물 같은 건 믿지 않는다. 잊자, 다 잊자, 우리는 지금 세상 같은 것 팽개치고 그 무엇에도 얽매임 없이 철부지들처럼 다만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가 함양을 지나고 대구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밤늦게 영주시내에 들어섰다.

수많은 상점의 불빛들, 곳곳에 신호등 불빛, 지금까지와는 다른 밀리는 차량, 어지러운 클랙슨소리, 북적이는 인파󰠏󰠏󰠏 오랜만에 보는 도시의 밤이었다.

우리는 먼저 모텔을 잡고, 그동안 갈아입은 옷들이 담긴 쇼핑백을 들고 곧장 밖으로 나왔다. 모텔을 잡을 때 본 빨래방을 찾아 옷을 맡기고 사람들 속에 섞여 거리를 배회했다. 거리는 음악소리, 호객하는 소리, 자동차 클랙슨 소리로 시끌시끌했다.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내 팔에 팔짱을 껴왔다. 무수한 사람들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만그만한 슬픔과 고독, 기쁨,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 간간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십여 분쯤 거리를 걷다 분위기 있어보이는 빈티지 카페에 들어갔다. 주방 옆에 피아노가 놓여 있고, 벽에는 다트판과 재즈 섹스폰 연주자 마일즈 데이비스의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창가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스피커에서 <에반겔리온 O.S.T>가 흘러나오고, 레오나드 코헨의 <수잔>이 흘러나오고, 그리고 비지스의 음울하고 몽환적인 <할리데이>가 흘러 나왔다.

Ooh you're a holiday, such a holiday. Ooh you're a holiday, such a holiday…… 오오 당신은 휴일과 같은 사람이에요. 정말 휴일처럼 편안한 사람이에요……

왜 하필이면 이 순간 이 노래가 귀를 찌르며 들어오는 걸까.

나는 비지스의 <할리데이>를 지강헌 때문에 알게 되었다.

1988년 가을, 한떼의 죄수들이 교도소를 탈출해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했다.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주범이었던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지스의 <할리데이>를 틀어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대한민국 마지막 시인’이라고 했다. 과연 죽기 전에 듣기 좋은 노래다. 왠지 구원받을 수 있는 느낌이다(적어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함께 저승길을 동행해줄 것 같은 위안을 준다). 아마 지강헌은 지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혹은 슬펐던 순간 비지스의 <할리데이>를 들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어떤 특별한 순간.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자기만의 독특한 아우라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1988년 그 해 가을, 형사는 비지스의 <할리데이>와 스콜피온즈의 <할리데이> 카세트테이프 두 개를 건네준다. 스콜피온스의 노래도 좋긴 하지만 죽기 직전 듣기에는 멜로디가 왠지 경박하다. 무거운 영혼을 울리기엔 아무래도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지강헌은 비지스의 노래를 들으며 죽었다.

“작년 이맘때 한번은 혼자 들길을 걸었던 적이 있어.”

피스타치오 껍질을 하나 벗겨 입에 넣으며 은영이 말했다.

“어느 집에선가 아이 둘이 나와 내 앞을 걸었어. 열 살쯤 되는 남자애랑 그보다 두 살 정도 위의 여자애였지. 들판엔 사람들이 하나도 없고, 그 애들과 나뿐이었어. 나는 천천히 그 애들 뒤를 걸었어…… 듣고 있어?”

“응.”

“그 애들은 학교 운동회 얘기를 했던 거 같아. 남자애가 마라톤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던 게 기억나. 십 분쯤 걸어가자 도로가 나왔어. 나는 정류장으로 가 버스를 기다렸지. 아이들은 길가 구멍가게로 들어가더니 금방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들고 나왔어. 그리고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거야. 아주 천연스럽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그러니까 그 애들은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기 위해서 그 먼길을 걸었던 거야.”

“…….”

나는 말없이 술잔을 들어 찬 맥주를 몇 모금 마셨다. 음악은 어느새 <할리데이>에서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나는 에우리디체를 잃었노라>로 바뀌어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이 여자, 내 조강지처, 이 여자가 내 앞에서 자살을 하겠단다. 그러니 딴 데 가지 말고 지켜보고 있어 달란다.

“근데 말야, 작은아이 혼자라고 해도 갔을까? 난 그게 무척 궁금하더라.”

“글쎄…….”

“내 생각엔 혼자라 해도 갔을 거 같아. 아이스크림 하나 먹기 위해서라면 너무 허무한 길이지만, 그래도 집 안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고, 그녀가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계속 말했다.

“하긴 그런 게 인생인지도 모르지. 우리가 가진 목적들이란 그것만 떼어놓고 보면 더없이 허무한 것들이잖아?”

말을 마친 그녀의 얼굴에 조용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 가슴이 이지러지는 듯했다. 이제 나는 그녀의 웃음을 ‘기쁨’으로 해석하지 못한다. 그녀의 웃음은 오랜 습관이 무심코 만들어낸 표정의 일종이거나, 기껏해야 연기(演技)일 뿐일 것이다.

체로키 인디언들이 원래 살던 비옥한 골짜기에서 쫓겨나 백인들이 버린 땅으로 강제 이주 당하면서 지나갔던 길을 ‘눈물의 여로’라 한다던가. 정작 쫓겨가던 인디언들은 걷기만 했을 뿐인데, 길가에서 구경하던 이들이 눈물을 흘려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던가. 그녀가 웃으면 내 속에서는 서늘한 강물이 흘렀다. 미래는 생각하지 말자. 어제는 가버렸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오직 현재에 충실하자. 지금 행복하면 전 인생이 행복한 것이다. 내 모든 노력을 기울여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다짐해도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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