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꽃이 왜 피는지 알아?”

어느 휴일, 올림픽 공원 팬지꽃밭 앞에 쪼그려 앉아 아이고 예뻐라, 아이고 예뻐라, 하며 한 송이 한 송이 향기를 맡고 있던 은영이 문득 나에게 물었다. 꽃밭에는 봄꽃들이 지천이었다.

“글쎄…….” 나는 그녀의 모습을 사진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모르는구나. 모르는구나.” 은영이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이렇게 ‘아이고 예뻐라’ 소리 듣기 위해서야.”

나도 갑자기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어 물었다.

“꽃이 왜 아름다운지 알아?”

“글쎄. 이쁨 받으려고?”

“에이 그럼 답이 똑같잖아. 이쁨 받는 건 나중 얘기고, 꽃은 원래 아름다울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어째서 아름다울 수밖에 없느냐고.”

“뭐야, 진지하게 나오네? 음. 이런 불의의 습격을 받다니.”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르는구나. 모르는구나.” 나도 아까 은영을 흉내내며 웃었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야. 그래서 아름답고 향기로운 거지. 봐. 하나같이 ‘여기를 보세요’하는 것 같지 않아?”

“아하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불시에 내 가슴을 쳤다.

“응큼하긴.”

“응큼하다니. 안 그러면 벌나비들이 찾지 않아요. 그럼 그 식물은 멸종하는 거고.”

그녀가 여자이고 내가 남자인 것은 분명했다.

그해 봄엔 세상이 많이 어지러웠고, 그래서 우리는 밤늦게 시내에서 만나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곳곳의 길을 막은 경찰 차벽들이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아카시아 꽃이 질 때쯤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초여름 어느 저녁, 초인종 소리에 은영이 현관문을 열고는 누구세요? 누구세요? 하더니 사색이 되어 돌아섰다. 그녀의 뒤로 어머니와 여동생이 따라 들어왔다. 은영은 급히 과일과 함께 차를 끊여 내오고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앉았다. 나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조신한 모습이었는데, 어머니는 목을 외로 꼰 채 방 안을 둘러보며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못난 놈. 이렇게 살자고 혼자 독립하겠다고 그렇게 조른 거냐?”

여우같은 동생이 뒤를 밟고 고자질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말없이 여동생을 노려보았고, 어머니는 다시 은영에게 물었다.

“아가씨 집에서는 이런 사실 아나?”

“…….” 은영 역시 유구무언이었다.

“다들 혼자 컸는 줄 알지. 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구나.”

어머니가 쯧쯧 혀를 차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왔다갔다하며 싱크대와 냉장고를 열어보고, 욕실을 열어보았다.

은영은 죄인처럼 안절부절못했고, 여동생은 은영과 집 안의 살림살이를 부지런히 힐긋거렸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집으로 돌아가고󰠏󰠏󰠏다행히 어머니는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는 극단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그 날 밤 침대에서 은영이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자기네 엄마 무서워.”

“우리 어머니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냐. 친해지면 괜찮아.”

“첫인상이 나빴잖아. 많이 힘들 거야.”

“괜찮아. 난 네 편이야.”

“말로만?”

“아니, 정말로. 넌 나 때문에 우리가족에 편입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네 편 들어줘야지.”

“그런 건가?”

“그럼. 그리고 너희 집에서는 네가 내 편 들어줘야 하고.”

“그건 자신 있어.”

어머니는 식도 올리기 전에 남자와 사는 은영을 기본이 안 돼 있다고 했다. 은영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우리 결혼을 극구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우리가 멋대로 일을 저질러 집안 어른들께 숨기고 거짓말해야 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심기를 뒤틀리게 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도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기본이 안 돼 있는 것은 은영이 아니라 어머니 아들이라고 장난스럽게 눙치다가 “어이구 이 철딱서니 하고는!” 어머니로부터 등짝을 세게 얻어맞았다. 어쨌거나 한번쯤은 찬바람이 불긴 하겠지만 결국은 모든 게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보였다.

여름휴가는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왔다. 이틀동안 땡볕 아래 둘레길을 걷다 너무 더워 나머지 이틀은 3코스 어느 계곡마을에서 물장구나 치면서 놀다가 돌아왔다. 그래도 사진도 많이 찍고, 행복했다.

추석 명절에는 각자 자기 집에 다녀왔다. 일단 저지르기는 했지만 은영 역시 자기 집에 내 얘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 정도만 했던 것으로 안다.

 

일년쯤 되자 그녀의 요리솜씨가 제법 늘었다. 물론 내 솜씨도 그만큼 늘었다.

초겨울 어느 날, 그녀가 동태와 무와 쑥갓, 콩나물을 잔뜩 사왔다.

“아침에 출근할 때 어느 부부를 봤는데 말야. 아내가 생선가게에 진열된 동태를 보더니, 자기야, 티비에 동태요리 나오던데 우리도 저녁에 동태찌개 해먹을까? 하는 거야. 그 말 들으니까 갑자기 동태찌개가 너무너무 먹고 싶어지는 거야. 그 순간 내가 인생을 깨달았다는 거 아냐? 아, 이게 인생이구나! 이런 하루하루가 고스란히 인생의 정수(精髓)구나! 에센스구나! 내 말 이해돼?”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가끔 그녀는 그렇게 인생의 현자 같은 말을 한다.

“응. 이해돼.”

“그럼 얼른 콩나물 다듬어.”

그날의 동태찌개는 시원하고 칼칼하고 맛이 좋았다. 나는 그처럼 맛있는 동태찌개를 먹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함께 인생을 먹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나는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에는 곳곳에 복병이 숨어 있는 법. 그리고 그 복병은 언제나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고 갑작스럽게 들이닥쳐 일상을 뒤흔든다.

다시 해가 바뀌고 2010년 1월초 어느 날, 한밤중 그녀의 전화벨이 울렸다. 합천에서 온 전화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우리 아빠 돌아가시면 어떡해, 어떡해, 하며 밤새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이튿날 그녀는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합천으로 내려갔다. 그 날 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불길한 예감은 늘 적중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혼수상태로 대구의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있다고 했다. 뺑소니 사고라고 했다. 목격자는 있지만 차량번호를 모른다고 했고, 주변에 CCTV도 없어 운전자가 자수하지 않는 이상 검거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나도 내려가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녀는 괜히 어머니 걱정만 끼쳐드릴 거라면서 다음으로 미뤘다.

금방 돌아올 것 같았던 그녀는 쉽게 돌아오지 못했다. 그녀가 없는 집은 빈집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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