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선에서 해결하기 위해 친구들 몰래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갔다. 내가 다가가자 그들이 걸음을 멈췄다.

“혹시 아까 낮에 누가 저쪽에 왔다가지 않았나요?”

그들 중 하나가 버드나무 아래 바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점잖고 모범생 같은 얼굴이었다. 다른 두 명은 덩치가 크고 인상도 고약했다. 보아하니 몰려다니며 으슥한 뒷골목에서 제법 삥도 뜯었을 성싶었다.

“애들 둘이 왔다가긴 했는데…….”

나는 일단 발뺌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애들요?”

“그냥 동네 애들 같았는데…… 난 모르죠. 무슨 일로 그러는데요?”

“별건 아니고, 혹시 저기 바위에 있던 하모니카 못 봤나요?”

“글쎄요. 그건 기억에 없네요.”

“그쪽 텐트에 사람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그런데요?” 나도 모르게 카인의 말이 흉내내어져 나왔다. “내가 있었던 건 맞는데, 내가 하모니카를 지키는 자입니까?”

거듭 말하지만 나는 하모니카를 그녀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손을 통해 돌려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덩치 큰 놈들은 내가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제치고 우리 텐트 쪽으로 가려 했다. 마치 하모니카가 텐트 안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쨌거나 밀리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 나는 본능적으로 가슴을 내밀어 그들을 막았다. 그들이 식식거리며 나를 노려보다 내 뒤를 보았다. 뒤를 돌아다보니 친구들이 텐트 안에 웅크리고 앉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튀어나올 것처럼 보였다.

공연히 나 때문에 패싸움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은근히 걱정되었다. 이러다가 경찰까지 출동하게 되고, 경찰 손에 의해 배낭 속에 감춰진 하모니카가 발견되면…… 맙소사, 나는 더 이상 친구들 얼굴을 볼 수 없게 된다.

적의를 품은 이팔청춘 사내들의 시선들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혔다. 어느 쪽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시시각각 황혼이 짙어졌다. 찰나 같기도 하고 영원 같기도 한 이상한 시간이 흘렀다. 결국 모범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웃는 얼굴로 사태를 수습했다.

“아무래도 동네 애들이 가져간 것 같네요. 그럼 실례했습니다.”

모범생이 팔을 끌자 덩치들이 나를 째려보더니 못 이기는 척 몸을 돌렸다.

그제야 친구들이 슬금슬금 텐트에서 기어나오며 물었다.

“왜, 무엇 때문에 왔었대?”

“아무것도 아냐. 이쪽에서 뭘 잃어버렸다는데, 신경쓸 거 없어.”

“새끼들, 근데 왜 저렇게 건들거려.”

나는 알 수 없는 열기에 떠서 그날 밤을 보냈다. 사람이 그렇게 좋아질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한밤중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 텐트를 빠져나와 천변을 걸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밤중에도 하천은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여기저기 어둠 속에서 풀벌레들이 얌전하게 울고, 하늘에서는 또 은하수가 강처럼 흐르고…… 나는 신들의 나라 공기를 호흡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다시 새로 날이 밝았다. 짙푸른 하늘, 짙푸른 숲, 키를 맞추고 자란 벼포기 잎새마다 맺힌 이슬, 이슬방울들은 하나하나 각자 제 몫의 태양을 받아들이고 살아 있는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씻긴 듯이 푸른 벼포기들 사이로 백로와 왜가리가 우아하게 날았다.

어쩌면 새로운 운명이 시작될지도 모르는 기념비적인 날.

그런데……

한낮이 되도록 그녀네는 모래톱에 나오지 않았다. 오매불망 그녀만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던 나는 친구들과의 놀이에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했다. 가까운 산으로 등산이라도 간 걸까. 수련원 쪽은 계속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오후가 되어서도 학생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풀죽어 있었는지 친구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어디 아프냐고 물어오기까지 했다. 어떻게 그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른다. 그리고 또 다음날, 새로운 한 떼의 학생들이 모래톱에 나타났다. 그녀네 교회 셔츠와는 다른 단체복을 입은, 분명히 다른 집단 학생들이었다. 나는 그녀가 앉았던 버드나무 아래 바위에 앉아 새로 온 학생들이 뛰노는 모습을 오랫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그녀네는 수련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목마른 영혼’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그때 처음 온몸으로 깨달았다.

이틀 후, 우리도 그곳을 떠나 서울로 돌아왔다. 하모니카가 신경 쓰여서인지 배낭이 무척 무겁게 느껴졌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 같으면 수련원을 찾아가 며칠 전에 왔던 학생들이 어느 교회 학생들이었느냐고 물어봤을 테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지 못했다. 하긴 그 나이에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면 그건 청춘이 아니라 괴물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배낭의 짐들을 풀고 하모니카를 꺼내보았다.

하모니카에는 ‘M. HOHNER’라고 적혀 있었다. 24홀 복음 하모니카. 호너는 독일에 있는 하모니카와 아코디언 전문 회사다. 1857년 시계제조상이었던 마티아스 호너(Matthias Hohner)는 아내와 두 명의 직공을 데리고 그때까지 소수의 애호가들끼리 자체 제작해 불던 하모니카를 대량생산해 팔면서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하모니카를 대중적 악기로 자리잡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아무리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라 해도 하모니카 가격이야 뻔한 것. 그러나 액세서리점에서 따로 이름을 새긴 것을 보면 그녀에게 기념이 될 만한 물건임이 분명했다. 그때 무슨 마음으로 하모니카를 집어들었든 결국 나는 하모니카를 훔친 셈이 되었고, 그녀는 하모니카를 잃어버렸다. 나는 그녀에게 미안했다.

하모니카를 입에 대고 후, 불어보았다. 떨림판을 통과한 입바람이 특유의 하모니카 소리를 냈다. 가벼운 전율이 나를 지나갔다. 그녀와 입을 맞춘 것이다!

나는 이리저리 입술을 옮겨가며 불어보았다. 들숨 날숨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소리가 났다. 그러나 음악은 되지 않았다.

나는 악기점에서 연습용 하모니카를 샀다. 그리고 하모니카 교본을 사서 <고향의 봄>을 배우고 <과수원 길>을 배우고, <메기의 추억> <에델바이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등을 배웠다.

그녀의 하모니카는 내 하모니카 케이스에 넣어 책상서랍 밑에 잘 보관해 두었다.

하모니카와 함께 내 청춘은 흘러갔다. 열여덟, 열아홉, 스무 살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녀, 황은영은 그렇게 나에게 첫사랑답지 않은 첫사랑이 되었다. 이따금 서울 거리에서 우연히 그녀와 마주치는 상상을 하며 가슴 설레기도 했다. 책상 서랍 밑에 보관되어 있는 하모니카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하모니카에 그녀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계속 내 곁에 존재했다.

악기점에서 산 하모니카는 군대 가기 전까지 불었다.

그 하모니카는 제대하고 돌아와 보니까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모두 모른다고 했다. 아쉬웠지만, ‘황은영’의 하모니카가 그대로 있었으므로 나는 애써 잃어버린 연습용 하모니카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하모니카 하나가 그렇게 사라졌다.

그 후로는 하모니카를 거의 불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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