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자동차는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자동차에 올라타 먼저 스티커 사진을 떼어내 콘솔박스에 넣었다.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시동을 걸어 에어컨을 틀고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가 옆자리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맸다.

서울에 비하면 거리는 막힘 없이 뚫려 있었다. 하회 마을에나 가자는 내 말에 그녀는 좋다 싫다 별다른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 몇 군데 민속마을을 다녀봤지만 하회처럼 편안한 곳은 없었다. 그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늑해진다. 사람들은 예전의 하회 마을이 간직했던 고즈넉함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장 한국적인 정취가 많이 남아 있는 마을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자동차가 시내를 빠져나와 들길을 달렸다. 하늘에 새들이 날고, 새털구름이 몇 점 흘러가고 있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이었지만, 대화가 안 되니까 안타까웠다. 이정표를 따라 이삼십 분 가량 달리자 하회 마을이 나타났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표를 끊어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하회의 주인공은 충효당이니 양진당이니 북촌댁이니 하는 명문가 종택도 아니고, 소박한 초가집들도 아니고, 그 모든 집들을 이어주는 구불구불한 골목이다. 어머니 품처럼 완만한 곡선의 마을. 내가 손을 내밀자 은영이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느릿느릿 돌담길 흙담길을 걸었다. 간간이 마주치는 관광객들도 모두 조용조용 움직였다. 꿈같은 여자와 함께 걷는 꿈 같은 마을…… 그녀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전혀 예전의 그녀답지 않았다.

골목을 벗어나 둑길로 올라갔다. 둑길을 걷다가 밑으로 내려가 모래사장을 걸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모래사장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발자국을 찍으며 강변을 왔다갔다했다. 은영은 피곤한지 송림 그늘의 벤치에 앉았다. 나는 그녀 곁에 나란히 앉아 강 건너편의 깎아지른 기암절벽 부용대를 바라보았다. 예전 같으면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콧노래라도 흥얼거렸을 테지만, 이젠 그럴 수 없었다.

조용히 물비늘을 반짝이며 강물이 흘러갔다.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음식점과 민박을 겸하고 있는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안동 명물인 가짜 제사음식 ‘헛제사밥’을 주문했다. 차를 몰고 왔기 때문에, 그리고 일찍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 그녀도 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주인이 소반에 음식을 담아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왔다. 은영은 음식을 별로 입에 대지 않았다. 얌전하게 젓가락질을 하며 오래오래 씹어먹었다. 함께 살 때 재잘거리며 이것저것 맛나게 먹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안 좋았다. 내 앞에서 체면을 차리는구나…… 우리는 서툴게 연극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많이 생각했어.”

“……뭘요?”

“너. 황은영.”

“왜 그랬어요.”

“그럴 수밖에 없지. 말도 없이 연락이 끊어졌는데. 그리고 네 짐도 아직 많이 집에 남아 있는데. 사고가 났나, 내가 뭘 잘못했나, 별 생각이 다 났어. 재작년 여름엔 합천에 갔었어. 옷가게란 옷가게는 다 들어가 봤던 것 같아. 그런데도 못 찾겠더라. 어디 숨어 있었던 건지…….”

그렇게 찾아간 그녀 아버지의 고향 합천. 햇빛만 가득 고여 있던 작은 분지도시. 합천은 나에게 애틋한 전설을 남기고 이미 사라져버린 고대도시 유적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었다.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내 얼굴이 굳어졌을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말 하려면 왜 불렀어?”

“미안해요.”

알 수 없는 대답이었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할 말 없게 만드는군.” 하고 중얼거렸다. 그런데도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뭔가 아주 많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오 년이라는 공백이 있었다 해도 우리는 이렇게까지 어색하면 안 되는 사이였다.

“결혼한 거야?”

“아니에요.”

일단 안심이 되었다. 결혼한 것만 아니라면 어떤 문제든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무슨 도움이 필요한 거야? 어려워하지 말고 말해.”

“아니에요 그런 거.”

한 줄기 바람이 열린 창으로 불어와 마당으로 빠져나갔다.

“그럼 대체 뭐야? 말을 해야 알 거 아냐.”

“……미안해요.” 여전히 알 수 없는 대답. 말문이 막혔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고, 그녀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내 시선을 외면했다. 시간이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고 뭉쳐 덩어리가 되어 우리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주인이 다시 햇빛 가득한 마당을 가로질러 식혜를 가져왔다. 이제 우리는 안동으로 돌아가 헤어져야 한다. 나는 주말에 다시 내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긴 시간을 두고 차분히 대화를 나누다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전화번호 어떻게 돼?”

“……전화 없는데.”

“요즘 휴대전화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투지폰이라도 있을 거 아냐.”

“……내가 할게요.”

잠시 사이를 두고 그녀가 말했다. 다시 말문이 막혔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조금 드러난 귀, 부드러워 보이는 턱, 시무룩한 표정. 그녀는 피곤해 보였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그녀에게도 한 개비 내밀었다. 그녀가 고개를 흔들며 담배 끊었다고 대답했다.

 

얼마 후, 하회마을을 빠져나온 자동차가 들길을 달렸다. 한낮의 태양이 기운을 잃자 들녘의 초록이 한결 짙어 보였다. 우리는 계속 서로 말이 없었다. 그녀는 나를 부른 걸 후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멀리 들판에 잠자리채 들고 달리는 아이들 모습이 보였다. 외로움도 모르고 침묵이 얼마나 무거운 건지도 모르는, 아직 배반을 배우지 않은 신(神)의 아이들. ‘가자’ ‘놀자’ ‘이따 보자’ 이런 말만으로도 아이들은 ‘연결’을 느낀다. 의심하지도 않고 애태우지도 않는다. 함께 멀리 여행을 가기도 한다.

느리게 몬다고 했는데도, 자동차는 너무도 빨리 안동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후줄근한 모습으로 퇴근하는 사람들 모습이 보였다.

“어디로 가면 돼?” 내가 물었다.

“이 길로 쭉 가면 역전 나와요.”

“사는 데가 어디냐구.”

“역전에서 내려주면 돼요.”

“숨기지 마. 날 그렇게 모르니? 어떤 식으로든 너를 불편하게 하지 않아.”

그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숨기는 걸까. 우리가 이렇게도 말이 안 통하는 사이였나? 단단한 껍질 속으로 숨어드는 조개처럼, 그녀는 자기 신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깊이 들어가면 입을 다물어버렸다. 나는 씁쓸한 슬픔 같은 것이 가슴에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자동차가 역전에 도착했다. 별수 없이 방향등을 켜고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은영이 차에서 내려 나를 바라보았다. 속 쌍꺼풀 진 눈이 이상하게 슬퍼 내 가진 모든 것 다 주고 싶었던 여자.

나는 꼭 전화하라고 했다. 그녀가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자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빈말을 내뱉는 타입이 아니었다. 전화하겠다고 말을 하면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전화를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이내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고, 나는 뒷차의 클랙슨 소리에 밀려 액셀을 밟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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