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는 사자성어다. 거짓된 행동으로 윗사람을 농락하는 모습을 빗댄 말이다. 간교한 신하가 뭇 버슬아치들을 제 편에 줄 세워 권력을 희롱하기 위해 제왕의 판단과 눈을 속이는 데서 비롯되었다.

멀고먼 옛날에나 가능했을 성싶은 말이다. 일인천하 시대에 단 한사람의 눈에 들면 만인지상(萬人之上)이 되던 시절이다. 간신이 세속적인 부귀와 공명을 모두 차지하려고 횡포를 부리던 때였다.

요즘과 비교한다는 말 자체가 안 되는 시절의 이야기다. 왜? ‘지금은 민주시대이니까’ 그것이 정답일터다. 민주주의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그래서 쟁취해야 얻는다는 개념이 포함된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체제이념으로 하는 현대국가에서는 하나의 철칙으로 지켜야 한다. 그 바탕아래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사법이 정립되고 시행되기 마련이다. 이런 질서가 가능해지기까지, 소위 민주를 찾기까지 피 흘려 투쟁한 나라가 비단 우리만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른바 국민의 뜻이 바로 통치의 수단이고 목표가 되는 것다. 이것만 익히 알면 나라 다스리기는 어렵지 않다. 이걸 모르고 제 고집대로 하다가 패가망신하기 일쑤다. 그뿐이 아니다.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죽임까지 당하는 한때의 지도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역사를 잘 안다는 지도자는 국민의 눈치를 보기마련이다. 국민의 뜻을 하늘처럼 여겨 그대로만 정사를 결정하고 시행하면 국태민안이 될 터이니 말이다. 잘 한다는 지도자 되기는 별로 어려울 게 없을 성 싶다. 결정하기 아리송하다 싶으면 여론조사를 시켜 그 결과대로 처리하면 되니까. 아주 현명한 통치수단이 아니겠는가.

이런 식이라면 법석을 떨면서 지도자를 뽑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성능 좋은 컴퓨터에 맡겨 정책을 결정하면 간단하다. 프로그래밍 잘해서 광화문 한가운데에서 대표 한사람이 버튼한번 누르면 답이 나올 테니까. 정부가 시행해야할 정책이 나온다는 말이다. 이어서 이 정책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당장 알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가 수초 내에 결과를 알려주니까.

그런 시대가 이미 도래 한 것 같다. 새 정부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촛불의 힘으로 새 정부가 시작되었다는 말이 회자되는가 싶더니, 이제는 국민여론이 정책결정의 힘이라고 한다.

언제 어디서 여론조사를 했는지도 이제는 진부한 물음이 되었다. 워낙 새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과거 어느 정권 때보다 드높다고 하니, 국민은 ‘그건가 보다’ 한다. 무결점 정권이 탄생한 것만 같다. 국민여론에 따른다는 소신을 보면 그렇게도 보인다.

국정에는 지도자의 철학이 중요하다는 말도 옛말인가 싶다. 안보논리도 어느새 국민의 뜻대로 결정 날 것 같은 순간에 이르렀다. 결정권자의 의지가 분명치 못한 틈새를 비집고 ‘국민의 뜻’이 고개를 들고 있다. 안보논리가 과연 여론조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분단국가의 최우선 정책이 국민의 찬반에 따라 귀결될 사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문제도 그렇다. 과거정부에서 정책수립과 시행은 여야의 전쟁 그 자체였다. 민생문제가 시급하니 제도수립과 예산편성을 요구하는 정부에 대고 온갖 비방과 야유, 막말세례가 난무했다. 이러다 나라 망할 거라는 소리가 컸다. 결국 정권이 망하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그런데도 변한 것이 없다. 인기(여론)는 치솟는다는데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

새 정부의 내각구성도 결국 여론에 따라 할 요량인 듯하다. 대통령을 보좌할 인사들의 몫이 향후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칠게 환하다. 안보는 나라운명을 좌우하는 사안이다. 경제는 국민의 생명과도 같다. 권력을 향유하기위해 사슴을 말이라고 우겨대는 패거리가 누구이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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