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파격이라는 말이 거의 매일이다시피 등장하고 있다. 새 정부출범과 함께 내각을 비롯한 요직에 내정된 이들의 면면이 드러나면서부터 소위 파격적인 인물평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는 특정집단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주요직책의 수장이 전문성과는 다른 인물이 발탁되는 등 뭔가 다른 면이 자주 드러나기 때문이다. 의외의 인물이 기존의 통념을 깨고 세인의 주목을 받으며 등용되는 것은 두고 파격이라는 단어로 일컫는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정권교체 무렵이면 회자되는 말이기도 하다. 좋게 생각한다면 참신한 인물의 등장이다. 달리 말하면 검증되지 않은 불안한 발탁인사라는 측면도 있다.

지난 정부에서 얼마나 많은 인사들이 알게 모르게 저지른 비리 혹은 과오로 인해 거의 망신만 당하고 포기했는지는 국민이 잘 알고 있다. 소위 파격이라는 간판을 달고 인사청문회에 등장하게 될 인물들이 어떤 고초를 겪을지가 벌써부터 걱정이 크다.

어제의 야당이 오늘의 여당이 되었다. 그러니 어제의 여당이었던 야당에서 새 정부의 앞날에 박수치면서 환영할 수 있을 것인가. 턱도 없는 바램 일 터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런 전례가 없다. 어쩌면 요원한 희망일 것이다. 오직 저주와 원망과 질시와 더불어 불구 대천지원수쯤으로 적대시하는 정치풍토가 지속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앞선다.

정치 즉 정권을 잡고 집권자와 소속한 당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활동이라면 치열한 투쟁과 경쟁은 국민도 납득한다. 그러나 모든 국정사안을 정치투쟁의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특히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안보와 민생경제만큼은 정치권력의 범주와 관계없이 편을 갈라 득실을 따져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짐짓 안보만큼은 여와 야가 따로 없다고 한다. 선거철이면 들리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선거철이 지나면 헛말이 되기 십상이다.

나라를 적으로부터 지켜내는 안보문제조차 일구이언을 하는데, 경제정책을 두고 벌이는 여와 야의 쌍곡선은 늘 무지개처럼 빛을 달리하는 예가 무슨 국회의 전통처럼 굳어지고 있다. 삼척동자가 봐도 뻔한 결론을 내는데도 석 달 열흘을 두고 늘 아옹다옹한다. 지루하고 짜증나는 정치권의 싸움질은 정말 목불인견이다.

경제는 안보문제 못잖은 시급성과 적시성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때를 놓친 민생경제 관련 법안은 국민원성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전 정권의 도중하차도 따지고 보면 그런 국민의 원성의 산물이다.

‘설득의 힘’이 부족하거나 없는 정권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치학의 원론이 입증하고 있다. 부정을 긍정으로 설득하라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 보편적인 생각을 상대당과 힘을 합쳐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집권정치의 본류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출범과 더불어 경제도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식이다. 바로 이때가 우리경제의 틀과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새 정부는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여기에는 파격을 기대하지 않는다. 경제성장과 분배에는 사실 파격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국가에서 경제적 파격은 필경 불안을 초래한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수출이 점점 지속적으로 좋아지고, 대기업이 갑이고, 중소기업이 만년 을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체제로서의 경제운영은 한계가 명확하다.

둘의 관계가 공생시스템으로 발전하면서 경제를 떠받는 구조로 정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새 정부가 언뜻 막강한 권력구조로 혁파해 나가면 된다는 생각은 짧은 계책이다. 끊임없는 설득이 요구된다는 의미이다. 국민과 상대편에 대한 설득이 긴요하다.

파격이라는 여론의 힘이 경제 상승기류를 타고 민생발전에 기여하는 결과로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한다. 그것이 새 정부에 거는 국민적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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