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지형변화 가속화
기계가 인력을 대체…금융안정 훼손 부작용 우려도

일본 로봇 엑스포의 인간형 로봇.<사진=연합>
일본 로봇 엑스포의 인간형 로봇.<사진=연합>

[현대경제신문 안소윤 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 의장인 클라우스 슈밥이 소개한 용어로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 자율주행, 증강현실, 빅데이터 등의 ICT(정보통신기술) 혁신에 따른 산업 지형변화를 지칭한다.

금융업에 있어서도 ‘4차 산업혁명’은 중요한 관심사다. ICT기술과 금융이 융합한 핀테크는 지급결제, 자산관리, 소매대출 등 금융업 전반의 변화를 선도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은 금융회사 중심에서 금융소비자 중심으로의 변화를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오픈플랫폼 등 핀테크 혁신에 따른 지형 변화가 대표적인 예로 금융소비자는 누구나 낮은 비용으로 편리하게 금융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핀테크뿐만 아니라 금융은 문화, 의료, 교육 등 다양한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서도 금융소비자의 편익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가 20일 열린‘4차 산업혁명 금융분야 태스크포스’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가 20일 열린‘4차 산업혁명 금융분야 태스크포스’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

4차 산업혁명 특별법 제정…변화 바람 본격화

4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금융권의 움직임도 분주한 모습이다.

금융당국은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금융분야 특별법 제정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일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참여하는 ‘4차 산업혁명 금융분야 테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열어 금융규제 테스트베드를 이달부터 도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규제 테스트베드란 금융회사들이 핀테크를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를 테스트해볼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규제를 모두 풀어주는 것으로 새로운 금융서비스 출시를 지원한다.

이는 새로운 금융서비스 도입을 가속화하기 위해 핀테크 선도국인 영국이 2015년 도입한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 제도를 따 온 것이다.

금융당국은 금융규제 테스트베드를 비조치의견서 발급, 금융회사를 통한 위탁테스트, 지정대리인 부여 등 3가지 방식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시행 성과에 따라 규제 면제 등 보다 적극적인 방식의 테스트베드 도입도 추진할 계획이다.

정은보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TF 회의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새로운 금융서비스의 등장 속도가 금융규제의 변화 속도를 추월하게 되므로 기존의 규정 중심 금융규제만을 고수해서는 금융혁신에 제때 대응하기 어렵다”며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금융 분야 특별법 제정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권별로도 4차 산업혁명을 대응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은행권은 디지털 금융 등 관련 부서를 신설하고 P2P(온라인 개인간 거래)업체, 로보어드바이저와 같은 다른 산업과 융합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위성호 신임 신한은행장은 지난 7일 열린 취임식에서 “4차 산업혁명이 마주해 격변의 환경이 펼쳐진 가운데 디지털과 글로벌에서 신한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위 행장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산업 간 진입장벽이 무너지고 전혀 다른 플레이어들이 금융에 도전하는 격변의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며 “빅데이터와 모바일 플랫폼을 경영에 활용해 수수료, 금리 등 전통적인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비가격 요소를 적극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도 최근 임직원들에게 “모든 업종이 사활을 건 경쟁이 전개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해야 한다”며 “창의성을 발휘한 집단지성을 활용해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감성적인 능력을 KB의 강점으로 살려나가자”고 강조했다.

보험권의 경우 사물인터넷 업체와 보험상품을 개발하거나 인공지능 업체와 협력해 심사와 지급 등의 업무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보험서비스는 사고발생에 대한 보상에서 사고발생 전 생활관리 서비스로 진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석영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보험업의 형태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며 “보험사는 물론 소비자, 감독당국도 이같은 변화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보험산업은 고객의 생활습관에 꼭 맞는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을 것이고 소비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며 “보험 사고의 심도나 빈도도 낮아지고 보상역량은 강화되면서 고객 만족도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본시장 역시 투자자 간 네트워크의 확대와 투자플랫폼의 진화로 자본 시장에서의 자금조달 방법이 더욱 다양해질 전망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통해 과거 고액 자산가만 누릴 수 있었던 자산관리 서비스 등 고급 서비스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되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장외거리 처리비용과 속도가 혁신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형 변화에 따른 부작용 최소화도 관건

금융권의 4차 산업혁명 수용에 따른 긍정적 변화 이면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자본시장연구원은 먼저 금융업 전체의 일자리 감소 가능성을 제시했다. 로봇 등 자동화기기가 기존 금융업의 제조, 판매, 후선인프라 등 전 영역에서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실제 4차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주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종업원 수는 빠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15년 기준 씨티그룹과 JP모건체이스의 종업원 수는 23만1천명과 23만5천명으로 2011년 26만6천명과 25만9천명 대비 각각 13%와 10% 가량 줄어들었다.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가운데 인공지능 등 자동화기기가 은행의 상품제조, 자기매매, 판매 등의 역할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어 전통적인 금융업의 일자리는 더욱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문제로는 과도한 금융혁신 추구에 따른 투자자보호와 금융안정이 소홀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온라인에서 비대면으로 투자권유를 수행하는 경우 소비자가 해당 금융상품의 위험을 제대로 인지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워 설명의무나 적합성 테스트를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인공지능 기반의 온라인 플랫폼이 소비자에게 판매보수가 높은 금융상품 위주로 권유할 가능성이 있고 금융 분쟁 시 법적 책임소재가 불명확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밖에 금융시장에서 여러 인공 지능이 동일한 판단을 내릴 경우 투자자 쏠림 현상이 발생해 금융안정을 훼손시킬 우려도 존재한다.

블록체인, 오픈플랫폼 등 특정 플랫폼으로 금융서비스가 집중되는 경우 해킹이나 예상치 못한 프로그램 오류 발생 시 다수의 금융소비자가 큰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 수용의 부작용윽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권은 기술금융 등 실물지원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며 동시에 창조적 파괴를 통한 금융혁신을 추진해야 한다”며 “금융혁신이 투자자보호와 금융안정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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