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놓은 정부에 기업들 ‘한숨만’ 깊어져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20일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이 줄어든 관광객들로 썰렁하다. <사진=연합>
중국의 사드 보복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20일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이 줄어든 관광객들로 썰렁하다. <사진=연합>

[현대경제신문 민경미 기자] 중국의 무역보복이 날로 심해지는 가운데 정부 측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중국이 의도적 통관 지연, 계약취소, 불매운동, 수입 중단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한반도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와 관련한 무역보복을 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대중 무역애로 신고센터’에 17일 기준 접수된 피해건수가 현재 60개사, 67건이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통관검역이 23건, 계약 보류, 파기가 15건이었으며, 불매 14건, 대금결제 지연 4건, 인증 보류 1건 등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우리기업에 사업계획 수립과 경영 활동을 위한 새판을 짜야 한다고 주문하고, 정부에도 피해업체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무역보복이 주로 접근하기 쉬운 소비재에 집중되고 있어 유통과 화장품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국내 화장품업계 양대산맥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지난해 12월부터 불가했던 프리미엄 브랜드(설화수ㆍ후)의 인터넷면세점 적립금 혜택을 최근 부활시켰다. 양사는 면세점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중국의 무역 보복 때문에 마케팅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사는 대중 수출뿐 아니라 방한 요우커들에 의존하는 면세점 매출도 높은 편이라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됐다. 지난 15일 중국 정부가 한국 여행 상품을 전면 금지한 이후 요우커 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도 위기감이 코앞에 닥쳤다는 절박함 때문에 인터넷면세점 적립금 혜택을 부활시킨 것 같다”며 “기업으로서는 현재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 답답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드 배치를 갖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엄연한 내정간섭인데 우리 정부는 중국 측에 항의 한 마디 못하고 손을 놓고 있다”면서 “대통령 탄핵 등으로 정국이 어수선해 중국 측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의 무역보복으로 피해를 입은 우리 기업이 한 둘이 아닌데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게 참담하다”며 “이제라도 정부가 앞장서 제대로 대응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부는 뒤늦게  결정 이후 중국이 취한 일련의 경제적 조치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에 국제법인 ‘최혜국 대우’와 ‘내국민 대우’ 협정 위반 가능성을 20일 공식 제기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중국 정부가 (WTO에 사드보복을 했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리라고 보지만, 개연성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분명하게 지적해야 한다”면서 “지난 17일 WTO 서비스이사회에 관광·유통 분야의 중국 조치에 대해 WTO 협정 위배 가능성을 정식 제기하고 중국 측이 의무를 준수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증거를 지속해서 확보하면서 우리 기업이 부당하게 대우받는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문제 제기가 WTO 제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기업의 피해를 해소할 대응 방안이 될 수 없다.

WTO에 제소하려면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한데, 중국 측의 조치가 구두로 이뤄지거나 국내법을 핑계로 대고 있기 때문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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