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박 전 대통령 피의자 신분 소환조사…수사 가속도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기업, 불 옮겨 붙을까 ‘노심초사’

 
 

[현대경제신문 차종혁 기자] 삼성, 현대차, SK 등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속도를 내고 있는 검찰 수사로 인해 셈법이 복잡해졌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할 방침을 밝히면서 삼성을 비롯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연루된 기업들 내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소환조사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 검찰의 사정 칼날이 박 전 대통령에서 기업으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연루된 기업에 대한 시각을 보면 대가성 출연보다는 재산권을 침해당했다는 쪽이 우세하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일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내린 결정문을 근거로 한다. 헌재는 지난 10일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 설립, 최서원(최순실) 이권 개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피청구인의 행위는 기업 재산권을 침해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의 자율권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이 재산권과 경영의 자율권을 침해당했다는 헌재의 판단을 놓고 보면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을 앞두고 있는 삼성으로선 반가운 내용이다.

헌재의 판단을 근거로 들어 삼성의 재단 출연과 ‘비선실세’ 최순실씨 모녀에 대한 지원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대가성이 아니라 청와대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기업의 대가성 출연을 한 공범이라는 시각도 있다. 헌재는 위헌 여부를 판단한 것일 뿐 형사법 위반 여부까지 판단한 건 아니라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헌재의 ‘기업 재산권 침해’ 판단이 이 부회장의 재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설립 이후 사상 초유의 그룹오너 구속수사에 직면한 삼성으로서는 또 다시 오너의 실형 선고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삼성 다음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업 중 한 곳은 SK그룹이다. SK그룹은 국정농단 사태 당시 최태원 회장의 사면을 대가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111억원을 출연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검찰은 지난 1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한 3차 공판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이 설립될 무렵 안종범 전 수석이 사면 관련 현황을 파악하고 대기업도 사면을 부탁한 문자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당시 SK그룹은 최태원 회장과 최 회장의 동생 최재원 부회장이 복역 중이었으며 사면 문제가 논의 중이었다.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검찰을 통해 법정에서 공개됐을 정도로 검찰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방향은 SK를 향할 수 있다. 최 회장이 이미 두 차례나 횡령 혐의로 실형이 확정된 후 사면을 받은 전례가 있어 검찰의 칼날이 SK를 향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헌재 판결문에 언급된 KT와 현대차그룹, 롯데그룹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헌재는 탄핵심판 선고에서 “최서원의 요청에 따라 피청구인은 안종범을 통해 KT에 특정인 두 사람을 채용하게 한 뒤 광고업무를 담당하도록 요구했다. 그 뒤 플레이그라운드는 KT광고대행사로 선정돼 KT로부터 68억원에 이르는 광고를 수주했다”고 밝혔다.

KT가 비선실세의 이권 개입에 조직적으로 동원됐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의 불똥이 튈 수 있는 부분이다. 황창규 회장의 연임이 확정됐지만 KT의 이권 개입이 황 회장의 인사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지적됐던 점에서 보면 그룹 경영진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사안으로 번질 수 있다.

현대차그룹도 신생 광고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에 9억여원에 달하는 광고를 발주했다는 점 때문에 여전히 논란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지난해 3월 박 전 대통령을 독대한 이후 사업의 이권을 얻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롯데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62억원을 출연한데 이어 지난해 5월 70억원을 추가로 기부했다가 검찰 압수수색 직전에 돌려받은 바 있다.

현대차그룹과 롯데그룹은 검찰 수사의 방향에 따라 반기업 정서가 더 높아질 수 있고, 국내외 사업 추진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어 부담감을 떨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 SK, 롯데, KT 등 대가성 출연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들은 박 전 대통령 소환조사와 삼성 이재용 부회장 재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향후 검찰 수사와 재판부의 판단이 이들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의 공범들을 엄정히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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