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권희용 내외정책홍보원 원장

물가(物價)는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경제의 심오한 화두를 말하고자하는 게 아니다. 설날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뛰는 물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특히 생필품 중에서도 식료품값이 적게는 두세 배 많게는 대여섯 배씩 올랐다. 1만 원짜리 한 장으로 적어도 사흘 동안 먹을 만한 부식을 살 수 있었단다. 그런데 지금은 단 하루도 그 돈으로는 먹을 부식을 구입할 수 없다. 물론 서민의 밥상수준이다. ‘순실 아줌마네’ 얘기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일터다.

이런 종류의 기사는 해마다 명절 무렵이면 늘 지면을 장식해왔다. 게으르고 꾀 많은 기자라면 앉아서 쓸 말한 그렇고 그런 기사가운데 하나다. 비슷한 기사로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만나 주요법안에 관한 최종협상을 예고한 것에 대한 결론과도 같다. ‘무산’될 것이 뻔해서다. 그래서 눈치 빠른 기자는 무산된 배경기사쓰기에 공을 들인다. 

그런 기사일수록 문장력과 등장인물이 화려하다. 그런 기사를 쓴 기자에게는 ‘민완’이라는 수식과 함께 머잖아 금배지가 그의 가슴에 붙는다. 아니면 청와대 비서관쯤으로 의자가 바뀐다.

물가는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거래에서 생기는 관계의 방정식이다. 공급이 많다는 것은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을 예고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비의 긴장이 느슨해지는 바로미터가 되곤 한다. 그래서 값이 떨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소비욕구가 커지면 물가는 오른다. 게다가 공급이 줄어들면 값은 더 올라가기 마련이다.   

명절을 앞두고 공급자는 시장에 내놓을 물량을 비축해둔다. 소비자도 넉넉한 소비량을 구입하고자 한다. 그러면 ‘공급=소비’라는 등식이 유지돼야 한다. 가격도 변함이 없어야 한다. 그던데 늘 값이 오른다는 것이다.

경제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공급과 소비의 밸런스가 유지된다면 가격 또한 달라질 하등의 이유가 없어서다. 그러면서도 해마다, 때마다 이맘때면 시장물가 특히 장바구니물가는 오른다. 올해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근년에 들어 우리나라는 물가만큼은 안정을 유지하는 나라가운데 하나였다. 소비자물가는 1%대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모범국가 중 하나였다고 물가당국은 느긋해 했다. 사실 그럴 만도하다고 입 싼 매스컴도 인정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설을 앞두고 급전직하로 주저앉고 말았다. 순실 아줌마 소동와중에 물가오름세는 민생의 허리띠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월급은 그대인데 물가는 천장이니 살기가 팍팍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가당국에는 이런 현상이 올 것이라는 걸 정말 몰랐을까? 몰랐다면 무능하다. 그러나 알면서도 속수무책이었다면 복지부동이다. 하긴 이런 난국에 물가 오르는 것쯤이야 조족지혈일 터다. 명절을 앞두고 물가가 들먹이는 일이 연중행사쯤의 정말 ‘새 발의 피’정도로 하찮은 일일까?

나라는 큰 난리(大亂)로 망하지 않는단다. 작은 시비가 불거져 망한다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는 작은 일이 불거진 것이다. 대통령과 야금야금 오가던 일이 나라를 온통 들끓게 한 단초였다.

물가가 어느 때쯤 들먹인다는 걸 몰랐다면 해당 공직자로서 자격이 없을 터다. 미리 손(정책)을 써야 할 일이다. 요즘같이 나라형편이 어지러운 지경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누구하나 대비했다는 흔적은 찾아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

돈이 드는 일이라면 미리 추경을 하든지, 행정조치가 필요하다면 미리 손을 쓰든가 해서라도 물가를 주저앉혀야 했다. 그런데 자유방임조치만 하고 있었다. 그러니 고삐 풀린 말처럼 물가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잖은가. 

정작 유권자의 속셈은 알지도 못하면서 한줌도 되지 않는 패거리 장단에 허수아비 춤부터 춰대는 이른바 잠룡들의 모양새가 슬프다. 민생을 옥죄는 물가하나도 바로잡지 못하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을 맡길 수는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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