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혼돈’의 해…정경유착 의혹에 국민 차가운 시선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재벌 총수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재벌 총수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

[현대경제신문 차종혁 기자] 2016년 재계는 혹독한 한 해를 보냈다.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정경유착 의혹으로 국정조사 청문회에 줄소환되고, 롯데 등 대기업들이 경영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국민들의 차가운 눈총을 받았다. 대기업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권력비리의 기업 자금창구 역할을 했다는 비난을 받아 해체 위기에 놓였다.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발화로 인한 생산중단으로 기업신뢰도가 크게 손상됐다. 조선·해운산업의 끝없는 몰락에 이어 삼성전자·현대기아차의 성장 정체는 우리나라 경제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줬다.

대기업 총수, 청문회 줄소환…정경유착 의혹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국정조사 청문회에 줄줄이 소환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9개 주요 대기업의 총수들이 일시에 청문회에 소환된 것은 처음이다.

지난 6일 열린 1차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GS그룹 회장) 등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특위 소속 의원들은 세무조사를 피하거나 경영권 승계, 사면 등의 대가를 기대하고 두 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낸 게 아니냐고 총수들을 추궁했다.

하지만 총수들은 청와대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며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에 대가성은 없었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재계 구심점 전경련, 해체 위기

재계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이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됐다. 전경련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려 권력비리의 자금창구로 알려진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관여했다는 비난을 받아 해체 요구를 받고 있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제1차 청문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전경련에서 탈퇴하고 기부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구본무 LG 회장은 “전경련을 헤리티지재단처럼 운영하고 기업간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급기야 27일 LG그룹이 전경련 탈퇴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전경련은 존폐기로에 서게 됐다.

삼성전자 ‘갤노트7 단종’ 피해액 4조 넘어

삼성전자가 지난 8월 야심차게 발표한 갤럭시노트7(이하 갤노트7)은 배터리 발화 문제로 인해 출시 1개월만에 공급이 중단됐고, 결국 10월 11일 생산이 전면 중단됐다.

갤노트7은 출시 초반 흥행에 성공했지만 발화 위험성으로 인해 판매중단을 거쳐 생산중단에까지 이르면서 삼성전자 모바일사업의 가장 큰 오점으로 남게 됐다.

사건 초기에는 자발적 리콜을 통해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발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결국 생산 중단을 결정하게 됐다.

삼성은 갤노트7 리콜 및 단종에 따른 피해 규모를 4조원가량으로 보고 있다. 갤럭시7이 갤노트7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지만 후속작인 8 시리즈가 나오기 전까지는 피해가 계속될 전망이다.

삼성 이재용 시대 열려…‘뉴삼성’ 출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0월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선임되면서 ‘뉴삼성’이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27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원안대로 승인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주총 소집과 대표이사 선임, 자산 처분과 양도, 투자계획 집행, 법인 이전설치 등 회사의 중대 사항을 결정하는 동시에 이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도 져야 한다.

이 부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 후, 삼성전자 경영전략담당 상무, 최고운영책임자(COO) 전무·부사장·사장을 거쳐 2012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과 권오현 대표이사 부회장(DS부문장), 윤부근 대표이사 사장(CE부문장), 신종균 대표이사 사장(IM부문장) 등 4명으로 사내이사직을 꾸리게 됐다.

검찰, 롯데그룹 총수일가 비리혐의 ‘정조준’

롯데그룹 총수 일가는 경영비리 의혹으로 인해 줄줄이 검찰에 기소되며 난관에 처해 있다.

검찰이 롯데그룹을 정조준해 표적수사를 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전방위로 펼쳐졌다.

하지만 롯데 총수 일가는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2005∼2015년 391억원의 ‘공짜급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변호인도 “보수 지급 및 결정에 관여한 바가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룹 차원의 횡령·배임 행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롯데 고위 임원들도 모두 변호인을 통해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STX조선해양 채권단이 법정관리 불가피성을 밝힌 5월 25일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 직원들이 야드 쪽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
STX조선해양 채권단이 법정관리 불가피성을 밝힌 5월 25일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 직원들이 야드 쪽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

조선·해운산업, 끝없는 추락…대규모 구조조정

올해 조선·해운산업은 끝없이 추락했다. 사상 최대의 위기다.

우리나라 조선업은 한때 전 세계 선박의 70%를 건조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최근 계속되는 수주 가뭄에 시달리며 막대한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추진하며 몸집을 줄이고 내실을 다지는 한해를 보내야 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는 자산매각, 인력감축 등의 자구계획을 발표한 이후 조직 전체를 뜯어고치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희망퇴직 등으로 떠난 직원은 6천여명에 달했다.

해운업계는 국내 1위 원양선사였던 한진해운이 지난 8월말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충격에 빠졌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후 3개월여간 글로벌 물류대란이 발생할 정도로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컸다.

현대차그룹, 성장 정체…18년만에 역성장

현대차그룹은 IMF 이후 18년만에 처음으로 역성장하며 우리 경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보여줬다.

해외에서 신흥시장의 장기침체 여파로 고전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판매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등 ‘내우외환’에 빠져 있다.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판매량은 1998년 이후 18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도 최근 5년새 반 토막이 났다.

위기감을 인식한 현대차그룹은 지난 10월 51개 계열사 소속 전체 임원 1천여 명의 급여를 10% 삭감하는 등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현대기아차는 내년에도 경영환경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를 타개할 전략으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라인업을 확대하고 판매 최우선 지원체제를 구축키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집단 기준 10조원 상향…규제대상 변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하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변경되면서 대기업집단 규제 대상 기업에 큰 변화가 왔다.

지난 6월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늘리는 내용으로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2002년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이었던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은 지난 2008년 5조원으로 올라갔으나 8년만에 다시 10조원으로 상향됐다. 다만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 공시의무 등 사후규제 기준은 현행 5조원 기준이 유지된다.

공정위는 사기업과 같은 기준을 적용하던 공기업집단에 대해 앞으로 자산규모와 무관하게 일괄적으로 대기업집단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원샷법 시행, 기업 사업재편 ‘활력’

‘원샷법’으로 알려진 기업활력제고특별법(기활법)이 지난 8월 13일 시행되면서 기업의 사업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기활법 시행 직후 기업들은 과잉공급의 기준과 대상, 신청서 작성법 등에 대해 하루에 20~30건을 상담할 정도로 기활법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활법은 과잉공급 업종의 신속한 사업 재편을 돕기 위해 시행됐으며, 8조7천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과 기업 합병 기준 완화 등으로 기업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주무부처가 대상 기업의 사업재편계획을 심의를 거쳐 승인하면, 승인 기업은 상법·공정거래법 상 절차가 간소화 되고 세제와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들도 기활법을 이용해 신속한 사업 재편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 시달리는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의 업종이 특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금호家 형제亂 봉합, 그룹 재건 가속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그의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갈등이 7년여만에 화해로 마무리됐다.

금호석화는 지난 8월 “아시아나항공 이사진 고소 사건과 박삼구 회장·기옥 전 금호산업 대표를 상대로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한 기업어음(CP) 부당지원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취하했고, 상표권 소송은 양측이 원만하게 조정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금호그룹도 입장자료를 발표해 “금호석화의 모든 소송 취하에 대해 존중하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금호석화가 법적 공세를 모두 철회하면서 2008년경부터 시작된 양측의 갈등은 봉합됐고 경영권 분쟁 리스크도 덜게 됐다.

양측의 갈등이 봉합된 직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터미널과 금호기업의 합병을 마무리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터미널과 금호기업이 합병하고 금호홀딩스라는 새로운 사명으로 8월 12일 공식 출범했다. 대표이사에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김현철 금호터미널 대표가 각자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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