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 내려 청와대 안심했다면 '오산'

제 5차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시민들이 광화문 본집회장을 가기 위해 종각역쪽에서 이동하고 있다. <사진=민경미 기자>
제 5차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시민들이 광화문 본집회장을 가기 위해 종각역쪽에서 이동하고 있다. <사진=민경미 기자>

[현대경제신문 민경미 기자]  서울에 첫 눈이 내린 26일 오후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 5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 추산 190만명이 거리로 나섰다. 서울에만 150만명이 운집했다. 눈이 그친 오후 6시 이후 집회장을 찾아오는 시민들은 속속 늘어났다.

종각역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걸어가는 데 50분이 소요됐다. 시민들은 다른 시민들에게 “어느 쪽으로 가야 길이 뚫려있다” 혹은 “어느 쪽은 길이 막혔다” 등의 정보를 알리며 지나갔다.

유모차나 아기띠를 한 젊은 부부와 유치원생과 초등생, 중고등생 자녀와 함께 한 가족 단위 참가자들,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한 20대 청년층, 장년과 노년층까지 한 손에는 촛불을, 한 손에는 손팻말을 들고 서울 도심 한 복판에 모였다.

광화문 본집회장에서 26일 열린 제 5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성난 민심을 촛불로 차분히 승화시키고 있다. <사진=민경미 기자>
광화문 본집회장에서 26일 열린 제 5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성난 민심을 촛불로 차분히 승화시키고 있다. <사진=민경미 기자>

시민들이 외치는 요구는 한결같이 ‘박근혜 정권 퇴진’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자 피의자가 된 박 대통령을 더 이상 대한민국의 리더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게 시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날 광화문 광장 본집회장에 모인 시민들은 가수 안치환과 함께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를 개사한 ‘하야는 꽃보다 아름다워’를 떼창했다. 시민들은 이어 가수 양희은과 ‘아침이슬’을 함께 부르며 집회의 분위기를 한층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특히 안치환은 청와대의 비아그라 구입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했다. 그는 자신이 히말리야를 다녀온 이야기를 하며 “고산증에 걸렸지만 비아그라는 쓰지 않았다”고 말해 시민들을 폭소케 했다.

제 5차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광화문 본집회장 입구에 세워진 소녀상이 촛불을 든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지고 있다. <사진=민경미 기자>
제 5차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광화문 본집회장 입구에 세워진 소녀상이 촛불을 든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지고 있다. <사진=민경미 기자>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이날 집회를 찾은 대학생 최연주(22·여)씨는 “1차 때부터 4차까지 매일매일 오고 싶었지만 사정이 생겨서 못 왔다”며 “날씨가 추워서 조금 갈등을 했지만 역사적인 순간에 참석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후회와 자책감이 들 것 같아서 참여했는데 오자마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씨는 “국민들이 이렇게 다 모인 것이 대단하다”며 “나라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소망했다.

남편과 8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나온 강지예(32)씨는 “추운 날에도 아기를 데리고 나올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생각해서 나오게 됐다”며 “오늘을 마지막으로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서 국민들이 걱정 없이 남은 12월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근천씨가 자신이 만든 촛불을 들고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다. <사진=민경미 기자>
이근천씨가 자신이 만든 촛불을 들고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다. <사진=민경미 기자>

이근천(강서구·57)씨는 “유치원 버스 기사를 하는데 아이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왔다”며 “지금까지 5번의 집회를 다 참여했다. 4회까지는 온 가족이 참여했지만 다들 감기에 걸려서 이번에는 혼자 나왔다”고 아쉬워했다.

이씨는 자신이 직접 만든 촛불을 보여주며 “횃불이어야 하는데 촛불이라서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후레자식연대 최황(33) 대표는 박대통령이 죄수복을 입은 모습의 피켓을 손에 들었다.

최 대표는 “공화국에서 전관예우라는 것은 없어져야 한다”며 “왕국에서나 있을법한 전관예우라는 것이 현대사회를 망쳐놓고 있다. 전두환·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모두 법정에 서서 적법한 절차를 밟아서 형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후레자식연대는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에 반발해 지난 4월 만들어진 단체다.

한편, 이날 광화문 광장 본집회장 주변에선 박근혜 대통령 당선 무효 서명 운동이 이뤄져 수많은 시민들이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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